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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18. 2022

산울림을 만드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김창완 아저씨를 참 좋아한다. 어릴 때 많이도 들었던 산울림 시절의 목소리도 많이 좋아했지만, 이후에 연기자로서 그가 보여준 모습도 나는 참 좋아한다. 왜 좋냐면 노래던 연기던 하여튼 그 아저씨를 거치면 담담해지고 친숙해지는 것이 아닌가!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저 위의 천상계를 날아다니고 있다면 그 아저씨가 등장하는 순간 아저씨의 모습을 통해 내 눈높이로 내려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저씨의 모습은 유니크하다. 다른 누군가가 흉내 내지도 못하는 꾸밈없는 목소리, 선과 악을 오묘하게 넘나들며 표현할 수 있는 생김새와 표정. 김창완 아저씨는 튀지 않아도, 잘나지 않아도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내게 몸소 보여주는 존재이다.  


서울대 출신에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비틀스와 같은 존재인 ‘산울림’ 그 자체이시며, 수차례의 연기상 수상자이시고, 독보적 커리어의 라디오 진행자이신 분을 “평범하다”거나 “잘나지 않았다”라고 표현한 것이 실례일지도 모르겠으나, 싱어송라이터와 연기자로서의 캐릭터가 그렇게 내게 느껴진다는 것이니 오해는 없기를…




결혼 전에 무작정 연기라는 게 해보고 싶어서 무작정 다음 카페에서 연극동호회를 검색했고, 직장인 연극동아리에 가입을 했더랬다. 연기하는 내 모습을 꿈꿔봤던 이유는 김창완 아저씨처럼 나도 나만이 소화할 수 있는 모습으로 세상에 비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가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서, 어떻게든지 나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글도 써보고 싶고 음악도 만들어보고 싶고, 연기도 해보고 싶었다.


간단한 오디션을 통해 수습단원이 되고 회식에도 참석해 알랑방귀도 뀌어가면서 단원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 정기공연에서 조그마한 배역을 받아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막연한 예상과는 다르게 연기라는 것은 스트레칭으로부터 시작해서 스트레칭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체조로 몸을 풀고, 배에 힘을 주고 악을 쓰다가 달리면서 악을 쓰고, 구르고 점프 뛰고를 한참 하다 보면 땀이 송골송골해지면서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연습은 그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얼마나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살아왔는지를 말이다. 내 입에서 대사랍시고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왜 그렇게 낯설고 듣기 싫은지.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또 얼마나 어색하고 꼴 보기 싫은지. 연습실을 100바퀴 뛰라면 뛰겠는데 극 연습은 안 했으면 싶을 정도였다. 


나도 김창완 아저씨처럼 해보고 싶었는데…. 자연스럽게 꾸미지 않은 발성과 몸짓으로… 

그게 아무렇게나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구나, 몇 구비의 산을 돌고 돌아 넘고 넘어서 만들어진 것이구나 싶었다. 친숙해 보여서 쉽게 느껴졌던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산울림’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여기서 듣지만 그가 낸 소리는 몇 구비 산 넘어에서 시작된 산울림 말이다.

결국 극단 활동은 한 해 남짓 하다가 바쁜 직장일로 퇴단하고야 말았지만, 그만둘 때 까지도 내 연기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내 산울림을 들려주지 못한 채로 말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덜어내서 짧고 간결하게 말하고, 어렵고 전문적인 용어를 배제하면서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자기 의견을 설명하려면 일정 경지 이상이 되어야 된다고 하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타고난 잘난 점만을 이용하거나 잘난것처럼 보이려고 꾸미려고 애쓰지 않고, 자기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넘치는 매력을 뽐내는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른 것이리라. 


내가 살아내고 싶은 것도 그와 같은 모습이다. 

화려하거나 튀지 않아도 괜찮다. 좋은 형편에서 남의 부러움을 사며 살고 싶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주위 어디나 있을 것처럼 친숙하면서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면 몇 구비 산너머에 사는 한 사람이라도 그 울림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울림을 들은 누군가가 어딘가의 풍경을 바라볼 때, 어떤 냄새를 맡을 때, 어떤 글귀를 읽게 될 때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떠오른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겠다.

그리고 그에게 그저 밉게만 기억되지 않는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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