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죽음] 휘태커
책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짓느라 그랬겠지만 '사생활의 종언'정도가 적당할듯 싶다. 나날이 발전하는 첩보기술로 인해 개인의 사생활은 점점 더 위협받고 있으며 머지않아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고스란히 노출되거나 본인도 모를 어딘가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현재의 개인의 사생활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0년, 대부분의 개인의 사생활은 2차대전 이후에나 정립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개인이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내밀스러운 생활을 한다는것은 얼마나 어렵고 사회적으로 허용되기 어려운것인가를 보여준다.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를 해야하고 허울좋은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길들여지기 위해 개인은 많은 본연의 권리를 포기해야한다. 음모론에 의하면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전 인류의 피부에 칩을 심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한다. 그 칩은 사람들이 쇼핑할때나 극장에 들어갈때 계산대에 서지 않거나 줄을 설 필요가 없는 편리함을 가져다주겠지만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노출되고 통제되게 된다. 성범죄자들이 착용하는 발찌나 다름없는 그 칩을 순순히 자신의 몸에 심으려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주의와 소수에 의한 지배가 강화되어 조지오웰의 소설과도 같은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이 오게되면 강제로라도 심어야하는 상황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가 이야기한 첩보기술의 발전만이 개인의 사생활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더 위험한 상황은 개인의 사생활을 합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자리하는 것이다. 공익을 위해서 또는 다수를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된 개인의 사생활 침해는 공권력을 등에 업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훨씬 더 위험하다. 경찰의 수사권이 강력하고 빈부의 격차로 인한 사회적인 범죄가 늘어나게 되면 개인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사태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유아성범죄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때 성범죄는 면식범에의해 80%이상 벌어진다는 통념상 자동적으로 사건현장으로부터 500미터 내의 남성(특히 독신)들은 용의선상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수사권한을 가진 경찰이면 모든 것을 강제로 조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에 대한 통제와 사찰은 항상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자행된다. 심각한 범죄를 부각해서 사람들의 증오심을 조장하고 그 범죄의 원인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몰아감으로써 개개인에 대한 통제와 사찰을 정당화 하는 수법이 흔히 동원된다. 얼마전 몇 달동안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성폭력 사건들의 결말은 사람들의 컴퓨터에 야한 동영상이 있나 없나 뒤지는 것과 표현물에 있어 검열의 수위를 높이는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