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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07. 2022

참으면 복이 온다

“모두 상의 단추 두 개씩 풀고 각자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를 한다. 실시!”

교관의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쭈뼛거리던 나를 포함한 훈련병 무리는 조교들이 수통을 하나씩 나눠주자 그제야 실감한 듯 지친 몸을 뜨거운 연병장 바닥에 뉘었다.

“2소대가 가장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해 본 훈련코스를 완주했으므로 본 교관은 약속대로 여러분에게 시크릿 리워드를 선물하겠다.”

늘 선글라스를 끼고 미국 사람처럼 턱이 사각형인 데다가 영어단어 쓰는 걸 좋아해서 ‘맥아더’라는 별명이 붙었던 훈련교관은 옆구리에 손을 얹은 채 조교들에게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조교들이 무언가를 나눠주자 몹시 지쳐 땡볕 아래 널브러졌던 훈련병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담배 한 가치와 차가운 캔커피.


내가 20년도 지난 그날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한 달만에 피운 그 담배의 짜릿한 맛 때문이다. 손 끝 발 끝까지 저릿저릿하게 했던 꿈에도 그리던 담배 한 모금. 매일 1갑씩 피우던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맛과 느낌. 담배가 역하게 느껴져서 아예 끊어버린 지금도 다시 떠올리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의 쾌감이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새벽 극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에 갔다가 그로부터 수술이 끝날 때까지 3주간 물도 마시지 못하고 금식을 해야 했던 적이 있다. 입술이 너무 마르지 않도록 입가를 물로 적시는 정도만 허용이 되었는데 의외로 허기가 지지는 않았지만 갈증을 견디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입 안이 너무 쓰고 마른침이 올라와도 가글 이상은 허용되지 않았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도 내 첫 질문은 '물을 언제 좀 마실 수 있겠나?'일 정도로 그토록 물 한 모금이 간절했다. 배에 찬 가스가 빠지고 간호사로부터 허락이 떨어져 급히 마신 한 잔의 물 맛은… 뭐 어떻게 해야 설명이 되겠는가!


이처럼 너무나 익숙하고 평범했던 것들이 ‘단절’을 통해 엄청난 갈망의 대상이자 기쁨이 된다는 것을 체험했던 경험은 다들 한두 가지씩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잽싸게 그 소중함을 잊는다는 것이겠지만.. 너무 익숙한 것들이니 말이다. 하하.




현대인이 안고 있는 문제점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비만과 그에 따른 성인병들이다. 고지혈증, 고혈압, 지방간, 당뇨 기타 등등. 부족한 운동 등의 생활습관도 한몫을 단단히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과다한 영양섭취에 있다. 먹고 싶다는 욕망을 부추기고, 또 바로 만족시킬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미디어에는 ‘맛있겠지? 먹고 싶지? 얘 봐라. 이렇게 맛있게 먹는데… 너는 안 먹을래?’하는 유혹이 넘쳐나고, 그 장단에 맞춰 손가락 몇 번 놀리면 집 앞에 진수성찬이 배달되는데 먹지 않고 버틸 수가 있나~

그렇게 먹다가 당뇨병이라도 걸리면 맛없는 것들만 골라먹게 된다고 의사들이 떠들어대도 ‘알겠는데, 마이웨이!’를 외치는 것이다. 


하긴 의사 말은 죽어라 안 들으면서도 자기 이름은 빨간색으로 안 쓰는 게 한국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다가 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렇게 살다가는 큰 일 나겠다 싶어 지고, 그러면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원푸드 다이어트, 저탄 고지, 간헐적 단식 등등.

이런 다이어트 방법들의 공통점은 ‘절제’이고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다.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참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지금의 희생을 미래에 보상받는다는 보장이 있어?”

이미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스마트폰의 화면은 배달앱에서 결제버튼 누르기 직전일 것이니, 아 참 가련한 자여. 너의 이름은 곧 나 이니라.




그러니까 이제 관점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건강해지기 위해 참는 게 아니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참는 것이다! 


단절 끝에 찾아온 담배와 물이 주는 쾌감처럼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맛있는 치킨이지만) 참았다가 먹으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한 달에 한 번씩만 먹으면 그날이 얼마나 기다려질까~로 생각을 바꿔보자는 말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아이들과 배달 달력을 만들기로 했다.

- 일주일에 한 번의 배달음식만 허용.

- 단, 음식 종류는 중복할 수 없음.


독재자의 령이 떨어지자 당장 아이들의 항의가 튀어나온다.

“치킨을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먹는다고!!??”


야들아. 약속한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치킨 함 뜯어봐라. ‘아… 치킨이 이런 맛이었나’ 하면서 먹게 될 거다. 대신에 아빠가 실컷 먹을 수 있게 한 마리씩 더 시켜줄게. 그리고 오해할까 봐 하는 이야긴데 우리 집 살림의 엥겔지수를 낮추기 위해 이러는 건 아냐.


절대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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