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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un 04. 2019

도를 넘는 야망, 그 나비효과

영화 '300' 속 스파르타 총공격...'테르모필레 전투' 이야기

잠이 오지 않는 밤... 인터넷이란 나만의 공간에 내 정신을 맡긴다. 미친 사람처럼 쇼핑을 하기도 하고, 말 그대로 바다 위 파도를 타듯 웹서핑을 하곤 한다.


그러다 발견하게 된 영화 '300'... 강한 지적 호기심이 일었다. '스파르타인들은 왜 그토록 무모한 싸움을 하게 됐을까'. 왜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100만 군대를 이끌고 스파르타를 쳐들어갔을까. 그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자... 이제.... 내가 좋아하는 역사 속 여행을 떠날 때가 온 듯하다. 자 이제 호흡을 가다듬고... 광활한 인터넷 안에 있는 '페르시아 제국이 있던 기원전으로' 여행을 떠나보련다...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전투

영화 '300' 속 배경은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Leonidas, 재위 BC 487~BC 480)와 300명의 스파르탄이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다리우스 1세 아들, 재위 BC 486~BC 465)와 그의 100만 군대와 맞서 싸운 '테르모필레 전투(Battle of Thermopylae)'를 배경으로 한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페르시아가 두 번째로 그리스를 침공할 당시 사흘 넘게 벌어진 전투다. 이 전투는 기원전 480년 8월 7일에는 테르보필레 협곡에서, 기원전 480년 9월 8일~ 10일에는 아르테미시온 해협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테르모필레 협곡에 대한 지형을 좀 더 설명하자면, 테르모필레는 마케도니아 해안에 위치한 좁은 골짜기다. 그리스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하나의 관문 같은 곳이라고 한다. 군사적 전략을 사용하기에 굉장히 좋은 곳으로, 많은 군사들이 동시에 진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소였으리라

출처 : 두산백과

크세르크세스는 100만 명(역사학자 헤로도토스의 주장)이 넘는 거대한 육해군을 이끌고 그리스 전체를 정복하고자 진군하고 있다. 그리스 연합군은 이를 막아야 한다. 어찌 보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들(그리스 연합군)은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아테네의 전략가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이 기지를 발휘한다.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 육군의 진입을 막고, 동시에 아르테미시온 해협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막자고 제안한 것. 이는 페르시아 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한편, 해상 전투를 통해 페르시아 해군을 무찌르겠다는 셈법이다. 병력 규모가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는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를 총지휘관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 7,000여 명은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진격해오는 페르시아 군대 100만 여 명과 사흘 간의 전투를 벌이게 된다.

출처: 위키피디아(테르모필레 전쟁토 현재 모습)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의 전략 덕택에 페르시아 군대는 테르모필레의 좁은 골짜기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을 받으며 몇 차례 저지를 당하게 된다. 그러던 중 한 그리스인이 페르시아 군대에게 그리스 연합군을 뒤에서 공격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고 밀고하게 되고, 페르시아 군은 밀고받은 우회로를 이용해 기습 공격에 성공한다.


당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타 정예군 300명을 비롯해 약 천명 정도만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적은 수로 페르시아 군대에 맞서 강하게 저항하였으나, 앞뒤로 앞뒤로 공격이 퍼붓는 상황에서 결국 전원 사망하게 이르렀다고 한다. 영화 300의 결말처럼.


지금도 테르모필레 협곡에는 스파르타 용사들을 기리는, 비문을 새긴 비석("지나는자여, 가서 스파르타인에게 전하라. 우리는 조국의 명을 받아 여기 잠들었노라고")과 전설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영화의 모티브까지 제공하게 된 것이다.

아르테미시온 해협
그리스 연합군

테르모필레 비보는 아르테미시온 해협에 있는 그리스 연합군에게도 전달됐다. 당초 그리스의 전략은 테르모필레와 아르테미시온 양쪽에서 적을 막는 것이었지만, 육지가 뚫린 상황이어서 그리스 함대는 아르테미시온 해협에서 퇴각해 살라미스로 이동한다. 그렇게 아테네는 함락된다.


이후 그리스 연합군 함대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격퇴하였고, 그리스에서 발이 묶일 것을 두려워한 크세르크세스는 군대 대부분을 페르시아로 철수시킨다. 그리스 연합군은 이듬해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페르시아인을 무찌르며 페르시아의 침략은 종식된.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
그들은 왜 침략을 시도했을까

기원전 4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당시 페르시아 왕이었던 다리우스 1세(재위 BC 522~BC 486)에게 그리스란 도시는 상대적으로 작기도 하였거니와 경제적으로도 정복했을 때 득 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했다는 설이 있다. 페르시아의 중심(아래 사진 속 파란 원형 표시)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다리우스 1세의 절대 권력이 미치기에는 너무도 변두리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변두리로 여겨졌던 그리스 인근 지역은 사실상 사트라프(Satrap)라 불리는 지역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통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쉽게 말하면 영주, 군주 정도로 보면 된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에는 동서 각지에서 조공물을 바치러 오는 사신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변두리라고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사트라프 사이들에서도 페르시아 제국 왕에게 잘 보여 더욱 명망이 높고 더 높은 권력 자리로 가기 위해 황제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야망가들이 속출했을 것이다.

밀레투스의 야망가
아리스타고라스
BC 499년에는 소아시아 연안에 있는 이오니아(Ionia) 지방의 그리스 도시 밀레투스(Miletus)의 정치가 아리스타고라스(Aristagoras)를 중심으로 여러 소도시들이 연합하여 이오니아 반란(BC 499∼BC 494)을 일으키자, 다리우스 1세는 이를 먼저 진압하고자 했으며, BC 494년 이오니아 소도시들을 모두 점령했다.

여러 백과사전에는 페르시아의 그리스 정복의 시발점으로 이오니아(Ionia) 반란(BC499~ BC494)으로 기록돼 있다. 그리고 이오니아 반란의 중심에는 페르시아 내 변방 지역인 '밀레투스(Miletus)' 정치가이자 사트라프인 '아리스타고라스(Aristagoras)'란 인물이 언급돼 있다.


그는 왜?
무엇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것일까?

'아리스타고라스'에 대해 살펴보니 다양한 버전의 이야기가 있는데, 일단 두 가지를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처음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 1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하나의 사트라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는 기원전 499년에 다리우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이오니아의 앞바다 '에게 해'에 있는 낙소스섬(Naxos Island)을 정복하고자 했단다.


낙소스섬에는 당시 다리우스 1세가 임명한 사트라프가 있었는데, 낙소스섬 사람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사트라프를 처형하게 된다. 어차피 페르시안 제국의 변방보다 더 멀리 있는 섬이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낙소스섬을 중심으로 이오니아 지역 일대에서 독립운동이 일자, 아리스타고라스가 이를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는 설이 있다. 낙소스섬을 점령하고 인근 지역을 제압하면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리라.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낙소스섬을 점령해 자신의 휘하에 두는 것만으로도 아리스타고라스에게 남는 장사였다.


문제는 낙소스섬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아리스타고라스는 다리우스 1세 형제인 리디아(Lydia) 사트라프인 아르타페르네스(Artaphernes)와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그는 사령관으로 메가바테스(Megabates)를 영입했다고 한다. 메가바테스는 아르타페르네스와 다리우스 1세의 사촌이었다.


하지만 아리스타고라스는 야망에 눈이 먼 사트라프에 불과했다. 군대를 지휘할 만큼의 그릇이 되지 못한 것이다. 무조건적인 복종과 부하직원에 대한 모욕적인 지시가 이어지자 결국 사령관 메가바테스가 분개했고, 메가바테스는 낙소스섬에 사람을 보내 곧 침략이 있을 것임을 알려주게 된다. 부하들의 신망을 얻지 못한 지휘관이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상대와의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 4개월가량 공격을 가했지만, 결국 철수하게 된다.

참고로 덧붙이면, 또 다른 버전도 있다. 낙소스섬에 공격이 있을 것을 알려준 것이 메가바테스가 아니라 아리스타고라스라는 설이다. 요약하면, 낙소스 공격을 앞두고, 메가바테스와 아리스타고라스는 게으름을 피우던 선장의 처우를 둘러싸고 대립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감정이 상한 아리스타고라스가 낙소스섬에 메가바테스의 계획을 누설했다는 것.
교활한? 기회주의자?
아리스타고라스

다리우스 1세와 사촌과 형제에게 빚을 진 아리스타고라스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임이 말을 하지 않아도 짐작된다.


그는 전쟁에 패하면서 아르타페르네스에 함대 사용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게 됐고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였을 것이다. 바로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싸워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는 것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게 될 경우 그는 전쟁에서 패배한 책임과 황제의 형제, 사촌을 이용만 하고 아무런 대가도 제공하지 못한 것 등에 대한 명분으로 최악의 경우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관리하던 밀레투스 사람들과 인근 지역(과거 그리스에 속했던)을 설득에 성공하고, 페르시아에 대항하는 이오니아 투쟁의 지도자가 된다.


아리스타고라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며 그리스 본토를 끌어들이려고 애썼다. 스파르타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아테네와 에페소스는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페르시아 제국과 전쟁에 직접 동참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는 판단 같기도 하다.


사실 이것이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를 정복해야겠다고 결단하게 된 빌미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이전까지 페르시아에게 그리스는 너무 멀고 가난한 도시라는 인식이었지만,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Sardis)를 향해 진군하며 도시를 기습, 불바다로 만든 그리스는 더 이상 얕봐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언제든 페르시아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급부상한 것이다.


물론 이오니아 투쟁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원전 494년에 일단락됐다.

참고로, 내용을 정리하면서 대부분의 역사서나 위키트리에는 '이오니아 반란'으로 적혀있었는데, 이를 보면서 고민하게 됐다. 이들은 페르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 독립운동을 벌인 것인데 '반란'이라고 명시한 것은 너무 한쪽의 시각으로 쓰인 것 아닌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다.
후속 편
'300:제국의 부활'
살라미스 해전 이야기

▼후속 편인 '300:제국의 부활' 배경인 살라미스 해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내용 참조


와인 관련 상식 하나
낙소스섬에선 '화이트 와인'을!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낙소스섬. 낙소스섬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아리아드네(Ariadne) 신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우선 아리아드네에 대해서 살펴보면, 아리아드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공주로, 크레타섬의 왕 미노스파시파에의 딸이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의 아내가 될 수 있었으나 낙소스 섬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녀가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된 걸로 나타나있다. 실제로 디오니소스의 아내이기도 하다.


미노스는 그의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와 관계해 머리는 소이고 몸은 사람인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미노타우로스는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이에 미노스는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두고 아테네에 해마다 남녀 각각 7명씩의 젊은이를 미노타우로스 제물로 바치게 했다.

미궁이란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지하나 반지하에 지었던 것으로서 수많은 방과 통로들이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로 배치되었던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미노타우로스를 죽이기 위해 제물로 위장해 크레타섬에 들어가게 되고 아리아드네와 마주친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칼과 붉은 실타래를 주며 테세우스를 돕는다.

출처 : Pixabay(미노타우로스를 대적하는 테세우스 동상)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준 칼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타래를 이용해 그가 지나온 길을 따라서 무사히 미궁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테세우스는 아테네로 아리아드네와 돌아가던 중 낙소스섬에 머무르게 된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설이 갈린다. 크레타섬의 왕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에게 버림을 받고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되었다는 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테세우스가 낙소스섬에 잠든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떠났고, 잠에서 깬 아리아드네는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하고 왕자로부터도 버림받음에 깊은 슬픔에 빠진다. 이때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반해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출처 : 위키미디어 낙소스섬에 아리아드네(Ariadne in Naxos, by Evelyn De Morgan, 1877)

낙소스섬에 발을 딛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섬의 상징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가 만난 곳이 바로 아폴로 신전이다. 낙소스섬의 아폴로 신전은 기원전 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Pixabay(낙소스섬 아폴로 신전)

또 다른 설은. 디오니소스가 테세우스에게 나타나 낙소스섬에 아리아드네를 두고 떠나라고 요구했다는 것. 이는 별자리 전설로도 이어지는데,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에게 결혼 선물로 왕관을 줬는데 이 왕관이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됐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낙소스섬은 사람들로부터 지중해의 숨은 보석,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섬이라고 불리게 됐다.


낙소스섬에는 올리브 나무가 많아 화이트 와인이 유명하다고 한다. 아직 가보지 못한 상황이라 무엇이 맛있는지는 추천할 수 없지만...


일단 아리아드네로 검색해보니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서 이미 '아리아드네'란 이름을 가져갔다. '아리아드네'가 들어갔다고 해서 그리스 와인일 거라고 착각하지 마시길...


이번 글은 정말 너무도 길어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마무리를 해보려고 한다. 아주 후려쳐서 급마무리를 하자면....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그리스에 가면 와인을 꼭 마셔 보길 권한다. 아직 마셔보지 않았기에 그리스의 토착 포도품종에 대한 소개는 아래를 참조 바란다. 기회가 된다면 그리스 와인에 대한 후기도 꼭 남겨놓겠다.


▼ 그리스 포도품종과 와인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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