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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06. 2022

당신의 보물섬은 괜찮아요?

몇 해전 가을, 내가 프로듀서로 제작과 서비스에 4년을 꼬박 헌신한 게임은 오랜만에 인기순위 1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그게 진짜 현실을 반영한 수치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18년 짬밥인데…

그로부터 5개월 뒤, 게임 캐릭터의 IP를 가진 업체에서 서비스 중단 요청 공문이 왔다.

‘매출 저하와 신규 다운로드 부진으로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영향이 어쩌고 저쩌고…’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출시하고 평가를 받으면서 흥할 때도 있었고, 망할 때도  있었지만 (솔직히 망한 적이 더 많았지…) 그래도 늘 다음 기회를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솔직히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18년 짬밥인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려는데 발을 내딛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근육, 인대, 관절 등이 동원되는 것이 의식이 되고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신체적으로 이상은 없는 스트레스성 증상이니 며칠 안정을 취하라고 하고, 주변 사람들은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번아웃이 왔다고들 했다.




게임 제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가 어떤 것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고 시작한다. 하지만, 창작자는 소수이고 나머지는 그의 작품을 만들어주는 손발의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참여한 작품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 그 속에서 나의 역량도 발휘하는 것, 나아가 언젠간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꿈을 향해 달리는 것이고, 그렇게 게임회사 건물은 항상 불이 켜진 등대가 되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청춘을 바쳐왔고, 결국 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데 까지는 도달했다.


그런데 내 작품이라고 해도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회사의 사업전략, 시장의 히트작, 유저들의 니즈에 맞추게 되고 결국 창작의 즐거움도 잠시 뿐, 끝없는 조정과 계획 속에 파묻히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몇 년을 시달려서 출시를 한다고 한들 사업전략, 시장의 히트작, 유저의 니즈는 계속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어서 또다시 반복에 반복.


내 18년의 커리어를 돌아보니 나는 늘 성공했을 때의 달콤함을 상상했었다. 약속된 비율의 인센티브를 받으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뭐도 하고 아무튼 행복하게 살아야지~! 연봉도 많이 오를 거고 아무튼 다 좋을 거야! 그러니까 오늘을 갈아 넣는 것쯤은 당연한 투자이고 희생이야.


그런데 마침내 닿은 곳은 아무것도 잡지 못한 빈 손과 번아웃이라 이름 지어진 허무함.


꿈을 찾다 보물이 된 우리 작은 섬
- 보물섬/Kyo(이규호)


보물이 묻혀있을 나만의 작은 섬을 향해 나아갔지만, 결국 닿지 못하고 그 섬은 박제된 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초라했다. 그리고 다시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비참했다. 일어나기를 어려워하는 몸보다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더 아팠었다.




“너 잘하고 있어. 그동안 애썼어. 괜찮아.”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에 식스센스란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마음치료 같은 걸 받으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외치는데, 미주라는 어리고 예쁜 친구가 이 말을 듣고 펑펑 우는 장면을 보고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울음이 터졌다.

함께 과일을 먹던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아내는 내 마음을 아는지 가만히 등을 두드려주었다.


잘했어. 애썼어. 괜찮아

지쳐 쓰러졌을 때 내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번아웃이라는 것을 지우고 일어난 지금만큼 다정하고 좋았을까? 아니면 너무 지쳐서 헛소리로 들었을까?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위로가 될지 아니면 흔하고 값싼 헛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이를 악물고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도전할 용기와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그동안 애썼어. 괜찮아. 천천히 다시 시작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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