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변신인형] 왕멍

수천년간 세계의 중심으로 군림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서양의 군대와 과학기술 앞에 굴복하고 식민지상태에 있다가 공산혁명이 일어나 일거에 전통을 부정하고 사회주의국가로 변신해서 냉전하의 사회주의 특유의 폐쇄적 국가로 전락하나 싶더니 문화혁명이라는 내부적인 개혁으로 몸살을 않다가 결국 개방정책으로 느닷없이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중국의 20세기는 말그대로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스러움을 대변하는 인물이 니우청이고 전통적인 중국의 가정을 대변하는 인물이 그의 아내와 아내의 언니, 엄마이다. 니우청과 이 세명의 여인은 끊임없이 불화한다. 유럽에 유학을 다녀온 니우청은 봉건적이고 구식이고 지저분한 중국의 현 상황을 참지 못하고 서양식 사상과 물질문명을 동경한다. 주위사람들에게 맹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주입시키려하지만 가장으로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현실의 무능함은 번번히 가족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불씨가 된다.

 

이런 가정의 불안함은 구성원들이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는 있지만 서로를 상처내게된다. 니우청과 아내는 물론이고 니우청과 아이들사이의 갈등도 날이 갈 수록 커져간다. 그리고 이모, 외할머니와 조카들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니우청에겐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서양사상, 그가 투신하기도 했던 혁명군, 중국식 사회주의 사상, 그 어떤 것도 니우청과 나머지 가족들과의 갈등을 해결해 주진 못한다. 니우청의 아들인 니자오는 공산당에 투신해서 자신의 이모와 외할머니를 한때 지주계급이었다는 이유로 반동분자로 고발한다. 식민지 하에서 서양사상에 경도되었던 아버지로 인해 풍파를 격은 가족은 다시 한 번 사회주의혁명, 문화혁명으로 풍파를 격는다.

 

하지만 가족이란 것은 이같은 외부적인 이상주의와는 별개로 동작한다. 혁명군들이 아무리 혁명가를 소리높여 부르며 마을을 행진해 나가더라도 그 마을의 구성원들은 배를 곯는 아이들과 노인들을 위해 뭔가 먹을 것을 마련해야 한다. 반동분자나 애국자나 인텔리나 농민이나 인간으로써 가지는 보편적인 삶의 기초가 있다. 그것은 가족간의 사랑, 이웃들과의 친교, 이런 것들을 아우르는 개인의 내밀함이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작가가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이상과 현실에 대한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이상을 위해 현실을 희생한다. 하지만 이상은 현실에 바탕하는 것이다. 현실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을때 이상은 그만큼 실현되는 것일것이다. 현실을 바꾸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 고통은 현실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 고통을 외면하거나 고통이 있는것을 없다고 하는 것은 칼 포퍼가 이야기한 대중의 적이며 한낱 사기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