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와 非我의 투쟁

[핑퐁] 박민규

by GONDWANA



나약하고 아픈 인간들은 자신의 불행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거기다 대고 화를 내어 보았자 그 결과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다시 피해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그들은 보통 인간들 속에 구별할 수 없는 하나가 되길 소망한다. 매스미디어 속에서 인간성을 잃고 몰개성화 되어가는 대중을 비판하는 소위 깨어있는자들의 외침이나, 다들 '예'라고할때 '아니오'라고 외치는 것은 나약하고 아픈 자들이 보기에는 배부른 소리다. 보통의 인류로 부터 자연히 열외된 나약하고 아픈 자들은 더이상 떨어질 곳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오히려 대중과 분리되어 개개인의 개성이 드러나게 되므로 인간적이다.



이런 왕따 또는 아웃사이더에게 인류의 역사는 자신과 상관없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평범하게 공부하고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평범하게 가정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인류의 유산과 관습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왕따들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정의하기 시작하는 실존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들에게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류를 언인스톨 할것이다. 이미 자신들은 인류로부터 떨어져나온 개체들인데 거기에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를 언인스톨 하고난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약한 인간들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갈망한다.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고 자신의 것을 뺏기지도 않고 그냥 평범하게 공부하고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평범하게 가정생활을 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누군가 다시 자신들을 괴롭힐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약하고 아픈 인간들은 괴롭힘을 당하던 과거로 돌아갈바에야 1차원에 세계에 영원히 고독하게 혼자 있는것을 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왕따들만의 고독한 차원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아무리 실존과 차원의 세계에서 인류를 몇 만번 언인스톨한다 하더라도 깨어나면 탁구대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의지와 용기로 맞서서 구별할 수 없는 대중속의 하나가 되는데 성공하느냐, 아니면 다시 왕따가 되어 인류로 부터 분리가 되느냐의 '我'와 '非我'의 투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투쟁을 하는 것이 인간이고 그 결과가 역사이다.



이같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문제다. 인류의 한계와 불행의 근원은 시간은 무작정 흘러가기만하고 공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현재 과학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반드시 이 굴레를 벗어나고픈 왕따가 있다면 타임머신을 발명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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