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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06. 2019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카프라



데카르트 이후로 파생된 과학의 역사는 이제 그동안 신비주의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라는 이유로 과학의 범주에서 빠지고 심지어 미신이라고 주장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것의 사회적인 의미나 실제 유용성을 재고해보아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예를 든 것이 역경이다. 동양철학의 음양오행론의 목적은 음과 양의 조화이고 어느 쪽도 지우치지 않는 중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서양철학과 과학은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이었다. 관계보다는 성장을 중요시 했고 조화보다는 효율을 우선시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정도까지 오게된 환경오염과 언제라도 수십억의 목숨을 앗아갈 핵탄두를 위시한 대량살상무기의 출현이다.


 

지금 인류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탄셈이다. 모두들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고는 있지만 이것을 멈출 방법을 모른다.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 '양적인 성장'을 외친것은 똑같았다. 경제나 사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상대적 우위에 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이런 사고방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여전히 인류는 파국에 수렴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의 인류에 어떤 처방을 내려야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게될지는 의문이다.


 

저자가 정치, 경제, 과학. 심리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를 들고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하였지만 그중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탈피해서 작은 경제를 지향한다는 말만큼 오늘날 세계화된 지구에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말이 있을까 싶다. 금융의 마술로 인해 자본은 점점 거대한 것이 되어가고 있고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자본의 거대화는 풍선에 바람을 넣는 것처럼 어느날 갑자기 빵하고 터지는 일 외에는 그 해결방법이 없어보인다. 고도자본주의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는 그 날의 충격으로 지구상에는 매우 끔찍한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 사람들은 또 다시 풍선에 바람넣기를 시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아는 것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미래를 경고하기 위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신과학운동이나 환경운동을 제안하지만 이런 것들이 각국의 강력한 내셔널리즘 앞에서는 눈녹듯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모두가 손을 잡고 나란히 천천히 걸어가다가도 앞에 보이는 포도나무의 열매를 먼저 따먹기 위해 누군가 달리기 시작하면 곧 대열은 흐트러지고 아비규환이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류에게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은 인간의 양심에 브레이크를 다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어한다는 것은 현대의 과학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이므로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관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요소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만약에 그것이 성공한다고 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개념 자체가 바뀌는 것이고 그동안 정체해 온 인류의 진화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스스로 진화의 방향을 통제할 수 있을까? 인간은 포도나무까지 대열을 갖추고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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