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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06. 2022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아… 아으….”

아득히 들리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에 설피 들었던 잠이 달아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채 안된 시간. 아내가 돌아누운 채 손을 등으로 돌려 더듬거리고 있다.

“또 등이 아파?”

아직 잠결에서 목소리는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잠긴 소리로 내가 물었다. 아내는 신음소리로 대답을 대신한다.

병원  가보라니까. 단순 근육통이 아니면 어쩌려고…”

나는 짐짓 짜증이 난 말투로 퉁명스레 말하며 아내의 등을 통통 두드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자”

“어디야? 여기 맞아? 더 아래야?”

“어… 거기”




아내가 등이 아프다고 입버릇처럼 말한지는 몇 달 되었지만 최근에는 잠을 설칠 정도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약간의 마사지로 괜찮아지고는 했지만 이젠 풀어질 때까지 시간도 길어지고 강도도 세게 해야만 한단다.  

아내는 원래 타고난 건강체질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감기 같은 잔병에도 잘 걸리지 않을뿐더러, 걸려도 오전에 약 먹으면 오후에는 말짱해질 정도로 회복력이 빠르다는 주장이며 10년을 넘게 같이 지낸 내가 보기에도 그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육상대회에 나갔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다는 것도 아내의 자랑거리 중 하나.


하지만 40대를 전후로 사무직으로 전환하면서부터 몸이 예전같이 않다고 호소를 했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전과 달리 앉아서 컴퓨터 업무만 해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낯선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아져서 그런지 이유는 특정할 수 없지만 아무튼 감기에 걸렸다느니 허리가 아프다느니 등이 쑤신다느니 하는 소리가 잦아졌다.


급기야는 몇 달 전부터 등이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워낙 허약체질이었고 사소한 통증들은 십여 가지를 안고 살아왔으니까 그런 것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게다가 그 당시의 내가 맡은 회사 업무들이 과중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것들이 많았으므로 아내의 그런 소리들을 귀담아들을 여유가 없기도 했었다.


아내가 고통을 호소하면 몇 번 성의 없이 마사지를 좀 해주면서 “그렇게 혼자 앓지 말고 병원에 좀 가라, 위장이나 췌장이 안 좋으면 등이 아프기도 한다더라, 큰 병이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식의 잔소리를 덧붙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통증 때문에 새벽에 잠을 깨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내의 등을 주무르면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연애기간까지 합해 거의 18년을 함께해서 아내의 존재는 나에겐 거의 공기의 존재나 마찬가지이고, 지금까지 한 번도 부재를 상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엄마가 없어진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머릿속에 스쳐간다. 슬픔의 감정이 높은 파도처럼 몰아쳐왔다. 이 친구가 없으면 난 재미있는 것, 좋은 것, 예쁜 것을 보고 들으면 누구와 나눠야 된다는 말인가?!


나는 갑자기 울컥하여 아내를 불렀다.

“다음 주에 병원에서 검진을 좀 받자.”

“안돼. 지금 일이 밀려서 야근해야 될 판이란 말이야.”

“겉이 아픈 게 아니고 속병이면 어쩌려고 그래. 병을 키우고 있는 거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다시 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내는 퉁명스레 내 손을 쳐내고 지압기를 가지러 거실로 나가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노랫말 하나를 떠올렸다.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 조용필


그렇다. 가장 소중한 건 내 옆에, 내가 이미 가지고 있어서 잃어버릴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 뻔하디 뻔한걸 나는 알면서도 몰랐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알았다는 건 머리로 알았다는 것이고 몰랐다는 건 외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랫말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사람들은 ‘먼 길’을 떠난다. 소중한 것을 찾아서… 옆에 있는 것이 자기가 찾던 소중한 것인지를 모르고…


돌아보면 내 삶도 그러했다. 내 건강이나 가족들이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보다 돈벌이와 성공을 더 우선시하면서 살아왔다. 가족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들을 위해 적긴 해도 꾸준히 돈을 벌었지만 정작 그들이 아플 때나 슬플 때는 외면하고 살아왔던 것이 아닌가? 소중한 것을 옆에 두고 신기루를 쫓아 ‘먼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성실과 열정은 미덕이다. 이건 불멸의 법칙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또한 혹사와 스트레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시간의 희생의 다른 말이다.

그렇지만 그만큼의 투자와 희생이 없이는 성실할 수 없고, 열정적일 수 없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그 둘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이상적이겠으나 이미 40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안다. 이상향이란 말 자체가 불가능과 의미가 같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먼 길을 떠나겠는가? 아니면 모든 걸 버리고 새로운 희망봉을 찾겠는가?




아내가 지압기로 등을 퉁퉁 두들겨대며 돌아왔다.

“아직 안 자고 뭐해?”

“응 아니 그냥…”


또 뭔 생각을 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아내가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시간 되면 병원 갈 테니까 걱정 말고 자요. 내일 회사 가서 피곤하지 않으려면.”

“나… 다른 일 할까? 시간 좀 낼 수 있는 그런 걸로…”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끙~ 소리를 내며 돌아누우며 말했다.

“그 나이에 그런 소리 말고 웬만하면 일찍 일찍 퇴근해. 몸 축내지 말고”


진리가 여기에 있었다. 내 생각보다 아내의 한 마디 말이 진실이 가까웠다.

‘웬만하면’이라는 말에 모든 방법이 담겨 있었다. 중요한 게 뭔지 깨달아서 우선순위를 조정하라는 것이다. 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데? 왜 일이 무조건 먼저인데?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뭐가 좋았는데?

아… 현자여. 휘파람 소리에 실려 들려오는 그대의 속삭임이여.   


‘미안하다. 앞으로 우선순위를 잘 조정하면서, 뭐가 소중한지를 더 생각하면서 살게’

속으로 다짐하며 아내가 아프다고 했던 부분을 다시 정성 들여 꼭꼭 주무르자 아내가 확 짜증을 냈다.


“아! 막 잠들 뻔했는데 왜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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