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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21. 2022

매력이란 뭘까?

“선뵈애애….”

내 앞에 앉아있던 친구를 내쫓고 굳이 내 앞에 앉은 낯선 여자 후배는 만취되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게슴츠레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군대를 가려고 휴학을 냈다가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재입영까지 졸지에 백수신세가 되어 버려서 학교생활을 같이 하지 못하고, 술자리에서 얼굴 몇 번 본 것이 전부인 이 친구의 돌발행동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었다.

“션배애애.. 션 배는 내가 (끅!) 션 배를 좋아할 뻔 했떤거 아라여?!”

응?!! 이게 무슨 폭탄선언인가? 그것도 이 사람 많은 동아리 총회 뒤풀이에서… 일순간 주위의 시선이 단박에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느껴지는 의아하다는 눈빛. 

- 네(어리고 예쁜 여후배를 의미한다)가 왜 쟤(나를 의미한다)를??

- 쟤가 어떤 앤지 넌 모르잖아?!!


후배는 한쪽 눈이 반쯤 감겨서는 나를 게슴츠레 째려보았다. 대답을 내놓으라는 건가? 아니다, 술잔을 내밀고 있는 걸 보니 자기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게 술을 한잔 따르라는 것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술잔을 채워줬다. 만족하는 듯 술잔을 입에 가져가는 후배. 그 지경이 되어서도 소주 한 잔을 원샷으로 넘겨버렸다.

“근데 에에~”

후배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를 비롯한 모두의 귀가 쫑긋…

“처음에는 좋아 보였는 데에… 보면 볼수록 별로더라고여…”

후배의 말과 동시에 내 고개는 푹 숙여지고, 사람들의 관심은 제갈길을 찾아갔다.

- 그럼 그렇지

- 맞는 소리지 뭐…

그리고 이어지는 쐐기타.

“션배는 섹시하지가 않아” 

대충 격의 한 방을 내게 선사하고는 풀썩 쓰러져버린 그녀. 섹시하지가 않다는 한줄평을 마지막으로 그 후배를 다시 보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내 인생에 미친 타격은 십수 년 동안 남았는데… 그녀가 그걸 알고 사는지는 모르겠다.



섹시인지 뭐신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고, 내가 어릴 때부터 사람을 끄는 매력이 별로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추남이라 할 정도 못생긴 것도 아니고 몸매도 그냥 평범하니 외모가 흉물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고, 하루 2번씩 샤워는 하니까 냄새가  날 정도의 비위생도 아닐 것이며, 지금껏 말발로 먹고살았지 싶을 정도로 언변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하여튼 나는 인기가 없다. 성미가 고분고분하고 책임감이 있어서 일 시키기 딱 좋다는 평가는 늘 받아왔는데,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라거나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얘기 같은 것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게 또 기운이라는 게 있는지 오죽하면 내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댓글을 남기면, 그게 마지막 댓글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참 신기하지….


그나마 제법 친한 사람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양한 진단과 설루션을 주기도 한다.

- 늘 생각이 많은 것 같아서 말 붙이기 어렵다.

- 실제로 얘기해보면 그렇지 않은데 엄청 진지 충인 줄 알았다.

- 항상 웃고 다니지만 뭔가 모르게 어두워보인다.

- 평소에도 이렇게 농담도 하고 그래라. 왜 입을 다물고 있냐? 미소만 지으면 다가 아니다.


그러니까 종합하면 이런 거다. 오해 사기 딱 좋은 스타일이라는 것. 실제로는 안 그런데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 내가 딱히 뭘 잘못한 건 아닌데,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 결국 내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억울할 데가. 나름대로 잘 웃고, 친절하게 말하고, 예의 바르고.. 했음 된 거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만 하잖아?! 왜 나만 안된다는 것인지??


 이러니 자기 보호 기제가 발동을 안 할 수가 있나? 나 역시 사람의 내면을 가까이하는데 소극적이 되어버렸다. 함께 일하고 같이 지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인간적으로 다가가고 내면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것은 나도 싫어진 것이다. 그러니 “일이 힘들면 사람이 남더라”라는 말은 나와는 먼 세상 이야기가 되고, “사람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20년을 함께 일해온 동료들 중에 특히 나를 이끌어주고 지지해주는 분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그분이 대답하시는 게 걸작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모양이구나”

그분은 나와 달리 업계의 마당발이고 한 번 닿은 인연이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도우시고 도움도 받으시는 분이신데,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일단 주위에 사람이 많은 걸 부러워하는 건 네가 그 단면만 보기 때문이고, 네 주위에 사람이 없다고 하는 걸 보니까 지금 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값지게 생각 안 하는 것 같고, 마지막으로  너는 너의 매력이 뭔지를 모르는 것 같다.”




그래. 다 맞는 말씀이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한결같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건데 나는 결과물만 보고 부러워했으니 단면만 보았다는 말씀이 맞고, 이 매력 없는 사람 옆에서 함께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그분들로 만족하지 못한 잘못이 있는 것도 맞고, 내가 어떤 매력이 있어서 그걸 어필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도 맞다.

결국 나는 “섹시하지 않다”는 그 후배의 평가에 연연했던 것이고, “말 붙이기 어려운 진지충 같다”는 평가에 연연했던 것이다. 섹시하지 않고 진지충인 게 사실일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오히려 매력포인트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왜 나는 나의 모습이 어떤지 들여다보고 매력을 발산할 생각을 못했을까 말이다. 남의 평가에 휘둘려 나는 매력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한탄만 하고 있었으니… 자석에 끌려다니는 쇳덩이 같은 신세였던 것이지... 남들은 다 자석 하고 있는데...


그럼 나도 이제 자석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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