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을 위한 변론] 리차드 에번스
인류의 과거는 분명히 있었고 그 과거중에 알려진 것은 '역사'라고 불린다. 인류의 과거는 그 당시에는 분명히 입체적이고 생생한 인류의 삶 그 자체였겠지만 과거가 되는 순간 대부분의 것들이 사라진다. 다만 역사라고 불리는 편린들만이 사관의 붓이나, 사람들의 기록, 유물들을 통하여 남겨질 뿐이다. 이것은 당시에는 생생했던 3차원의 실체가 몇몇 점만 남기고 깡그리 사라지는 것을 이야기한다. 역사가들은 남겨진 이 점들을 어떻게 서로 이을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지만 남겨진 점들만으로는 역사의 실체를 결코 알 수 없다. 심지어 그 점들을 전혀 엉뚱하게 이음으로써 실제와는 틀린 해석을 하게될 여지가 너무도 농후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기존의 철학을 산산조각 냈듯이 같은 방법으로 역사를 산산조각 내는건 뭐 놀랄일도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앞에서는 인간의 의식구조와 소통수단(텍스트를 포함하여)자체의 결함으로 인해 모든 것이 사상누각이 되는것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대한 물결앞에 선 역사학자들은 역사학의 해체를 목도하면서도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전봇대를 꼭 붙잡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전봇대는 바로 '그렇다면 역사학은 필요없다는 것인가? 아니다 역사학은 실재하고 또 필요하다' 하는 역사가들의 존재론적인 물음이었다. 코기토에 직면한 역사학자들은 "역사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연구하는 것은 객관적인 학문으로써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데카르트식 결론을 낸다.
저자는 역사학의 위기를 맞이하여 역사가들에게 객관성을 요구한다. 역사학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역사를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역사는 문학과 다를바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격에 대한 방패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이같은 역사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역사학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객관성의 확보는 미래의 사학자들이 현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역사가들이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했냐에 주목하게 된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씌여져왔다고 이야기되지만 객관적인 역사를 남기려는 노력도 아울러 진행되어 왔다. 단순히 어떤 역사책에 기술된 한 문장만 가지고 역사를 이야기하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사료가 부족하면 눈물겹게 이어맞추려는 노력이 어쩔 수 없는 것이긴하지만 그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과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식 지엽적인 시비논쟁조차 역사학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을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