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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pr 03. 2019

#55. 기대를 너무 했나 봐

생줄리앙 3등급 레드 와인...샤또 라그랑쥬 2013

기대감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오랜만에 와인이다. 샤또 라그랑쥬.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마트에서 늘 바라만 보고 스쳐 지나가야만 했던 라그랑쥬!!!  드디어 맛보게 됐다.


라그랑쥬는 내게 설렘 그 자체였다. 프랑스 와이너리 중 유일하게 외국 자본에 팔리도록 허락된 곳에서 생산된 와인. '그런 와인은 어떤 경험을 내게 줄까'. 와인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무척 설렜다.

우유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향

따자마자 코를 가져다 대니 우유 향이 날아온다. 우유의 달콤함이 주는 향이랄까. 나름 고가의 와인이니 코르크를 따고 한 시간 정도를 열어뒀다.


라그랑쥬가 주는 풍요로운 향과 맛을 즐길 수만 있다면 한 시간쯤은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

드디어 한 모금

은은한 단 맛이 혀를 감싼다. 무겁지 않다.


향은 이전보다 좀 더 복잡해졌지만 기대만큼은 아니다. 끊임없이 향을 맡고 맛을 보았지만... 내 기대가 너무 과했던 것 같다. 이마트의 가격 정도 수준의 와인이라는 생각밖에는..........

생줄리앙(Saint-Julien)

보르도 메독 지구의 생줄리앙(Saint-Julien). 사실 생줄리앙 마을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 중에 별로 높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급으로 등급이 매겨진 샤또가 없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지리적으로는 세계 최강의 와인 마을로 꼽히는 '뽀이약 마을'과 1등급 샤또 마고를 보유한 '마고 마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 속에 5번이다. 뽀이약 와인의 중후함과 마고 와인의 우아하고 아름다움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지명도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평가는 늘 참고자료일 뿐이다.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 본의 아니게 이번에 함께 마신 와인 중 생줄리앙 와인이 2종이나 있었다. 바로 3등급 샤또 라그랑쥬와 4등급 샤또 딸보다.

※ '샤또 딸보' 맛보기 코너
샤또 딸보는 '히딩크의 와인'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국내에서 꽤 유명하다. 실제로 많은 레스토랑에서 샤또 딸보를 쉽게 맛볼 수 있게 구비해놨다. 물론 가격대는 10만 원대 또는 20만 원대로 책정해 주머니가 가벼울 땐 부담이다.

잠시 샤또 딸보에 대해서 맛보기로 설명하자면,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한국 국가대표의 16강 진출을 확정 짓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오늘은 와인 한 잔 마시고 푹 자고 싶다"고 말이다. 그리고 도대체 그 와인이 무엇이냐고 회자되면서 알려진 것이 바로 샤또 딸보 1998년 산이었다. 또한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에서 제공했던(1980~1988) 와인이기도 하다. 퍼스트 클래스라는 말만 들어도 맛보고 싶을 정도다.

물론 샤또 딸보는 히딩크의 와인이라는 에피소드 외에 딸보 장군과 얽힌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샤또 딸보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생줄리앙 마을에서는 2등급 5개, 3등급 2개, 4등급 4개로 총 11개 등급 샤또가 있다. 등급이 매겨지지 않은 비 등급 샤또가 19개다. 단순 개수로만 살펴보면 등급 샤또의 개수가 적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그건 편견이다. 포도밭 면적의 80%가 등급 샤또이니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 바로 전체 포도밭 면적의 80%에서 등급 샤또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뽀이약과 마고 마을 중간에 위치하며 뽀이약 와인의 중후함과 마고 와인의 우아하고 아름다움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인지도는 낮다. 그 말은 다시 말해, 가성비가 좋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인지도가 낮아 가격은 저렴하지만, 품질은 좋다는 뜻이니 말이다.


와인 업계에서는 생줄리앙 와인에 대해 이렇게 평하곤 한다. "타닌과 신맛이 인상적인 보르도의 '전형적인 맛'을 가진 와인"이라고.

생줄리앙 등급 와인

○ 2등급(5)

샤또 뒤크뤼 보카유(Château Ducru Beaucaillou)
: [세컨드 와인] 라 크루아 드 보카유(La Croix de Beaucaillou)

샤또 그뤼오 라로즈(Château Gruaud Larose)
: [세컨드 와인] 샤르제 드 그뤼오 라로즈(Sarget de Gruaud-Larose)

샤또 레오빌 바르똥(Château Leoville Barton)
: [세컨드 와인] 라 레제르브 드 레오빌 바르똥(La Réserve de Léoville Barton)

샤또 레오빌 라스 까즈(Château Léoville-Las Cases)
: [세컨드 와인] 끌로 뒤 마르끼(Clos du Marquis)

샤또 레오빌 뿌아페레(Château Léoville-Poyferré)
: [세컨드 와인] 샤또 물랭 리슈 (Château Moulin Riche)

○ 3등급(2)

샤또 라그랑쥬 (Château Lagrange)
:[세컨드 와인] 레 피에 드 라그랑쥬(Les Fiefs de Lagrange)

샤또 랑고아 바르똥 (Château Langoa Barton)
: [세컨드 와인] 샤토 레이디 랑고아(Château Lady Langoa)

○ 4등급(4)

샤또 베슈벨(Château Beychevelle)
:[세컨드 와인] 아미랄 드 베슈벨(Amiral de Beychevelle)

샤또 브라네르 뒤크뤼 (Château Branaire Ducru)
:[세컨드 와인] 샤또 뒤뤽(Chateau Duluc)

샤또 생 피에르(Château Saint-Pierre)

샤또 딸보 (Château Talbot)
:[세컨드 와인] 꼬네따블 탈보 (Connetable Talbot)     

믿고 선택해도 좋다는 생줄리앙 와인

와인 업계에서는 흔히 말한다. 생줄리앙 와인은 3등급 이하의 와인이나 비 등급일지라도 가성비가 좋은 훌륭한 와인을 만날 수 있다고 말이다.


또한 2등급 와인이더라도 해에 따라서는 1등급 와인을 능가하는 평가를 받는 와인이 나오는 곳이 생줄리앙 와인이라고 한다. 이 경우 다른 지역 2등급 와인 가격보다는 비싸게 책정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1등급보다는 싸게 유통되니 가성비로 접근하면 최고라는 것이다.


또한 퍼스트 와인이 부담스럽다면 생줄리앙 등급 와인의 경우 대부분 세컨드 와인이 존재하니 세컨드 와인으로 가벼운 주머니를 달래 봄은 어떨까 싶다.

샤또 라그랑쥬
(Château Lagrange)

오래 기다렸다. 샤또 라그랑쥬. 생줄리앙 지구의 3등급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 샤또 라그랑쥬의 양조자는 바로 일본 주류 기업 산토리(Suntory)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유일한 외국 자본이다.


사실 샤또 라그랑쥬(Château Lagrange)는 중세시대에 시작한 와이너리다. 당시 이름은 메종 노블 드 라그랑쥬 몽떼이유(Noble de Lagrange Montei)였다. 당시만 해도 엄청난 규모의 와이너리여서 현재의 샤또 뒤크뤼 보카유(Château Ducru Beaucaillou)와 샤또 글로리아(Château Gloria)의 포도밭도 포함될 정도였다고 한다.


샤또 라그랑쥬의 소유주는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3년 산토리가 매입해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단다. 다만 산토리가 인수할 때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보르도 샤또나 생줄리앙의 와인 전통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4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는 조항이 있었고, 이에 대한 확답을 받고 프랑스에서는 일본에 와이너리를 넘겼다고 한다. 산토리는 인수 후 새로운 양조 시설을 설치하고 1985년 빈티지부터 매년 2만 3000여 병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산토리는 와이너리의 발효 탱크를 새로운 스테인리스 탱크로 교체했고, 샤또 마고(Château Margaux) 배럴 룸을 설계한 건축가를 고용해 거대한 배럴 룸을 확장 개조했다. 배럴 룸은 약 13.7km(4500 square feet)에 달할 정도여서 직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둘러봐야 할 정도라고 한다. 산토리는 13년 동안 구매 가격의 약 10배를 투자한 끝에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라그랑쥬 와이너리 포도나무의 30% 정도가 30년 이상되었고, 전체 54%는 20~29년 되었다고 한다. 라그랑쥬는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좋은 토양에서 20~25년 된 포도로 만들어 낸 결실이라는 이유에서다.


 샤또 라그랑쥬는 현재 총 157ha 포도밭을 소유 중인데,  그중 75% 정도에서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65~66%)과 메를로(Merlot 27~28%),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7%)를, 2% 규모의 포도밭에서는 화이트 와인용 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 60%), 쎄미용 (Sémillon 30%), 뮈스까델 (Muscadelle 10%)을 재배 중이다.


샤또 라그랑쥬는 35년 이상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들며, 세컨드 와인인 '르 피에프 드 라그랑쥬(Les Fiefs de Lagrange)'는 그 보다 어린 포도나무의 포도로 만들어지며 연간 3만 1000병 정도 만든다. 1997년부터는 화이트 와인 '그랑크뤼 블랑 레 자름 드 라그랑쥬(Les Arums de Lagrange)'도 생산하고 있는데, 연간 2만 병 정도만 생산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샤또 라그랑쥬의 가장 큰 매력은 일관된 맛을 보여준다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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