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현대성] 아파두라이
세계화라는 것은 태생부터 자본의 세계화라는 것을 의미했다. 세계화라는 말이 시작된 것이 공산권 붕괴에 따라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구도가 확립되고 자본주의의 승리를 선언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지점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동구권, 중국 등의 공산국가들과 신흥개도국들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세계의 자본은 요동쳤고 자본의 급격한 이동을 예측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아서 많은 국가들이 단기적인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해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에 몰리기도 하였다.
이런 부작용이 먼저 나타나다보니 세계화라는 말은 겉만 그럴듯하게 포장된 새로운 제국주의나 다를바 없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었고 초강대국들은 오히려 자국의 산업에 대해 보호정책을 강화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임으로써 세계화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졌다.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한 문화적 세계화는 이런 자본의 세계화보다 늦게 왔다. 문화적으로도 초강대국인 미국은 자국 문화의 우수성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인터넷이라는 고속도로를 뚫었다. 마치 자신감에 충만한 로마가 로마에서 최전방까지 도로를 뚫었던 것과 비견된다. 하지만 미국문화의 세계화를 우려한 것처럼 문화는 한쪽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파두라이가 지적한 것처럼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더 돋보이게 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점점 문화는 코스모폴리탄적인 것이 인기를 얻어가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KPOP과 PSY의 세계적인 인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파두라이는 이 지점에 주목하고 앞으로 국민국가의 모습은 점점 퇴색되고 문화적 작용에 의해 새로운 시대가 열릴것임을 예고한다.
문화적 힘이 20세기를 지배했던 내셔널리즘의 철옹성을 녹일 수 있을지는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각국의 국지적 내셔널리즘은 세계화의 물결속에서도 여전히 그 형태를 단단하게 유지하는 것을 보면 쉽게 탈국가의 시대가 올것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EU같은 거대 경제블럭이 생겨나고 그런 거대경제블록이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한다면 리프킨이 이야기했던 유러피언드림이 가까이 와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탈국가의 시대란 결국 공동체의 시대이다. 미래의 공동체는 고전적인 의미의 로컬단위 기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터넷의 시대에는 아시아의 소년과 남미의 소녀가 같은 관심사로 얼마든지 네트워크상의 공동체를 꾸릴수가 있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조직화가 된 인적네트워크는 마음만 먹으면 오프라인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존재감을 언제든지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공간의 개념을 뛰어넘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은 이제 기존의 국가개념 이상의 어떤 것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근대 이후 국가중심으로 모든 것을 설계해 왔던 인류는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현대성을 뛰어넘는 그 어떤 것을 준비해나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