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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04. 2019

해적이야기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세계] 시오노나나미



많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해적을 참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검은바탕에 그려진 하얀 해골은 순수한 해적임을 나타내주는 상징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해적깃발이 현실에서 사용된 적은 없다고 한다. 해적깃발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채택한 해적의 기호일 뿐이었던 것이다. 실제의 해적은 말그대로 바다의 강도단이었고 지나가는 배를 습격하기 위해 오히려 베네치아국기 같은 위장된 깃발을 내걸었다. 그리고 약탈은 배를 습격하기보다 해안의 마을을 습격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에서 해적에 대해 썼고 로마이후의 지중해는 해적의 바다였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로마제국이 사라지고난뒤 원래 로마의 속주였던 북아프리카와 사라센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점차 상실하게 되면서 이 지역에는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한 이슬람세력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특히 지리적인 여건상 자체적인 산업이 척박했던 북아프리카에서는 해적들이 발호하기 시작했다. 주로 지중해의 섬들과 이탈리아남부지역이 약탈의 대상이었으나 해적의 수가 많아지고 행동이 과감해지면서 이탈리아북부나 프랑스 남부까지 해적이 들끓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해군이 없었던 투르크가 해적들을 비호하고 심지어 해군의 역할을 맡기면서 해적들은 더욱 더 기승을 부리게 된다. 해적들은 지중해연안을 약탈하는데 그치지 않고 많은 기독교도들을 포로로 붙잡아가서 목욕장이라 불리는 일종에 수용소에 가두었다. 그리고 몸값을 받고 풀어주거나 노예로 팔았는데 이것 또한 해적들로써는 쏠쏠한 장사였다. 잡혀간 포로들을 구출하는것을 전문으로하는 수도회와 기사단이 생길정도였다. 구출수도회는 기금을 모아서 포로들을 돈으로 사서 구출하였고 기사단은 실력으로 해적의 본거지를 기습하고 그들을 구출해내는 역할을 하였는데 해적들은 구출수도회의 돈을 노리고 계속해서 해적질로 양민포로들을 잡아들였으므로 구출수도회는 또다시 더 많은 기금을 모아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고 스페인, 제노바, 베네치아, 교황청, 몰타기사단의 연합함대는 해적들과 숱한 해전을 치러서 해적들을 격퇴하고 심지어 해적들의 소굴인 튀니스나 알제를 습격해서 목욕장에 갇혀있는 기독교도들을 구출하기도 했지만 해적들을 박멸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해적들이 스페인의 함대를 박살내고 지중해를 완전히 장악하기도 했다. 기독교연합군이 보다 효율적으로 해적들에 대항하지 못한 이유는 각 국가마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데서 기인한다. 스페인은 최강국으로써의 체면과 프랑스와의 경쟁이 우선시 되었고 베네치아는 자국의 무역을 위해서 투르크와의 관계를 극단적으로까지 몰고가려하지는 않으려했다. 즉 스페인과 투르크 사이의 줄타기 외교를 했던것이다. 프랑스는 스페인을 견제하기 위해 투르크와의 동맹까지 맺어서 연합군에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순수한 의미로 이교도에 맞선건 교황청과 몰타기사단 정도밖에 없었으나 그들의 전력은 미미한 정도였다. 이렇게 동상이몽인 연합군은 지속적인 것이 되지 못했고 레판토해전에서 투르크해군을 전멸시키는데 성공하긴 했으나 해적들을 끝내 소탕하진 못했다. 해적들이 없어지게 된것은 투르크가 쇠퇴하고 해적들의 본거지였던 땅들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가 된 이후였다. 



근절된줄 알았던 해적은 근래 아프리카 연안에서 또 출몰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현대의 해적도 산업이 척박한 지역에서 포로의 몸값을 노리고 자행된다. 그리고 해적이 출몰하는 국가는 해적을 소탕할 공권력이 없거나 해적이 그런대로 그 국가의 경제에 일조를 하기 때문에 수수방관한다. 중세에 해적의 본거지를 때려부순다고 해적이 없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도 해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적 요소를 그대로 두고는 해적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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