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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Sep 16. 2019

레베카

[허영의 시장] 새커리



발자크의 소설들을 보면 19세기 초 유럽의 사교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우아함과 화려함으로 치장한 겉모습처럼 사람들은 남들의 눈과 입을 가장 의식한다. 사교계의 핵심은 귀족들이며 그 귀족들을 둘러싸고 유행에 민감한 신사숙녀들, 부러움의 눈길로 사교계를 기웃거리는 처녀들, 야심가들, 사기꾼들이 도처에 득실거리고 온갖 추문과 치정극이 난무하는 말그대로 허영의 시장 그 자체가 당시 사교계의 모습이다. 이 사교계 불변의 진리는 바로 돈이다. 돈이 많다면 누구라도 사교계에 진출할 수 있고 인기가 있을 뿐더러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다. 고리오영감이 파산하자마자 그의 두 딸은 사교계에서 쫓겨났으며 사교계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잃어버린 환상'의 뤼시앙이 순식간에 곤두박질 치게된 것도 결국은 돈 없는 가난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새커리는 영국 사교계를 배경으로 두 여자주인공을 내세웠다. 아밀리아와 레베카가 그 주인공인데 아밀리아는 루소의 신엘로이즈에 주인공으로 어울릴법한 정숙하고 도덕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이다. 아름다운 외모의 부잣집 딸이었으나 가문의 몰락 후 어려운 살림과 미망인으로써 유복자를 키우며 눈물겨운 삶을 이어가다 말년에 행복을 찾게 되는 평면적인 여성이다. 반면 레베카는 야심적이며 허영의 시장의 생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사교계에서 주목받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사람들의 허세를 이용해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는 영리함을 지녔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허망함에 불과하다는 것도 깨우치고 있는 경세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새커리의 이 작품이 주목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레베카라는 독특한 인물에 있다. 



레베카는 여러모로 친구인 아밀리아와 비교된다. 아밀리아는 아름답고 정숙하긴 하지만 세상물정을 잘 모르고 구제불능의 바람둥이인 조지오즈번만을 사랑한다. 6주간의 신혼후 조지오즈번은 워털루전투에서 전사하지만 아밀리아는 미망인으로써 여전히 조지오즈번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앞뒤가 꽉막힌 아밀리아를 사랑하는건 조지의 친구 도빈이지만 그녀는 도빈을 남편의 친구로만 대할 뿐이다. 하지만 레베카는 남편 로든을 하인이나 짐꾼 취급을 할뿐이고 온갖 상류층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사교계의 스타가 된다. 사교계의 화려한 생활을 위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격고 그로인해 숱한 난관이 찾아오지만 레베카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이 못말리는 낙천주의자 아가씨는 그동안 사교계에서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렸을 때도 좌절하지 않고 그 다음을 준비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여준다. 레베카의 일생에 가장 멋진 일은 아밀리아를 도빈과 재혼시킨 것이었으나 도빈은 자신의 행운이 레베카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레베카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구호활동을 하며 남은 생을 보내게 된다. 



레베카는 사교계를 배경으로한 소설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입체적인 인물이다. 이래저래 멸시받던 고아에서 사교계의 최정점에 올랐다가 순식간에 추락하는 와중에 결코 그녀는 자만하거나 스스로를 저주하지 않으며 방탕해지거나 음란해지지도 않는다. 그저 허영의 시장에서 통용되는 게임의 규칙을 100% 활용하면서 남들보다 냉정하고 부지런했다. 그녀가 소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정이다. 남편과 아이에 대한 애정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자기자신만을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허영의 시장에서 만고불변의 진리로 통용되는 것은 돈이지만 돈이 없는 레베카는 거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를 그만큼 채찍질할 수밖에 없었다. 레베카도 루시앙처럼 결국 돈때문에 사교계에서 내쳐졌던 것이다. 



하지만 레베카의 삶은 아밀리아나 도빈보다 훨씬 위에 자리하고 있을뿐 아니라 파리를 향해 분노의 일성을 던졌던 라스티냐크나 앙굴렘으로 초라한 귀향을 한 뤼시앙보다도 더 위에 있다. 레베카는 사교계에서는 실패했으나 결코 인생에서 실패하지는 않았다. 레베카의 억척스러운 삶은 허영의 시장에서 무위도식하는 자들보다 훨씬 더 다채로울 뿐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소설의 말미에 자선바자회에서 행복한 아밀리아와 도빈의 가족을 바라보는 레베카의 미소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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