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뭇별중한별 Jan 14. 2022

내가 나를 모르는데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실행했더니 홈 화면이 온통 ‘도티’, ‘잠뜰’같은 초등학생 콘텐츠로 도배되어 있었다. 스크롤을 좀 더 내려보니 이번에는 ‘심으뜸’ 같은 스트레칭, 필라테스 콘텐츠들이 잔뜩 떠버렸다.

“이 놈들이!”

최근 시청기록을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방학을 맞은 우리 쌍둥이들이 최근 며칠 동안 시청한 수십 편의 유튜브 영상들이 리스트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수업이 시작되면서 아내는 아이들의 디지털기기 사용시간이 대폭 늘어나는 것에 불안함과 불만을 토로했었다. 그러다 급기야 작은 녀석이 수업시간에 유튜브 창을 화면 구석 조그맣게 틀어놓은 것을 엄마에게 걸리고야 만 것이다. 아내는 애를 혼내며 오열을 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 노트북에서 유튜브를 내 계정으로만 실행하도록 작업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래에 비해 디지털 기기를 늦게 접했는데도 거실의 스마트 TV로도 유튜브 실행이 가능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감시의 사각지대를 찾아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눈속임을 해봤자 부모 손바닥 안이 아니던가? 탈출 루트는 발각되었고 나는 거실 TV에도 내 계정 정보를  저장시켜야만 했다.

그러한 이유로 나의 유튜브 홈 화면은 이렇게 나와는 무관한 것들로 가득 차버린 것이다. 아이들이 본 게임 콘텐츠, 아내가 본 홈트레이닝 콘텐츠들로 도배된…


나를 위한 추천이라며?!!




유튜브는 이렇게 사용자들의 시청기록을 토대로 취향을 분석하여 볼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비슷한 취향을 보인 다른 사용자들의 시청기록이나 인기 영상 데이터를 해석해서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이런 것이 빅데이터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빅데이터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도 체감하고 있다.

내가 좋아할 만한 쇼핑 목록

재구매할 시기가 도래한 생활필수품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음악

꼭 필요할 것 같은 정보 등등

“나를 잘 안다”라고 말하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준비했다”는 메시지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게임업계에서도 빅데이터는 한 때 메인 이슈였다. 트렌드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어떤 추세로 변화하고 있는지는 현재 진행 중인 서비스, 근래에 실행하게 될 업데이트, 그리고 장기적 과제인 신작 개발에 모두 중요한 시사점이 되는터라 빅데이터가 신뢰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빅데이터에게 기대하는 것은 확장성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용자가 “현재 좋아하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을 찾아 유혹하는 것이다. 유혹에 성공하면 기존보다 더 다양한 방면에서 더 많은 매출을 창출할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유저 데이터를 분석하고 유혹하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과연 이런 유혹에 넘어가 취향이 생기게 된다면,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인가? 좋아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인가?”였다.

[추천 알고리즘]의 목적은 새로운 욕망을 창출하는 것이니까 이를 수용하여 만들어진 욕망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욕망을 심어 준 “그”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을 실현하려는 몸부림은 마리오네트의 춤과 다를 바 없는 것이고, 때문에 욕망을 실현하더라도 만족감보다는 허무함만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더 큰 문제는 주체를 잃었을 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망각하게 된다는데 있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취향과 새로 주입된 취향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내가 원하는 삶의 상이 흐려지는 대신 타인이 미디어에서 자랑하는 삶이 마치 원래 내 지향점이었던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이런 삶은 결국 이용당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꾸며진 모습으로 미디어에 등장해 돈을 벌려는 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실체와 가치도 없는 이미지만을 파는 장사꾼들에게 이용당하며,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이득을 보려는 거짓말쟁이들에게 이용당한다.

속이는 악인들은 분명한 주체의식과 사람들을 속이겠다는 목적의식, 그리고 어떤 것을 취하겠다는 자신만의 분명한 욕망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이들은 목적을 쉽게 달성하기 위해 가스 라이팅도 서슴지 않는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도록 만들고, 자기 자신을 기꺼이 소모되는 부품으로 제공하도록 만든다.

자신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내 생각이고, 내 취향이고, 내가 원해서 된 결과다.”


맹신자들이 이렇게 착각이라는 이름의 모래 위에 지은 세계는 지극히 견고하면서도 불안하다. 그들은 자기 생각이 사실은 주입되었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으므로 견고하고, 어떤 계기로라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대로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것이므로 불안한 것이다.


맹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용당하고도 인지하지도 못하다가 무너져버리는 비참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비록 내가 즐겁다고 느끼고 있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두들겨보고 열어봐야 한다. 나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하므로.


나를 잊지 않고, 착각하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런데, 잠뜰 tv... 재밌긴 하네….













 





















작가의 이전글 노.잼.회.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