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시학] 가스통 바슐라르
시에 쓰인 단어들은 메타포이다. 바슐라르가 주목한 공간들-집,세상,조개껍데기,상자,새집,구석,문,원 등은 싯구속에서 어떤 이미지를 드러내며 그 이미지는 메타포의 작용으로 관념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이 내밀한 공간의 관념적 현상학이 바로 바슐라르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주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간에 대한 애착이 있다. 이것을 요나콤플렉스라고 하는데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때 부터 어떤 공간속에 들어있을때 안온함을 느끼는 감정이다. 어린이들이 가족을 그릴때 항상 왼쪽위에는 햇살이 비치는 창문 달린 집을 그렸다. 집은 가족의 사랑, 돌아가야 할 귀소처로써의 메타포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랍이나 책상위, 상자속을 바라볼때 그곳이 비어있다면 거기서는 외로움, 상실, 허전함에 재빨리 두껑을 닫고 그곳을 벗어나거나 오밀조밀하게 어떤 주제를 가지고 그 공간을 채워야한다. 조개껍데기와 새집은 탄생과 보호를 메타포로 가지는 자연물이다. 조개껍데기는 비너스와 진주를, 새집은 알을 품은 내밀한 공간인 것이다. 자연의 놀라운 탄생과 오묘한 법칙은 조개껍데기, 씨앗, 새알 따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시에서는 공간의 관념적 성질에 따라 메타포를 쓰기도 한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문, 공간의 구석진 곳, 원이나 구가 그것이다. 폐쇄된 곳과 끝도 없이 넓은 공간은 그 막막함에서 일맥상통한다. 끝간데 없이 넓은 사막은 감옥에 다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안과 밖의 사이에는 문이 있고 그 문을 통하여 서로 다른 관념의 세계를 조망할 수 있다. 구석진 곳은 침잠하는 곳이며 세상에서 비껴나와서 육신을 머물게 하는 곳이다. 구석을 비춘다는 것은 소외된 것에 대한 관심이며 우리가 구석을 바라볼 때면 거기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그런게 없다면 구석을 바라볼 일조차 없는 것이다. 원이나 구의 완전성에 사람들은 경탄한다. 원과 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세계이다. 모든 둥그런 것은 그 양감을 뽐내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촉감으로 확인하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고 모든 사물은 어떤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체의 공간을 가지는 사물은 3차원 공간 속의 또 다른 3차원 공간을 가진 마트로시카인형 같은 것이다. 시인은 마트로시카인형을 가지고 노는 어린이처럼 호기심과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가지고 메타포를 부여한다. 그렇게 정제된 시어는 우리의 경험과 결합하여 영혼에 감동적인 울림을 주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