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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Mar 06. 2024

Ep 3. 경단녀 VS 워킹맘

“ 선생님, 현호가 종이 먹었어요! ”

  1학년이 되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현호 어머니는 가출하셨다. 아버지는 그 후 계속 술만 드시고 할머니가 주로 육아를 담당하셨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현호는 종이를 작게 찢어서 입에 넣는 것 같았다. 


“ 너는 그게 문제야. 기분이 나쁘면 말을 해야지. 왜 째려보냐고. 그러다 치겠다?”

  주영이는 지환이와 친구가 되고 싶은 건지 싸우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자주 늘어놓았다. 어른들이 쓰는 어휘를 사용해 술술 말을 하는 주영이에게 지환이는 가끔씩 말문이 막혔다. 지환이는 부모님이 장사를 하시다 보니 가정에서 대화 시간이 짧았고 말보다 감정 표현을 앞세우는 아이였다. 그런데다 당황하니 말이 더 안 나올 수밖에.


“ 내가 못할 줄 알고! ”

  지환이는 큰 소리로 외치더니 아이들이 없는 양쪽 책상들 사이 빈 통로 쪽으로 의자를 내던졌다.

당황한 아이들은 나와 의자를 계속 번갈아 쳐다보았다. 


  띵동.

정신없이 현호와 주영이, 지환이를 상담하고 하교지도를 마친 뒤 자리에 앉자 화면에 메시지 수신 알림이 뜬다.

<학생들 글쓰기 학습장을 수합해서 내일 교감 선생님께 제출하게 되었어요. 바쁘시겠지만 준비 부탁드립니다>

하아. 아직 1학년인 학생들의 글쓰기를 어떻게 지도하지. 수준차가 커서 맞춤형 지도가 필요한데 결국 교감 선생님은 학습장 검사를 하기로 결정하신 모양이다. 


  복직하고 집 근처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기로 했지만 출퇴근길에 5살 아이를 데리고 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학급에 마음이 힘든 아이들이 많았다. 여러 사정으로 조부모의 손에 크는 아이들도 있었고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도 전보다 늘어나 있었다.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불안해 보였고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는 작은 일에도 화를 내거나 의기소침해지는 과잉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도 단체 생활이 처음인지라 자주 아프고 입학 초기에는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탈모 증세도 생겨서 걱정이 많았다. 한 명 한 명 친구들 얘기를 늘어놓을 때는 사회성을 잘 키우고 있구나 생각이 들다가도 열이 나서 입원을 할 때면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회의감이 들었다. 유치원에서 단체 생활을 시작하며 고열이 자주 나고 입원도 1년에 서너 번 정도 하게 되어 보험도 결국 추가로 가입했다.


  어느 날 유인이가 열이 오르기 시작해서 다음 날 병원에 가기로 했다. 저녁을 먹는데 몸도 힘들고 유인이가 유치원 생활이 힘들어서 자주 아픈 건 아닐까 생각을 하니 어느새 눈물이 났다. 저녁식탁에 앉아서 울고 있으니 남편은 위로를 한다.

“ 병원 가면 열 내리겠지. 뭐 그런 걸로 울고 그래.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

이대로 워킹맘을 하는 게 바른 선택일까? 남편은 괜찮다고 하지만 첫애다 보니 걱정이 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온갖 유아 영양제 관련 정보를 검색했다. 프로폴리스, 홍삼, 유산균 등등. 그러다가 유제품, 밀가루, 가공식품을 줄였더니 아이가 덜 아프다는 후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마다 유치원에서 우유나 요거트를 먹는데 빨리 마셔야 한다는 유인이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일단 우유를 끊었다. 내가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우유를 안 먹이는 데 거부감은 없었지만 남편은 우유를 즐기는 타입이라 처음엔 반대를 했다. 하지만 유인이가 덜 아프니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이후로는 감기에 걸려도 가볍게 지나갔고 더 이상 해열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었다. 살았다. 이제 워킹맘으로 계속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아이란 이렇게 큰 영향을 주는 존재구나.


영어 선생님

  영어 선생님이 미국으로 연수를 가게 되어 새로운 영어 교사가 필요했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 수업 시간이 좋았다. 30년 전에는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해외여행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으시곤 했다. 영어 시간에 배우는 세계 뉴스와 다양한 문화들을 접할 때면 마치 해외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초등 졸업 후 학원에 다니며 영어 단어를 미리 공부한 것이 톡톡히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중학교에 가서는 시간마다 칭찬을 들으며 자신감을 갖고 영어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에도 영어 학원에 다니며 영어 학습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듬해 영어 교사가 되어 Tesol 연수를 받았다. 당시에는 주로 해외에 나가서 Tesol 과정을 이수하거나 유명 대학에 개설된 과정을 수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동료 교사의 추천으로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지역 UCC센터에서 연수를 들었다. 그곳에서 제대로 된 수업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새로운 수업 기술과 학생의 배움을 관찰하는 교사의 태도와 관련된 실습을 하고 강의를 들으며 한 단계 올라간 교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연수동안 10명이 한 팀을 이뤄 팀원 교사의 시범 수업을 참관하고 관찰일지를 쓴다. 6주간의 연수동안 시범 수업 4개를 준비해서 시연하고 서로 피드백을 공유하고 원어민 강사의 꼼꼼한 지도를 받았다. 학생들에게 흥미 있는 활동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교사의 피드백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수업 설계는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지 등등. 대학강의나 1정 연수 등 기타 연수와 달리 실습 위주라 수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수업 기술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해마다 다른 학년을 가르치며 새로운 내용을 지도하다 보니 나만의 고유한 수업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영어교사를 하면 전문성을 높일 수 있고 나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영어를 친숙하게 느끼도록 도와줄 수 있다. 유인이가 영어책을 읽게 된 것처럼 초등학생들이 영어를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을 그리니 이제야 내 길을 찾았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경단녀보다는 워킹맘

  가정마다 사정이 다르고 부부의 우선순위가 다르겠지만 워킹맘은 해 볼 만한 일이다. 워킹맘 수만큼 워킹대디가 있을 텐데 워킹대디의 고충에 대해서는 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만큼 아직 우리 사회가 육아에서 여성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학교 또는 고등학교 때까지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육아 때문에 사회에서 직업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여성의 참정권을 얻어 내기 위해 긴 시간을 노력한 것처럼 워킹맘의 처우개선을 위해 애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일단 워킹맘으로서 살아남는 것이다. 특수한 개인사정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버티며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 보자.


  지자체에 아이 돌봄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다. 생후 3개월 이상부터 만 12세 이하 아동이 있는 가정은 연 960시간 내에서 신청 가능하다. 휴직이나 출산등의 조건이 충족될 경우 정부 지원으로 이용할 수 있고 조건이 맞지 않아도 시간당 15000원 내외로 이용이 가능하다. 초등 저학년까지의 아이들은 일대일 보살핌이 필요하니 아이 돌봄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정부에서 늘봄학교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줄 테니 아이 걱정하지 말고 일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서 출산율이 낮은 거라고 생각해서 내놓은 정책인 듯하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아침 7시에 집을 나와서 밤 8시에 돌아가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다.


  유엔에서 발간한 2023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38개국 중 35위를 차지했다. 6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한 핀란드의 돌봄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핀란드 학생들은 초등부터 중학교까지 9시에 등교하고 2시에 하교한다. 초등 1, 2학년을 대상으로 한 돌봄은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루어진다. 하지만 학생의 일일 최대 교육활동 시간이 9시간으로 정해져 있어서 7시에 등교한 학생은 4시에는 하교를 해야 한다. 고등학생의 경우 3시경 수업을 마친 뒤 하교 후 도서관에서 과제를 1시간 정도하고 친구를 만나 스포츠 등의 취미활동을 한 뒤 근처 상가 등에서 진로교육의 일환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10시쯤에 잠이 든다.


  뉴베리상을 수상한 소설 <기억전달자>에는 정부가 시민들의 감정을 통제하고 사춘기 아이들의 직업을 정해주는 기이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상적인 가정을 위해 자녀는 2명을 입양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출산율이 낮고 가정 친화적이지 않은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해외 입양이나 해외이민을 수용하는 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지는 사회의 미래 모습이 소설 속 사회와 닮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그러면 최하위 행복지수를 받은 한국에서 돌봄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8살 학생들이 13시간 동안 학교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한국의 출산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정책인지 의구심이 든다. 핀란드와 비슷한 출산율을 기록하며 높은 행복지수를 보이는 스웨덴에서는 아빠의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선택권이 없는 공동체에서 일어난 일 ---기억전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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