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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08. 2022

40대가 되어 바라보는 우아한 세계

그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나도 제법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림의 형식과 스토리와 함의와 사조를 알지 못해도 그림 앞에 서서 전체적으로 때로는 부분 부분을 깊숙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적 허영심이 꽉꽉 채워지는 기분을 주는 것이었다. 물론, 함께 간 사람이 그토록 오랫동안 뚫어져라 뭘 봤냐고 물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입바르게 떠들어대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었고.


내가 특히 좋아하던 것은 풍경화였다. 예들 들어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보러 가도 사람들이 그 유명한 ‘이카루스’나 ‘춤’에 열광할 때 나 홀로 그의 초기작들인 풍경화에서 발걸음을 떼지 않는 식이었다. 풍경화가 유독 좋았던 이유는 상상의 여지가 컸기 때문이었다. 캔버스에 담긴 풍경도 물론 환상적이었지만  화폭에 담기지 않은 그 너머의 세상을, 화가는 눈을 살짝만 돌려도 볼 수 있었을 공간을 상상해 보는 것이 나에게는 큰 재미였다. 하지만 아무리 이면을 상상해도 보이는 풍경의 연장선상을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고딕풍의 넓은 홀에 모여 춤을 추는 신사숙녀가 담긴 풍경의 이면을 상상해봐도 여전히 대리석 기둥으로 둘러싸인 화려한 홀의 풍경일 뿐 그 너머의 것들에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했다.



 

사실 내가 살면서 꿈꾸던 미래도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처럼 예쁘고 아름답기만 한…. 2차원의 풍경, 화폭에 담긴 풍경만을 원하고 바라 왔던 것이다.

현실은 3차원이고(시간까지 포함하면 4차원) 입체적인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당장 내 주변만 봐도 길면 짧은 게 있고, 넘치는 게 있으면 부족한 것이 있게 마련인데… 왜 내 미래엔 모두가 길고, 모든 게 넘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평생을 써도 모자라지 않을 돈을 벌어도 병상에서 꼼짝도 못 하게 되어버릴 수도 있고, 부족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갖춰진 저택에서 나 혼자 라면을 끓여먹게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거늘.



영화 “우아한 세계(2007)”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생활형 조직폭력배 인구는 가족과 오순도순 살아가고자 눈물 나는 악행을 이어가지만 결국 소망하던 전원주택에서 가족들 없이 홀로 남겨진다. 비빔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인구가 가족들과 행복했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보다 그릇을 던져버리고, 누구도 치워줄 사람이 없어 다시 주섬주섬 주워 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




그림같이 우아하기만 한 세계는 없다. 현실이 지독하게 복잡하게 얽혀있는 입체 퍼즐이라면 미래라고 다를 것이 있을까? 좀 덜 꼬여있고 좀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이길 기대하는 수밖에.


하지만 낙심하지는 말자. 돌아보면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경우가 더 많더라.


‘내일도 오늘보다는 낫겠지’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고,

‘오늘이 어제보다 낫네’하며 감사할 수 있는 내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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