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문화] 스노우
스노우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인데 당시 영국에서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살짝 부러운 것은 이러한 논쟁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문학계 내부에서의 논쟁, 과학계 내부에서의 논쟁은 숱하게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생산적인 논쟁은 실제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학계와 과학계는 서로를 소 닭보듯 서로에게 도통 관심이 없으며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불문률로 한다. 문제는 무관심이다. 인문학계 인사에 열역학2법칙에 대해 묻는 것이나, 과학계 인사에 세익스피어 문학의 특징에 묻는 것은 매우 실례가 되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왜냐면 그들은 그것에 전혀 관심이 없고 답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과학계 내에서 조차 자연과학자와 공학자의 입장은 매우 다르다. 자연과학자는 공학자들을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고 공학자들은 자연과학자이 '현실을 모른다'라고 생각한다. 같은 과학계 내에서도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다른데 인문학계와 과학계는 서로를 외계종족 보듯이 할 법도 한 것이다. 이렇게 벌어진 두 문화는 서로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적인 문제를 대응하는데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세계적인 문제는 곧 현대에 드리워진 핵전쟁, 인간소외, 기아, 환경문제, 인종문제 같은 짙은 그림자들을 말한다.
어떤 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인문학계와 과학계가 판이하게 다르다. 과학계는 여전히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인문학계는 산업사회의 부작용을 비판한다. 얼핏보면 서로가 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코 서로를 비판하지 않는다. 인문학계의 비판대상은 기술이나 이론이 아니라 현상에 국한되고 과학계는 산업사회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듯이 보인다. 이것은 마치 백미러 없는 자동차 같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인문학계와 과학계가 전혀 소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나 르네상스의 시기만해도 예술가가 철학자이고 철학자가 수학자나 물리학자인 경우는 숱하게 있었다. 하지만 현대로 넘어오게되고 모든 분야의 분업화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게 당연한듯이 되어버렸다. 현대에서는 교육자체가 그런식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의 경우만해도 고등학생이 되면 문과 이과로 나누어져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라도 한 듯 상대편에 대해 무심해진다. 문과니까 물리나 화학따윈 몰라도 상관없고, 이과생이 시집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로 비쳐진다. 고등학생이 이런데 대학과정에 가면 더욱 심해진다. 인문계열에서는 간단한 방정식 조차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이 되며 자연계열에서의 역사나 철학도 마찬가지다. 고교과정을 문과와 이과로 나눈건 학생의 적성에 맞게 심화학습을 커리큘럼에 적용한다는게 원래 취지이었겠으나 어차피 입시전쟁으로 점철된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문과 이과의 구분은 무의미해보인다. 오히려 상대편의 학문에 대한 몰이해를 낳고 서로 소통할 수 없는 벽을 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교육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교육에서부터 과학과 인문학이 공존할 수 있는 풍토가 꾸려지지 않으면 두 문화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될 것이다. 두 문화가 지금처럼 벌어져 있는한 아무 의미없는 전문가집단들만의 허망한 논쟁은 자꾸만 재생산 될 것이고 인간이 소외된 차디찬 기술에 인간은 질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