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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14. 2019

인류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유전자

[동양과 서양] 최영진



동양은 예로부터 닫힌 세계였다. 중원을 차치한 세력은 그대로 성을 쌓고 눌러 앉았서 강력한 구심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서양은 열린 세계였고 고대로 부터 끊임 없는 정복사업에 열을 올렸다. 항해술을 계속 발전시켰고 급기야 희망봉을 돌고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19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동양과 서양은 조우하게 되고 전쟁기술이 우세한 서양이 동양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이 때를 기점으로 서양의 문화와 과학기술이 선인것으로 평가되기 시작했고 동양은 급속하게 서양화의 길을 걷게 된다. 동양인은 현재 서양의 문화로 살아가고 있고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롭지 않다. 늘 서양의 기술문명과 막강한 문화력을 부러워했고 서양의 것이라면 덮어놓고 추종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일본은 일찌감치 탈아입구를 부르짖으며 스스로 동양의 정체성을 부정했고 그 뒤를 따르는 동양의 개발도상국들도 아시아를 넘어 구미에서 인정받는 것이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다들 믿어왔고 현재에도 그렇다.


 

하지만 두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환경파괴와 핵개발의 위협앞에서 서양은 모든 것의 근본부터 다시 검토해야한다는 자성론이 일어났고 그동안 서양문명을 주도했던 이성중심의 철학과 세계관은 실패한 것으로 판정받았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론을 철학의 근본으로 삼았던 동양사상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서 앞으로 동양사상이 인류에게 새로운 철학과 메세지를 제공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동양에는 이미 제자백가시절에 서양의 근대에 와서나 이룩할 수 있었던 인권사상과 통치론이 존재했다. 과학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이후에나 정립된 우주론과 원자론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수천년전의 주역에 등장한다. 물론 서양의 과학은 경험적이고 관찰적이다. 반면 동양의 그것은 통찰적이고 직관적이다. 동양의 방식이 귀납적 방법론에 위배된다고 과학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직관적인 연역적 추론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것으로 현재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동양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이 자연과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부터 왔고 자연과 결국은 하나라는 사고방식은 동양인들에게는 매우 당연하게 여겨진다. 동양인들의 삶 자체에 노장사상과 유가사상이 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양사상에서 자연은 정복하거나 길들여야하는 대상이므로 자연과 인간은 분리되어있다. 인간은 신이 선택한 특수한 종족이고 자연은 인간을 둘러싼 배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화를 중요시한 동양과 선악론과 이분법적인 논리에 매몰된 서양은 애당초 철학의 출발자체가 달랐다. 신이 모든 것을 결정해주던 중세까지는 서양의 과학기술은 동양에 못미쳤다. 하지만 신이 사라진 근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이 신의 자리를 대신해야했고 인간 이성으로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참담한 결과를 현재 목도하고 있다.  


인류가 절멸하지 않고 그 다음의 인류로 다시 진화할 수 있으려면 이성중심의 사상체계를 완전히 버리고 자연과 조화할 수 있는 사상체계를 다시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현재까지의 과학기술에 접목해서 기술의 윤리가 확립되어야 한다. 인류의 다음 번 진화는 생물학적인 진화가 아니라 문화적인 진화가 될 것이다. 다윈이 이야기한 진화론에 의하면 형질은 유전하지 않으므로 다음 번의 인류도 현재의 인류와 생물학적으로는 다른점이 없겠지만 인류가 축적한 문화는 그대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라마르크의 형질유전의 법칙을 따른다. 그런점에서 동양사상은 어쩌면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할지도 모르는, 인류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유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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