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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07. 2019

진정한 유토피아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소유하는 삶은 소유를 통해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는 삶이다. 무언가를 자신이 소유하는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만족을 느끼거나 자신이 가진 것을 남들에게 과시함으로써 인생의 보람을 얻는 것이다. 사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소유하는 삶을 살고 있다. 좀 더 좋은 차, 좀 더 좋은 집, 좀 더 좋은 학벌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재화가 한정된 상황에서 소유하는 삶은 경쟁을 유발하고 많은 탈락자를 만들어 낸다. 현대사회의 비극은 여기서 기인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소유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소유하지 않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태어나서 부터 지금까지 교육과 사회적 시스템 모두 소유하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해왔고 그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세뇌당해왔다.


 

소유하지 않고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인지 현대인들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소유로써 행복해 질 수 있나를 검토해 보는게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거기에 대해 물론이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이 생각하는 소유로 인한 행복은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는 것이고, 또는 과거에 있었던 것이다. 결코 현재에 행복이 있지 않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현재는 돈을 더 벌 가능성이 있는 미래에 비해 결코 행복하지 않다. 따라서 소유하는 삶은 언제나 목마르다. 소유의 속성이 항상 '더 많이!'를 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유하는 삶은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


 

존재하는 삶은 소유하지 않는 삶이고 경쟁하지 않는 삶이다. 탈락자를 만들지 않는 삶이다. 사람들은 소유하는 것 이외의 목적을 달성해서 행복해 지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의 자아는 주변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으로 실현된다.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제한된 재화에 대한 경쟁을 하게되는 소유하는 삶과는 달리 존재하는 삶은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낙오자가 생기지 않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


존재하는 삶은 결코 개인이 혼자 소유욕을 버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경쟁하는 사회를 내버려 둔채 소유를 포기한다는 것은 은둔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스스로를 저주하지 않고 인간으로써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개인의 소유에만 정신이 팔린 인간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쓸 여가가 없다. 하지만 개인의 소유가 문제가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사회적인 문제에 더욱 더 관심을 가질 것이고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기가 더욱 용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소유욕을 너무도 당연시 하고 오히려 선한 것으로 여기는데서 문제는 시작이 되었다. 인류가 스스로 뿌리 깊은 사유재산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한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긍정적인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지고 싶은 것을 마음껏 가지는 곳이 유토피아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소유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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