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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22. 2019

전통의 발명

[만들어진 전통] 에릭 홉스봄]



전통이란 것은 그 전통을 가진 구성원들에게 큰 자부심과 단결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통이 다른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거나 찬탄의 대상이 되는 것 만큼 전통을 고수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보람있는 것은 별로 없을 듯하다. 유럽사람들이 흔히 미국을 역사와 전통이 결여된 신생국 취급을 하지만 그리스,로마를 제외한 서유럽이 교황의 권위를 벗어나서 자신들만의 왕조를 세운것은 아직 천년이 되지 못했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유럽 궁정의 복식이나 대단히 복잡해보이는 의식이 전통으로 확고히 자리매림한 것은 불과 200년도 채 되지 못했으며 어떤것은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거기엔 범접치 못할만한 대단한 의미가 부여되며 왕실 뿐만 아니라 가문이나 씨족, 부족은 제각기 자신들만의 전통을 황급히 만들었다.


 

책에서는 주로 유럽과 그 주위에 대한 만들어진 전통이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유구한 왕조와 역사를 자랑하는 동양이라고 해서 다를것은 없다. '전통'이라는 이름이 붙은 많은 것들은 생긴지 불과 얼마되지 않은 것들 투성이다. 19세기가 되어서야 유럽의 가문들이 너도나도 가문의 문장을 채택하고 오래전에 살았는지 어쨌는지도 불명확한 몰락한 왕족이나 귀족의 끄나풀이라도 낚아채서 자신들의 조상으로 삼고 족보를 써내려갔던 것처럼 조선말 반상제가 흔들리면서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조선초 전체 인구의 5%밖에 되지 않던 양반계급이 70%까지 늘어나게 되자 한 성씨에 벼라별 지파가 다 생겼다. 유력가문에 접붙이를 하기위해 엄청난 뇌물이 오고갔거나 조작이 이루어졌을것이다.


사회의 형태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 관습과 습관은 지속적으로 바뀐다. 자신의 양반족보를 자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21세기에 댕기머리를 하거나 상투를 트는 사람은 거의없다. 하지만 '전통'은 일단 바뀌지 않은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관습이나 습관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전통은 대단히 형식적인 부분이 돋보인다. 국가나 왕실은 위엄과 정통성을 내보이기 위해 일부러라도 화려하고 거추장스럽기까지한 의식을 만들면서까지 무던한 노력을 하는 것이고 각국의 내셔널리즘이 폭발하기 시작한 19세기 부터 이러한 전통의 발명이 집중적으로 시작되었다. 꼭 유럽국가가 아니더라도 2차대전 후 열강에서 독립을 쟁취한 민족들은 오랜 식민지생활로 인해 자신들의 생활방식이 이미 큰 변화를 격어 돌이킬 수 없음에도 자신들의 민족주의를 위하여 전통을 구태여 발명하거니와 발명한 전통의 내용이 자신들 고유의 것이라기 보다 선진국들의 그것과 비슷한 형태를 띠는 경우마저 있다.


 

필사적인 전통만들기는 현재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다. 게다가 만들어진 전통은 그 이후에 만들어지는 전통에 또 다시 영향을 준다. '원조 할매국밥'집 바로 옆에 '진짜 원조 할매국밥'집이 버젓이 문을 여는 것이다. 일본이 메이지유신후 영국의 귀족작위를 그대로 본떠 자신들의 귀족사회에 적용했던 것처럼 전통은 전통을 카피한다. 전통이 카피되는 것이야 말로 전통이 만들어진다는데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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