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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Mar 06. 2024

Ep 2. 엄마표 책 읽기 한글나라 안 부럽다.

“ 민성이는 언제부터 어린이집 가요?”

“ 우리 애는 영유 가려고요. 지금은 한글 나라 하고 있어요.”

“ 한글 나라는 방문 선생님 오시는 거라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금수저이신가 봐요.”

“ 내년에 영유 보내면 월 100인데 따라가려면 미리 공부를 해 둬야 할 것 같아요. 시댁이 의사 집안이라 미래까지 생각하면 어려서부터 시작해야죠. 어머님도 남편도 민성이한테 거는 기대가 커서 하나씩 준비해야 해요. ” 


  유치원비가 월 100만 원이라니.  대학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게다가 가정 방문 한글 선생님.

보통 회당 20분에 3만 원이라 주 2회 수업받으면 2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얼마 전에는 몇십만 원짜리 몬테소리 교구를 들였다더니. 민성이네는 여유가 있어서 4살 아이에게 과감하게 투자하는구나.


  우리 유인이는 한글을 얼마나 알고 있으려나. 인터넷 서점에서 한글 스티커북을 하나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 아직 유치원도 안 가는 애한테 내가 너무 부담 주는 거 아닌가? 민성이처럼 내년에 유치원 가니까 영유는 아니라도 한글 정도는 익히고 가면 좋지. 일단 보여주고 부담은 주지 말아야겠다.’

“ 엄마 이거 뭐야?”

“ 한글 스티커북인데 유인이 한 번 해볼래? 민성이는 한글 선생님 오신다더라. 유인이는 엄마랑 같이 해 보자. 엄마가 선생님이잖아.” 

다음날.

“ 짜잔. ”

“ 어? 유인이 이거 다했어?”

“ 응. 유인이 잘했지!”

“ 세상에. 하루 만에 스티커북을 다하다니. 엄마랑 날마다 조금씩 하면 되는데.”

“ 너무 재밌어서 다 해버렸어. 또 사 주세요. ”

“ 유인이 한글 다 알아? 이걸 혼자서 어떻게 다했어? ”

“ 그림 보면 다 알아. 엄마가 매일 책도 읽어주고. 그런데 받침은 좀 어려워.”

“ 와. 우리 딸 대단하다. 그럼 내년에 유치원 가니까 엄마가 낱말 카드를 집에 붙여둘게. 유인이가 지나가면서 한 번씩 읽어볼까? 할 수 있겠어?”

“ 네! 재밌겠다. 카드는 내가 붙일게요.”


  고맙게도 유인이는 그림책을 읽으며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급여가 없는 휴직자라 한글 선생님은 부담이 되었는데 엄마와 그림책을 읽으며 글자와 소리의 연결 관계를 이미 깨치고 있었다.

유인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이 교육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명작 그림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사과가 쿵, 달님 안녕과 같은 시중에 인기 있는 아기용 책들을 주로 읽어주었다. 유인이가 좋아하는 책이 무엇일지 어떤 책을 사 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책목록을 찾아보게 되었고 책목록이 필요 없다는 카페 글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카페에 가입했다. 


명작 그림책 카페


  명작 그림책 관련 카페에 가입하여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기준을 비롯해 독서교육 및 다양한 육아 기술을 배웠다. 여러 선배맘과 또래맘들이 있어서 실제로 어떻게 그림책을 읽어주는지 상세한 후기를 올려두었다. 유인이가 자면 하나하나 클릭하며 읽고 기록하면서 책 읽어주기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명작 카페에 드나들며 육아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성장하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돌이 안 된 아이에게 글밥이 많은 책을 읽어주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혹시나 과도한 조기교육으로 아이가 책을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까. 성격발달에 방해가 되면 어떡하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카페에 있는 선배맘들의 후기와 풍성한 육아 정보를 소개해 주시는 샤샤와 이고리 아빠의 러시아 자녀 교육법을 꼼꼼히 살펴보니 과정이 체계적이고 아이들이 행복하고 책을 즐긴다는 후기가 많았다. 푸름이나 잠수네와 달리 아이와 소통하며 아직 어리지만 작은 정보들을 연결시켜 종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아이와 소통하며 뭐가 하고 싶은지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아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부모는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뇌를 충분히 자극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교육 방식에 빠져들었고 나도 날마다 명작 그림책을 읽어주며 독서 교육을 시작했다. 


날마다 책 읽어주기


   유인이는 5세가 되어 유치원에 다녔고 4세까지는 일대일 육아를 했다. 가끔 문화 센터에 가서 쿠키 만들기 등 요리 체험을 했고 발레 수업을 들었다. 요리 수업에서 만들었던 음식을 집에서 엄마와 함께 만들며 재료부터 시작해서 색깔, 관련 그림책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를 하고 그림으로도 표현했다. 주위에서는 지원금을 받으면 저렴한 비용으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데 왜 보내지 않는지 의아해했다. 학교에서 만나는 마음이 힘든 학생이나 학습 지원 학생의 경우 유아 시절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맞벌이 부모라서 복직 후에는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이 놀아주고 추억을 쌓고 싶었다. 물론 돈도 아낄 수 있었다.


  유인이는 날마다 놀이터에 갔다. 바깥바람을 쐬고 오면 낮잠도 잘 자고 건강에도 좋다. 물론 엄마의 육아 우울증을 날려버리는 데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하지만 유모차를 타고 가서는 돌아올 때는 피곤한지 유모차에 타지 않으려고 해서 아기띠로 업고 유모차를 끌고 온 적도 많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아기들은 다 유모차를 좋아해서 절대로 내려오지 않는 줄 알았다. 아기도 사람인지라 의견을 존중해 줘야 했다. 그러니 엄마 역할은 중요한 만큼 크고 무거웠다.


  도서관에 가서는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빌려 왔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주말 도서관 나들이는 계속되었다. 한글책, 영어책을 가리지 않고 읽어줘서 도서관 책도 언어를 구분하지 않고 빌려왔다. 빌려온 책은 날마다 15분씩 읽어주었다. 읽으면서 질문하면 대답하고 나도 유인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아이 특유의 신선한 시각을 느낄 수 있어서 그리고 날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초등 저학년까지 읽어줬다. <개구리네 한솥밥>의 경우 노래로 부르기도 했고 노부영 시리즈에 나오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자연스럽게 영어 표현을 익혔다. 


  “엄마, 내가 영어 이야기 들려줄까?”

복직 후 몇 년 새 더 많아진 공문서를 처리하고 개구쟁이 아이들을 돌보다 퇴근하면 말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처음 석 달은 적응기간이라 더 피곤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누워 있는데 유인이가 영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진짜? 재밌겠다. 엄마한테 영어책 읽어 주려고?”

“책은 있다가 갖고 올게. 이제 한다. There is a lion and ~~~”

그러고는 영어 이야기를 외워서 들려주는 것이다. 아니 이걸 어떻게 외웠을까.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에서 배웠다는 것이다.

“유인아! 엄마 깜짝 놀랐다. 감동받았어. 우리 유인이 영어 박사님이네.”

“고마워요 엄마. 헤헤.”


  영어 노래를 들려주고 책을 읽어 준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이후 유인이는 독서를 계속했고 1학년이 되어서는 다음 날에 필요한 아침 독서 책을 고르느라 저녁마다 고민을 했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았다. 어느 날은 책에 집중한 나머지 수업이 시작됐는지도 몰랐는데 짝꿍이 말해 줘서 깜짝 놀라 교과서를 꺼내기도 했다.

10년 전 일이라 지금은 담담하게 풀어놓지만 그 당시에는 여러 고민도 많았다. 워킹맘을 계속하는 게 나은 선택일까. 복직하니 아이도 나도 힘든데.

초등 고학년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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