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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17. 2022

'롤모델'이 누구야?

“넌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넌 존경하는 인물 같은 것도 없어?!”

이제 막 솜털을 벗어난 수염이 듬성듬성 자란 중학생 아들과 씨름하던 어머니는 제법 힘에 부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어머니의 매질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사춘기 아들도 분이 차올라 씩씩대며 받아쳤다.


“그런 거 없어요. 별로 누구처럼 되고 싶지도 않고.”

어머니는 아들의 가시 돋친 대응에 화가 나서 한번 더 달려들지만 아들은 손쉽게 어머니의 팔을 뿌리쳤다.


“존경하는 사람이 없어? 네 부모도 존경하지 않니? 그래서 이렇게 반항하는 거야?”

아들은 어떻게 해야 어머니에게 더 상처를 줄까 고민하듯이 노려만 보다가 결국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고야 말았다.


“존경 안 해요. 자기들 멋대로 이혼하는 부모 같은 건.”




사실 부모님이 이혼하기 전부터 나에게 있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 중 하나가 “커서 뭐가 되고 싶니?”였다. 국민학교 4학년 때인가는 하도 장래희망으로 쓸 게 없어서 “중국집 배달부”라고 써냈다가 선생님한테 혼 난적도 있었다. 꿈이 없으니 당연히 닮고 싶은 사람도 없고, 그래서 존경하는 인물도 없었다. 위인전을 전집으로 몇 질씩이나 읽었어도 큰 감흥 같은 건 받지 못했었다. 세종대왕님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힘들었겠다, 이순신 장군은 공을 인정 못 받고 혼자 분투하다 죽었구나 하는 식이었다.


남을 존경할 줄 모르니 나를 존중할 줄도 몰랐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도 관심이 없고,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내가 내뱉는 말들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게 만드는 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춘기에 접어들고 부모가 이혼하는 사건을 겪은 뒤에는 늘 죽음을 생각했다. 적극적으로 죽으려는 것보다는 사는데 관심이 없으니 자연히 죽겠네 싶은 정도….

기쁨이 없으니 늘 우울하고, 우울함을 감출 생각도 없으니 주위가 음침한 기운이 풍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 매력이 없는 사람.


내가 그렇게 된 것이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려고 내뱉은 말처럼 '부모의 이혼'에서 비롯된 결과일까? 나를 둘러싼 환경이 당연히 있었어야 할 꿈이나 희망의 씨앗들을 앗아가 버린 것일까?

한때는 그렇게 생각을 했던 적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가진 게 있어야만 잃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잃는 것보다 스스로 버리는 게 많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가지는 것이지 누가 주는 게 아니라는 걸.




존경 부재의 시절을 벗어난 계기는 군대에서의 한 사건이었다.

병장으로 막 진급했을 때 내가 행정보급관에게 단단히 찍히는 사건이 있었고 그는 나를 왕따로 만들기 위해 소대원들을 괴롭혔다. “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다”는 원망을 돌리게 만들려고 행정보급관은 무던히도 많은 불시점검과 집합을 걸었기 때문에 나와 소대원들은 점점 멀어졌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나는 이등병보다 더 이등병처럼 살아야만 했었다.


하지만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는 법. 결국 (2개가 있어야 할) 내복이 1개뿐이라는 걸 알아낸 행정보급관은 내 동기인 보급계를 호출했다. 원래 병장들이 이등병에게 내복을 한벌 더 입으라고 내주는 것이 관례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아무것도 모르는 동기 녀석이 창고로 들어오자 그는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따귀를 날리기 시작했다. 창고 입구에서부터 창고 끝까지 약 20미터 정도를 왕복하면서 수십 대의 따귀와 발길질이 이어지는 처참한 폭행. 아무 잘못도 없는 그 친구가 걸레짝이 되어 널브러진 뒤 행정보급관은 소대원들 보란 듯이 한마디 말도 없이 나를 한참 째려본 뒤 창고에서 나갔다.


나는 정말이지 죽고만 싶었다. 억울했다. 미안했다. 나는 진작 죽었어도 괜찮았는데 왜 살아있어서 남에게 피해만 주는가 싶었다. 폭행을 당한 동기가 부축을 받아 일어나는 게 눈물로 흐려진 눈에 들어왔다. 그와 함께 웃었던 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를 원망할 그가 두려웠다. 나는 정말이지 그가 지을 원망의 표정을 보게 될게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런데 그놈이 입술이고 눈가고 여기저기 다 터져 피가 흐르는 얼굴로 웃었다. 부축을 받아 힘겹게 걷는 주제에 고개를 떨구고 울고 있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왜 울어, x발 놈은 네가 아니라 그 새낀데. 내가 다 찔러버릴 거야.”




“롤모델”이란 지향점이다. 하지만, 그와 똑같이 될 수는 없다. 모습과 가치관을 따를 수는 있어도, 이미테이션이 되면 곤란하다.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이 나를 지배하도록 두지 않고 나의 가치와 감정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모습이 남에게 잘 이해되도록 정성껏 표출하면 그때부터는 내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

지금은 연락도 닿지 않는 그 친구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내 삶의 가치관이 되었다.

- 항상 이것이 나로부터 비롯된 생각인지를 생각한다.
- 내가 아닌 것으로 나를 포장하지 않는다.
- 그리고 나를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서 행동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자기가 스스로 선하고 건강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화려해 보이려고 애써서 흉내 내거나 꾸미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아름답게 전달하는 사람들.

살다 보니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곳곳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봉사하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 브런치를 접하면서도 참으로 많은 글들을 읽었는데 존경스러운 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분들 모두에게도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브런치 북 심사 소감에 있다는 그 표현처럼 말이다.


“평범한 생활인들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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