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반역] 가세트
산업혁명과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도시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였고 향후 세계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대중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대중이 마음만 먹으면 왕을 끌어내어 단두대에 올린다던지 독재정권이 절딴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전통적인 권력은 대중에 의해 대중에게로 내려왔고 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에게 주권을 부여하고 명문화하였다.
앙시엥레짐을 종결시킨것이 대중이었고 권력자들은 대중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므로 대중에게는 진보의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정치적 소수파들은 그들의 발언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의회를 벗어나서 거리집회를 통해 대중을 뭉치게 하려는 시도를 한다. 좌파들은 대중을 민중이라 부르며 민중의 선택이 역사를 발전시켜왔다고 믿고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정치를 부르짓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대중을 통해 달성하려한다.
하지만 대중은 어떤 정치세력에게나 우군이 된다면 가장 강력한 통치를 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나치에 대해 가장 열광했던 것은 대중이었으며 나치를 집권당으로 만들어 준 것도 대중이었다. 파시즘이 가장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곳은 바로 대중이었던 것이다. 대중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력이 있지만 이것을 대중 스스로가 판단하지 못한다. 대중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대중이 든 칼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을 호도하기 위한 선전선동이 20세기 권력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다. 하지만 대중을 잠시 속이기는 쉬워도 오랫동안 속이지는 못한다. '쌀밥에 고깃국','국민소득 3만불'같은 구호들은 유효기간이 정해져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첫번째로 대중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인종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 같은 대중내의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대중의 결집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이다. 두번째가 대중의 분노를 외부로 돌리는 것이다. 적국과의 관계를 일부러 악화시키거나 인접국과의 영토분쟁, 이민자정책 등으로 기득권을 향한 대중의 분노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대중은 이런 권력자들의 술수에 매우 취약한 것이다.
가세트는 이렇게 갈팡질팡한 대중들에게 권력이 있는 상황을 위험하다고 경고하고있다. 민주주의 체제가 일반화된 지금 가세트의 이런 경고는 뜬금없이 느껴질법하다. 그래서 가세트에게 귀족주의자니 왕도정치를 꿈꾼다느니 하는 비난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가세트가 이 책을 쓰게 된 시점은 국제적으로 파시즘이 무르익기 시작한 무렵인 1930년이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대중은 나치의 집권을 초래하게 된다. 지금도 대중은 언제나 최악의 선택을 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현대사회가 위험사회가 된 것은 어쩌면 대중들의 선택의 총체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대중들이 올바르게 행동하고 판단하는 법을 배워서 결국은 공동의 선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두고 벌이는 도박이라는 말이 있다. 과연 대중들이 올바르게 행동하고 판단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대중은 도덕교과서에 씌여 있는 말보다 누군가에 선전선동에 더 취약하다. 적국에서 핵탄두를 만들면 대중은 '우리도 만들어야지!'라고 당장 반응한다. 하지만 복지확대를 위해 증세를 시행하려할때 누군가가 세금폭탄이 어쩌고 하면서 불평불만을 쏟아내면 대중은 덩달아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는 낙관적으로 전망하길 좋아한다.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두고 벌이는 도박도 거기에 기초한 것이다. 도박에서 질 확률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애써 무시한다. 민주주의가 실패할 확률... 그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주인공인 대중이 만들어 내는 그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