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즈니스의 영역

일상의 전쟁터에서 싹트는 전우애

by 동녘새벽

1) 비즈니스의 영역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출근 시간 스마트게이트에 사원증을 태그 하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에 로그인하게 됩니다. 조직에서 통용되는 문화와 위계에 맞추어 몸과 마음의 모드를 바꾸는 것이죠. 모든 변화에는 스트레스가 따릅니다. 심지어 그것이 좋은 변화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이 매일의 출근과 모드 변환이 직장인들의 고질병을 만들어 내는 원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입사원 시절이나 조직을 옮기면, 야근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퇴근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녹초가 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변화의 스트레스를 이겨내느라 심리적 자원을 많이 소진해서 그랬겠지요.


비즈니스 영역의 대인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조직 구성원들 간의 관계망을 잘 보여 주는 소셜 스마트 글래스(Social Smart Glasses)를 상상해 봅니다. 이 제품은 직장 상사, 동료, 후배들의 성격과 기분, 업무상 이해관계의 데이터를 축적하여 복잡하게 얽힌 대인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사에게 할 보고가 성공할지 여부를 가능성으로 표시해 주고, 업무 상 실수를 한 후배에 대해 위로를 해주는 것이 좋을지, 따끔하게 한마디 해줄 지도 알려 줍니다.

복잡 미묘한 대인관계를 잘해 나가는데 굉장한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기계적인 대응에 인간미를 잃고 직장 내 대인관계가 더 안 좋아질까요? 그것도 아니면, 상대방도 똑같은 스마트 글래스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AI가 쓴 각본대로 연기하는 배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상상이 일말의 개연성을 갖는 것은 대인관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인지적, 감정적 자원을 소모하는지를 드러내 줍니다.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한 마음의 갑옷을 겹겹이 챙겨 입는 비즈니스의 영역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왜 상처받고, 화가 나는지 이유를 정확히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유를 모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또 상처를 입게 되죠. 성능 좋은 소셜 스마트 글래스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일상의 심리학자로서 마음을 잘 헤아려 볼 수 있는 생각의 프레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인 관계에 있어서의 진정성은 유용한 생각의 프레임이 될 수 있습니다.


사례를 통해서 한번 알아볼까요?


- 에피소드 1. -


신입사원인 김사원에게 직속 상사도 아니고 그저 같이 일하는 옆부서 박대리가 스르륵 다가와서 이야기합니다.

"이 자료를 세 가지 기준으로 분류해 줄래? 이런 업무를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다 너를 훈련시켜 주려고 하는 거 알아 두고!"

별로 친하지도 않지만, 계속 일을 같이 해야 하는 박대리인지라 단호하게 거절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김사원은 갑자기 금요일 저녁 시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자료가 아닌 박대리를 세 가지 기준(머리, 가슴, 배)으로 분류해 버리고 싶습니다. 왠지 더 화가 나는 것은 곤충 같은 박대리가 허드렛일을 시키면서 김사원의 훈련과 성장을 운운한 점입니다.

김사원에게 갑작스럽게 일을 떠미는 박대리의 행동과 잃어버린 금요일 저녁 시간이 화가 나는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난주 일을 맡긴 정과장님에게는 화가 나지 않았던 기억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요?

모든 상황은 한 단계 추상화해 보면 꽤나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김사원이 박대리에게 화난 것은 자신을 단지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박대리도 김사원을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이를 부인하려는 시도로 훈련과 성장을 언급했습니다.

반면, 정과장님의 경우는 맡기는 일의 세세한 맥락과 의미를 짚어 주셨고, 어떤 방법으로 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방향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일이 끝난 후에는 명확한 피드백도 해주었습니다. 김사원이 생각해도 정과장님 본인이 그 일을 하는 것이 더 손쉬워 보였습니다.


살짝 더 미묘한 사례를 보겠습니다.


- 에피소드 2. -


"너 소개팅할래?"

뜻밖의 야근으로 폭발하기 직전의 김사원에게 날아온 청량감 넘치는 메신저가 깜박입니다. 입사 동기이자 관계사에 재직 중인 이사원이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사원은 나이가 한 살 많아서 형이라고 부르는데,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죠. 하기 싫은 야근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조금 풀립니다.

"좋아요! 저는 말이 잘 통하는 지적인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그래~! 전화번호 줄 테니 연락해서 만나 봐."

하지만 아쉽게도 나가서 만난 소개팅 상대는 지적인 면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습니다. 관심사가 완전히 다르고, 의사소통의 재미가 없었습니다. 더 만나 볼 생각은 없었지만, 최대한 정중하게 잘 헤어졌습니다. 김사원의 관계 동심원으로의 진입은 실패한 셈이죠!

"또 소개팅할래?"

일주일 후 또다시 이사원의 메신저가 깜박입니다.

소개팅에 나갔지만 역시 지적인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김사원의 취향은 존중되지 못했습니다.

"소개팅할래?"

한 달 후에 다시 깜박인 메신저에 여전히 솔로인 김사원은 "형! 저 얼마 전에 여자친구 생겼어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김사원은 세 번째 메신저를 받았을 때 기분이 꽤나 상했는데요. 왜일까요?

이사원은 회사 부서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에게 소개해줘도 창피하지 않을 남성(=김사원)을 소개해주면서 환심을 얻은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김사원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인상에, 예의도 발라서 소개팅 상대에게 막 대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사원에게 있어 김사원은 소개팅 풀에 있는 꽤 훌륭한 자산이었던 것이죠.


이사원은 김사원에게 잘 어울리는 좋은 짝을 찾아주려는 순수한 목적을 갖지 않았습니다. 김사원은 이사원에게 그저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이성을 소개해주고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두 번의 경험으로 자신이 그저 "수단"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김사원은 생기지도 않은 가상의 여자친구를 만들어 이사원을 우정의 영역에서 비즈니스 영역으로 밀어 보냈습니다. 이사원은 김사원을 사회적 자산으로 여기고 일종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으니까 김사원의 입장에서는 올바른 조치였습니다.


위의 두 가지 사례에서 박대리와 이사원은 김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김사원을 “수단”으로 여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겼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써 이용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 정과장님은 김사원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김사원은 상대방이 자신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화가 난 것입니다. 이용하려는 의도를 교묘히 감추려 했다는 점에서 더욱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고요.

곰곰이 따져보니 대인관계에서 마음이 상하거나 화가 나는 대부분의 상황과 이유를 생각해 보면, 상대방이 자신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이쯤 하면 독일의 한 유명한 철학자가 떠오릅니다. 네... 바로 칸트입니다.


“나 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절대로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마이클 샌델 , 정의란 무엇인가 중에서)


이렇게 일상에서의 경험을 곱씹어보니 칸트의 정언 명령에 이르렀습니다.

어렵기로 유명한 칸트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듯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이처럼 구체적 사례를 추상적 개념으로 변환해서 조금 더 보편성을 얻는 생각의 과정이 바로 개똥심리학을 하는 방법인 듯합니다. 철학이나 심리학이란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네요.

이렇게 김사원은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이 나를 수단으로 여기는지 목적으로 대하는지를 따져보니 상대방의 진정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되습니다.


일상의 김사원과 철학자 칸트의 도움을 받아,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진정성을 아래와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정성 있는 대인관계는 상대방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공감이 가시나요? 이 정의를 현실의 대인관계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어떤 대인관계에서 뭔가 삐걱거리고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난다면, 상대방이 나를 목적으로 대하고 있는지,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됩니다.

물론, 나의 말이나 행동에 화를 내거나 기분이 상해 있는 상대편을 살펴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여기면서 나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 지 말입니다.


회사라는 조직은 남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여겨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최적화된 곳입니다. 과거에는 남을 이용하려는 의도조차 감추지 않았죠. 사생활을 넘나들며, 군림하고 복종하는 문화가 만연했으니까요. 지금은 범죄라고 여겨지는 갑질 수준의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증언합니다.

요즈음은 이런 일들이 교묘하게 벌어집니다. 기업마다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으니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정성을 위장하는 기술들이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악행은 진정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MoT(Moment of Truth) 즉 진실의 순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투우에서 소의 급소를 찌르는 순간(Moment de la verdad)에서 유래했다고 하죠. 원래는 마케팅 장면에서 쓰이는 개념인데,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의 진정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을 뜻하기도 합니다.

가장 흔히 마주하는 진실의 순간은 아파서 중요한 일의 진행에 차질을 겪는 순간입니다. 저는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부하직원의 상태를 묻지 않고, 업무 보고에 차질이 생기면 어떻게 하냐면서 화를 내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진정성이라곤 0.1도 없다는 것을 드러 낸 진실의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진정성 부재의 마음을 탐지하기 위해 진실의 순간에 주목해야 합니다. 믿을만한 성능의 소셜 스마트 글래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사실 우리 모두가 진정성을 가지고 서로를 배려한다면 굳이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비즈니스의 영역에서는 워낙 남들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문화가 만연해서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진정성 탐지의 안테나를 세우는 것 역시 조심해야 합니다. 경계심은 마음을 방어하는 데 있어서 좋은 툴킷이지만, 방어벽을 쌓는데 너무 많은 자원을 들일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으니까요.

첫 번째 부작용은 진정성 탐지 작업에 많은 에너지를 들여서 심리적으로 소진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부작용은 더 심각한데, 경계심으로 인해 아예 진정성 있는 대인 관계를 맺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대인관계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을 필요는 없습니다.

비즈니스의 영역에서도 좋은 관계를 맺을 만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문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좋은 팀워크 속에서 일하면서 끈끈한 전우애로 맺은 대인관계는 큰 만족을 주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 관계의 동심원 안쪽에 있는 우정의 영역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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