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줄리앙 4등급 레드 와인...샤또 딸보 2011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와인
샤또 딸보다. 레스토랑에 와인 리스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와인이다. 레스토랑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10만원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애써 외면했던 와인을 드디어 맛보게 됐다.
익숙한 향
복잡한 향이 날아든다. 익숙한 향이다. 전형적인 느낌이랄까.
샤또 라그랑쥬보다는 무게감이 있다. 더 드라이하다. 적당한 목마름이 유발된다. 내겐 3등급 샤또 라그랑쥬보다 4등급인 샤또 딸보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샤또 딸보'
샤또 딸보는 많은 레스토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와인이다. 물론 가격대는 10만 원대 또는 20만 원대로 책정해 주머니가 가벼울 땐 부담이다.
'히딩크의 와인'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국내에서 꽤 유명해졌다.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한국 국가대표의 16강 진출을 확정 짓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오늘은 와인 한 잔 마시고 푹 자고 싶다"고 말이다. 그리고 도대체 그 와인이 무엇이냐고 회자되면서 알려진 것이 바로 샤또 딸보 1998년 산이었다. 이런 일화 때문일까. 사람들은 '샤또 딸보'를 '승진 축하 등 함께 축배를 들 때 마시면 좋은 와인'으로도 꼽는다.
1980년대 우리나라 비즈니스 맨들이 즐겨찾는 와인이기도 했다. 와인 이름이 단순하고 짧은데다 품질도 좋아서 와인을 잘 모르던 비즈니스 맨들이 외국인 바이어를 상대할때 자주 시켰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제거목인 정주영 현대회장은 샤또 딸보를 많이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금강산관광 등의 현안으로 북한을 자주 왕래했는데, 늘 박스채 가져 가 직원들과 함께 마시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1980년부터 1988년까지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에서 제공했던 와인이었다. 퍼스트 클래스라는 말만 들어도 맛보고 싶을 정도다.
또한 샤또 딸보에서는 까이유 블랑(Caillou Blanc)이란 이름으로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데 소비뇽 블랑 86%, 세미용 14%의 비율로 블랜딩 된 이 와인은 매우 수집 가치가 높은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기옌 영주이자
영국군 총사령관이었던
'딸보 장군'
"Ancien Domaine du Connétable Talbot Gouverneur de la Province de Guyenne 1400-1453" (1450년에서 1453년까지 기옌 지방의 영주였던 총사령관 딸보의 옛 영지)
샤또 딸보 라벨에 적힌 문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바로 '딸보'란 인물은 기옌 지방의 영주였고, 총사령관이었다는 것이다. 1450년에서 1453년이란 기간은 15세기 중엽 백년전쟁의 마지막 시점이다.
백년전쟁은 1337년 영국과 프랑스가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와 함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시작된 전쟁인데, 인류 역사상 가장 긴 116년(1337~1453) 동안 치러진 전쟁이다.
딸보 장군은 프랑스 보르도 일대 기옌 지방의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기옌 지방은 지금의 지롱드·로트에가론·도르도뉴·로트·아베롱 주(州)에 해당하는데, 중세시기부터 고급 와인의 명산지로 이름난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아주 후려쳐서 살펴보면 이렇다. 1429년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소녀 '잔 다르크'의 등장과 함께 전세(전쟁이나 경기 따위의 기세)는 프랑스 쪽으로 기울었다. 1450년에는 노르망디가, 1453년에는 기옌과 보르도, 가스코뉴 지방이 모두 프랑스가 가져갔다. 프랑스는 칼레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회복했다. 백 년 전쟁은 영국군의 본거지인 보르도가 프랑스 군에게 점령당한 1453년에 실제적인 막을 내리게 된다.
샤또 딸보에 적힌 1450년부터 1453년의 시기. 이제 좀 상상이 가는가. 딸보 장군은 기옌 지방의 영주였으면서 영국군 총사령관이었다. 그는 백년전쟁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조국인 영국을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싸워야 했다.
딸보 장군의 에피소드 #1
백년전쟁이 막바지에 달하던 1451년 프랑스가 가스코뉴를 침공해 그 해 6월 보르도를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들을 탈환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보르도를 비롯한 가스코뉴 지방에서 주민들의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가스코뉴를 지배하기 시작한 프랑스가 와인업자들에게 세금을 너무 과중하게 매기자 이에 반발한 주민들이 "영국이 지배할 때가 훨씬 좋았다"며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1452년 10월, 딸보 장군은 5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돌아와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보르도를 되찾았다. 이어 가스코뉴 지방 대부분의 지배권도 회복한다.
프랑스 군은 1453년에 바퀴를 단 대포로 무장하고 기옌 지방을 정복하기 위해 접근해 왔다. 도르도뉴 강 하류에 위치한 카스티용(Castillon)의 영국 진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려움에 처한 영국군을 구하기 위해 딸보 장군은 구원군을 이끌고 카스티용으로 출격한다.
프랑스군은 카스티용 외곽에 진영을 구축했는데, 프랑스 군이 퇴각하고 있다고 믿었던 딸보 장군은 5천 여 명의 보병대를 뒤로 한 채 기병 1천여 명만을 이끌고 프랑스 야영지를 공격했고, 기다리고 있던 프랑스군의 대포 공격에 거의 전멸을 당하게 된다. 포탄의 파편에 딸보 장군이 타고 있던 말이 쓰러졌고, 말에서 떨어진 딸보 장군은 1453년 7월 17일, 70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딸보 장군이 죽자 프랑스 보르도 주민들은 물론 프랑스 장군들도 그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며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딸보 장군은 영국 출신이었지만, 영국군 총사령관을 맡기 오래전부터 프랑스 기옌 지방의 영주였다고 한다. 영주로서 딸보 장군은 주민들에게 선정을 많이 배풀어 프랑스 주민들은 딸보 장군을 영주로서 존경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자존심인 보르도 와인 라벨에 영국 명장의 이름이 새겨진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스토리가 숨어있다.
딸보 장군의 에피소드 #2
딸보 장군은 1449년 프랑스 루앙 전투 도중에 포로로 잡혀 4년간 프랑스인들에게 조롱을 당하다 프랑스 귀족 장군들과 맞교환으로 풀려나올 때 “향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는 검을 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 참전했을 때, 프랑스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지 않고 싸우다 최대 격전이었던 카스티용(Castillon)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딸보 장군의 용맹을 기리기 위해 샤또 딸보 와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슈루즈버리 = 딸보 장군(John Talbot)'
샤또 딸보의 세컨드 와인
생줄리앙(Saint-Julien)
보르도 메독 지구의 생줄리앙(Saint-Julien). 사실 생줄리앙 마을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 중에 별로 높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급으로 등급이 매겨진 샤또가 없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지리적으로는 세계 최강의 와인 마을로 꼽히는 '뽀이약 마을'과 1등급 샤또 마고를 보유한 '마고 마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 속에 5번이다. 뽀이약 와인의 중후함과 마고 와인의 우아하고 아름다움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지명도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평가는 늘 참고자료일 뿐이다.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 본의 아니게 이번에 함께 마신 와인 중 생줄리앙 와인이 2종이나 있었다. 바로 3등급 샤또 라그랑쥬와 4등급 샤또 딸보다.
생줄리앙 마을에서는 2등급 5개, 3등급 2개, 4등급 4개로 총 11개 등급 샤또가 있다. 등급이 매겨지지 않은 비 등급 샤또가 19개다. 단순 개수로만 살펴보면 등급 샤또의 개수가 적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그건 편견이다. 포도밭 면적의 80%가 등급 샤또이니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 바로 전체 포도밭 면적의 80%에서 등급 샤또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뽀이약과 마고 마을 중간에 위치하며 뽀이약 와인의 중후함과 마고 와인의 우아하고 아름다움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인지도는 낮다. 그 말은 다시 말해, 가성비가 좋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인지도가 낮아 가격은 저렴하지만, 품질은 좋다는 뜻이니 말이다.
와인 업계에서는 생줄리앙 와인에 대해 이렇게 평하곤 한다. "타닌과 신맛이 인상적인 보르도의 '전형적인 맛'을 가진 와인"이라고.
생줄리앙 등급 와인
○ 2등급(5)
샤또 뒤크뤼 보카유(Château Ducru Beaucaillou)
: [세컨드 와인] 라 크루아 드 보카유(La Croix de Beaucaillou)
샤또 그뤼오 라로즈(Château Gruaud Larose)
: [세컨드 와인] 샤르제 드 그뤼오 라로즈(Sarget de Gruaud-Larose)
샤또 레오빌 바르똥(Château Leoville Barton)
: [세컨드 와인] 라 레제르브 드 레오빌 바르똥(La Réserve de Léoville Barton)
샤또 레오빌 라스 까즈(Château Léoville-Las Cases)
: [세컨드 와인] 끌로 뒤 마르끼(Clos du Marquis)
샤또 레오빌 뿌아페레(Château Léoville-Poyferré)
: [세컨드 와인] 샤또 물랭 리슈 (Château Moulin Riche)
○ 3등급(2)
샤또 라그랑쥬 (Château Lagrange)
:[세컨드 와인] 레 피에 드 라그랑쥬(Les Fiefs de Lagrange)
샤또 랑고아 바르똥 (Château Langoa Barton)
: [세컨드 와인] 샤토 레이디 랑고아(Château Lady Langoa)
○ 4등급(4)
샤또 베슈벨(Château Beychevelle)
:[세컨드 와인] 아미랄 드 베슈벨(Amiral de Beychevelle)
샤또 브라네르 뒤크뤼 (Château Branaire Ducru)
:[세컨드 와인] 샤또 뒤뤽(Chateau Duluc)
샤또 생 피에르(Château Saint-Pierre)
샤또 딸보 (Château Talbot)
:[세컨드 와인] 꼬네따블 탈보 (Connetable Talbot)
믿고 선택해도 좋다는 생줄리앙 와인
와인 업계에서는 흔히 말한다. 생줄리앙 와인은 3등급 이하의 와인이나 비 등급일지라도 가성비가 좋은 훌륭한 와인을 만날 수 있다고 말이다.
또한 2등급 와인이더라도 해에 따라서는 1등급 와인을 능가하는 평가를 받는 와인이 나오는 곳이 생줄리앙 와인이라고 한다. 이 경우 다른 지역 2등급 와인 가격보다는 비싸게 책정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1등급보다는 싸게 유통되니 가성비로 접근하면 최고라는 것이다.
또한 퍼스트 와인이 부담스럽다면 생줄리앙 등급 와인의 경우 대부분 세컨드 와인이 존재하니 세컨드 와인으로 가벼운 주머니를 달래 봄은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