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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06. 2022

올해 희망은 핑계 대지 않는 것


2022년 새해의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역대 최다인 35만 명이 몰려들었고, 동해안의 숙박업소들의 예약률은 90%에 육박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나오고 있다.


그 정도로 사람들이 2022년에 기대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동해안으로 몰려간 초적극적인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그들처럼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건강한 삶이던, 부유한 삶이던, 아니면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도 살 수 있게 되길 바라든 간에 어쨌든 사람들은 새해에는 자신의 삶이 지난해와는 다른,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를 원한다.


이렇듯 희망의 기운이 곳곳에 가득한 새해 첫날에 희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희망은 현실의 불만을 토대로 한다.

 

오늘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서 내일도 꼭 오늘과 같았으면 하는 특수한 희망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또한, 불만이라는 것은 원하는 것과 다른 형태의 현실에 지금 처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불만이 만족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상태를 우리는 불행하다고 여긴다.

아울러 느껴진다는 것은 절대적 기준이 없이 나의 느낌이 기준이라는 의미이다.


종합하자면 욕망을 품는 것도, 가지지 못해 불만을 느끼는 것도, 가진 것보다 못 가진 것에 대한 마음이 커서 불행을 느끼는 것도 결국 나로부터 비롯된다.


처음 떠오르는 해에게 소원을 빌고, 송구영신예배에 나가 하나님께 빌고, 새해 다짐을 가득 적은 다이어리를 적는 것으로 희망을 이루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생각보다 잘 알고 있다.


무엇을 결심하던 오래 하지 못하는 자신을 조롱하며 책망하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그 사실을 대변한다.


하지만 사람은 진실을 직시하며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상처받지 않는 길로 우회하는 본능이 있는 존재라서

“올해도 작심삼일에 그쳤어. 하하”

하는 정도로 웃어넘겨버리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불만은 여전하고, 심지어 불행하다고 한탄하면서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주길 바란다.


새로 떠오르는 해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니다!)에게 그 역할을 맡긴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노력이란 고작 새벽에 일어나 빌고 비는 것뿐이다.


렇게 자신의 소중한 미래를 허망한 희망, 이루어질  없는 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희망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진짜 내일이 달라질 것이라는 느낌, 내일은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겠다는 느낌은 달라진 나를 느낄 때 확실해진다.


지금의 불만은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는 삶은 손에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작심삼일에 그치지 않고 조금이라도 안주하려는 육체와 정신에 지지 않고 맞설 수 있을까?


그 답들은 현자들이 이미 찾아내어 서점에 몇 톤씩 쌓아놓았으니 우매한 내가 굳이 또 다른 비법을 만들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달라지고자 하는 것도 ‘나’이고, 안주하고 싶어 하는 것도 ‘나’이라는 것이다.


불만을 느끼는 것도 ‘나’이고, 목표를 정하는 것도 ‘나’이며, 불만을 버려 현실에 만족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나’이다.


처한 상황이나 남을 탓하며 자기 잘못을 회피하려 핑계를 대지 않는 것!

자신의 노력 없이 남이나 상황이 해결해 줄거라 기대를 하지 않는 것!

이것들이 열쇠가 될 것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새 해에는 내 삶이


- 나의 태도를 먼저 점검하고

- 남과 상황을 탓하지 않으며

- 스스로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런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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