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세대 지식인의 좌절과 선택

[회색인] 최인훈

by GONDWANA



서양 선진국이 아닌 동양의 변방국에서 서양식 자본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이 땅의 전후세대들은 가치관의 혼란상태를 격게된다. 정치, 경제, 문화에서 싹튼 열등감은 오리엔탈리즘의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서양의 지나친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서구의 기술에 동양사상의 접목을 시도하는 동도서기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세계사와 한국사를 조망하고 정치 경제 문화 종교를 아우르는 엄청난 주제의 토론들이 한국전쟁후 지금까지 숱한 술자리에서 사변적으로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져왔다. 그것은 존재의 탈식민화를 위한 개발도상국민으로써의 지적유희를 가장한 내셔널리즘의 훈련과정이었고 서양의 혁명 후 현대에 이르는 수백년의 근대사를 한반도에서는 순식간에 해치우려는 조급함이었다. 


해방후 불어닥친 교육열로 양산된 수많은 고학력 전후세대들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 짧은 시간내에 정치적, 경제적 성과를 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민주화가 불어닥치기전인 1950-80년대의 한국의 상황은 그들이 원하는 수준의 사회적 분위기를 실현하기엔 정치, 경제적인 여건이 도저히 되지 않았다. 게다가 분단과 반공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전후세대들의 자유사상을 퇴행시키고 왜곡시키는 가장 큰 모순이었다. 한국민 특유의 지나친 민족주의로 인해, 일제에 의해 제국주의의 가장 큰 희생을 치렀음에도 스스로 제국주의를 꿈꾸는 모순에 갇혀있어도 어색함을 못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이념의 과잉은 모든 것에 이데올로기의 딱지를 붙여야만 했고, 사람들은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도 전에 붙어있는 이데올로기의 딱지만으로 판단하기를 종용받았다.

대상이 무엇이든 구체적으로 형상화 되기 시작하면 거기에 민족주의가 들러붙고, 반공이 들러붙고, 경제성장률과 일인당 국민소득이 얼마냐는 질문이 터져나오는 현실에서 무엇도 순수하게 믿을 수가 없게 된 독고준은 몬드리안 같은 극도의 추상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조그마한 이념과 가치의 판단도 허용하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갈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술을 택한다. 하지만 독고준이 유정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은 매우 작위적이고 어설프게 느껴진다. 그런 어설픔을 감수할바에야 슈바빙을 그리워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혜린의 순수함이 이해가 갈만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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