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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25. 2019

서민적인 삶의 위대함

[허삼관 매혈기] 위화



서민의 삶은 대부분의 시간들이 먹고사니즘으로 점철된다. 결혼을 하기 위해 돈을 마련해야하고, 어려운 살림에 자식들을 키워야하고, 흉년에는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며 좀 나아질 날을 기다려야 한다. 그 와중에 허삼관은 가정에 위기가 닥칠때마다 자신의 피를 판다. 피는 서민의 마지막 남은 수단이다. 가장 소중한 것이고 함부로 빼서는 안되는 금기의 영역에 있는 것이며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다. 사생아라며 그토록 구박하던 허일락이 황달에 걸리자 허삼관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개의치 않고 한번에 여러군데서 피를 팔다가 쓰러져서 지옥의 입구까지 구경갔다 온다.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고 삶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일반적인 서민의 삶에서 위대한 순간은 이렇게 오래된 책에 꽃혀진 은행나뭇잎을 발견하는 것처럼 뜻하지 않게 다가온다. 켈러의 명작 '초록의 하인리히'에서 주인공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자신의 자서전 한부를 인쇄업자에게서 찾아오기위해 모든 돈을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와 배고픔과 싸우는 순간을 사랑한다. 자신과 주위사람들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의 힘이 가진 것 없는 서민의 삶을 위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피를 팔기전에 피를 희석시키려고 위장이 터지도록 미련하게 물을 마시고 소변을 참느라 방광이 터지려하는 고통을 참는 것과 매혈을 한후 요릿집에 가서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냥을 마시는 것은 경건한 희생제의와도 같은것이다. 허삼관의 가족들이 공산혁명과 기근, 문화혁명에 휩쓸릴때마다 집안에 풍파가 닥치지만 그때마다 매혈이라는 희생제의를 통해 그 난관을 극복한다. 희생제의는 갈등을 봉합하고 희생에 바쳐진 대상은 거룩한 이름을 얻는것이다. 



작가인 위화는 이 소설의 주제는 평등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좆털은 눈썹보다 늦게 나지만 길게 자란다"라는 말로써 그 의미를 대강은 유추해 볼 수 있다. 숱한 가정사의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더 이상 피를 팔지 않아도 돼지간볶음을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게 된 허삼관이 행복감에 젖는 것처럼 현재는 힘들지만 미래에는 분명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고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난 뒤 실제로 그 미래가 다가왔을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서민이 바라는 평등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평등은 꼭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민만이 경험할 수 있는 삶의 굴곡과 소박함이 삶에 대한 더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미와 훈훈함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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