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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08. 2019

도덕적인 가정과 비도덕적인 사생활

[애완동물 공동묘지] 스티븐 킹



숱한 미국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미국인들은 가족애가 남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전형적이라고 해도 좋을 미국가정의 어떤 표본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며 미국인들은 그것을 최고의 가치들 중 하나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인자한 노부부와 아들내외 그리고 손자들로 이루어진 교외의 중산층 가정은 그 전형적인 표본일 수도 있겟다. 아들이 도심지로 출근을 하고 나면 스쿨버스가 도착하고 시끌벅적하게 손자들을 등교시킨 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노인은 카드놀이 친구들을 찾아나서는 그런 안일한 가정말이다. 이런 가정의 표본은 미국인들 뇌리에 깊이 관념화 되어있다. 그리고 한국의 가정도 미국과 크게 달라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높은 이혼율, 맞벌이, 세대갈등, 소통부족 등으로 많은 가정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가족간의 불신도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개개인의 뇌리에 관념화 된 행복한 가정에 대한 믿음은 어느새 그 외형만 남게되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는 혼외정사와 스와핑 등으로 부부간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지더라도 외부로 보이는 모습은 다정한 부부의 모습이어야 한다. 특히 아이들에겐 근엄하고 도덕적인 모습으로 비쳐져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덕적인 가정과 비도덕적인 사생활이 공존하는 모순되고도 이중적인 삶을 살게된다. 이런 상황에서의 가정은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유리잔 같은 것이 되고 관념화된 가정의 외형에 대한 집착은 깨어진 유리잔을 억지로라도 다시 이어붙이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가장은 사회적인 규범을 초월해서라도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가족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에게 사적인 복수나 처벌을 행하더라도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같은 사회적인 공감을 얻는다.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공동묘지에서 걸어나온 좀비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나 가족의 구성원들의 부정이 밝혀지는 일이다. 자신의 외도를 배우자나 자식들이 알게 되거나 하루아침에 오쟁이 진 남편이 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남아있는 유일한 완벽한 가치인 가정이라는 유리잔이 깨지는 순간이다. 



개인은 부조리하고 음란한 사회와 청교도적이고 화목한 가정을 동시에 살아나가야 한다. 기술문명에 소외될 수록 더더욱 사람들은 가족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그 울타리를 견고하게 치려고 할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어지게 되며 가족의 문제에만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가 발생시키는 폭풍은 관념화 된 갸날픈 유리로 지어진 가정을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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