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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18. 2019

선과 악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

[악마의 시] 살만 루시디



문학과 예술이 이미 많은 금기들을 깼지만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종교에 관한 것이다.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교리와 신성을 둘러싼 논란은 그 중심에 있다. 악마의 시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시끄러운 소설이다. 호메이니에 의해 루시디의 목에 현상금이 붙고 루시디에 대한 보호를 선언한 영국과 이란이 단교하고 많은 번역가들이 살해당하거나 협박에 시달렸다. 이런 악명으로 이 소설에 대한 궁금증은 높아졌고 이 소설이 번역 출간된 국가에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실의 선과 악은 어린이용 동화나 만화영화에서처럼 명확하게 나뉘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종교에서는 절대선을 위하여 절대악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선을 강조하다보니 악까지 강조하게되는 것이다. 집단무의식을 연구한 융은 서양인들의 무의식에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만으로는 세상이 완전하지 않고 거기에 악마를 더한 숫자 4가 완전한 세상의 모습을 나타낸다는것을 임상적으로 도출하기도 했다. 이런 종교에서의 선과 악의 대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세계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현실에 끊임없이 대비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이익을 위한 방편으로써의 선과 악의 이분법은 위정자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아군은 절대 선이고 적군은 그야말로 흉악한 악의 무리라는 이분법은 위정자들이 그동안 너무나 즐겨써먹었던 수법이자 인류의 많은 끔찍한 사건들을 발생하게 했던 원흉이 아닐 수 없다. 



종교를 풍자한다는 것은 이같이 선과 악을 살짝 비틀어 놓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루시디는 생각했다. 그리고 루시디답게 그 풍자의 강도는 좀 센것이었다. 마리아가 예수와 사실혼 관계에 있고 그 자손들이 있다고 가정한 댄브라운의 '다빈치코드'나, 십자가의 고통을 못이겨 잠깐 기절한 찰나에 예수가 두명의 여인과 결혼을 하고 평범한 범부의 일생을 산다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정도의 불경을 넘어서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아내를 창녀로 묘사하고 코란의 일부내용을 악마의 계시로 해석할 수 있는 소설을 썼으니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펄쩍 뛸만도 하였다. 그리고 소설중에 대천사 가브리엘의 역할을 맡은 지브릴과 악마의 역할을 맡은 살라딘의 모습은 더 아이러니 하다. 천사역할을 하는 지브릴은 정신병자취급을 받고 악마역할의 살라딘은 불쌍하게 보인다. 선이 선이 아니고 악이 악이 아닌 모습은 신의 역할을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들었다. 



아담과 이브가 왜 선악과를 따먹었을까? 아마 에덴동산에서 평범하게 노는 것이 지겨워서였을 것이다. 신은 왜 하필 선악과를 이브의 눈에 띄는 곳에 두었을까? 따먹으라고 갖다 놓을 것일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줄기차게 싸워왔지만 그들이 믿는 야훼는 같은 신이다. 야훼는 천년이 넘는 이들의 끔찍한 싸움을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이 어느쪽의 손도 속시원하게 들어주지 않는 것을 보면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명확히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이 선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악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선한 신과 악한 악마를 창조하게 된다. 물론 선한 신은 자신의 편이고 악마는 같은 야훼를 믿는 상대방이 된다. 상대방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선한 쪽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선과 악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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