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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un 07. 2019

선과 악은 승자의 기록

영화 '300:제국의 부활' 배경...살라미스 해전 이야기

1편 영화 '300' 배경은
테르모필레 전투

영화 '300'의 후속 편 '300:제국의 부활'에 대해 이번에는 다루려고 한다. 영화를 보는 즐거움 역시 스토리 라인이 중요하니 전편을 보고 나면 더 이해하기 쉽다.


영화 '300' 속 테르모필레 전투 이야기는 아래 참조

'300:제국의 부활' 속
살라미스 해전

1편의 배경이었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스파르타인 300명의 용사를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 군에 전멸한다. 그 소식은 아르테미시온 해협에 있던 그리스 연합군에게도 전달되고 그리스 연합군은 살라미스로 퇴각한다.

1편을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테르모필레 협곡과 아르테미시온 해협에 그리스 연합군이 왜 나뉘어 있었는지를 설명하자면. 그리스 연합군은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 육군의 진입을 막고, 동시에 아르테미시온 해협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막기로 전략을 세웠다. 이는 페르시아 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한편, 해상 전투를 통해 페르시아 해군을 무찌르겠다는 셈법으로, 병력 규모가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는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육지가 뚫린 상황에서 아르테미시온 해협에서의 전투는 전략적 더 이상 무의미해서다. 남은 병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재정비하고 유리한 지형에서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만 한다. 소수의 병력으로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달려드는 적과 일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출처 : 두산 백과

살라미스 해전의 설명에 앞서 지도를 통해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서 이해하면 좋다.

이미지 원본 출처: 위키피디아

위 이미지에서 우측 가운데 있는 곳이 살라미스 섬이다. 구글 검색(아래 이미지 참조)으로는 살라미나 섬으로 번역돼 검색된다.

출처: 구글 지도

살라미스 해전에 앞서 벌어진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그리스 연합군 전멸은, 안 그래도 수적으로 열세였던 그리스 연합군을 더욱 위축시킬 수밖에 없는 비보였을 것이다. 살라미스 해전을 앞둔 그리스 연합군과 페르시아 군의 전력은 실제로도 큰 차이가 났다. 그리스 연합군에게는 370여 척의 전함이 전부였지만 페르시아 군에게는 그보다 3~4배가량 많은 군함이 있었다고 전해지니 말이다.


결국 그리스 연합군은 전략, 전술로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풀어가는 방법밖에 없었으리라.

출처: 나무위키(https://namu.wiki/w/%EC%82%B4%EB%9D%BC%EB%AF%B8%EC%8A%A4%20%ED%95%B4%EC%A0%84)

당시 그리스 연합군의 전함은 살라미스 섬과 피라에우스(Piraeus)가 인접한 해안 사이 좁은 해협으로 퇴각해 있었다. 그리스 연합군은 위의 지도에서 처럼 살라미스 섬 안쪽 해안에 고립되어 버린 처지가 되어버렸다. 페르시안 군의 함대는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어도 유리한 상황이었다.


또한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함대가 살라미스 섬 반대쪽인 펠로폰네소스 반도 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 군대를 살라미스 섬 인근으로 보냈다고 한다. 수적으로 불리한 그리스 연합군에게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인 상황이 셈이었다.

사면초가란, 사방에 초(楚)나라 노랫소리. 즉 궁지에 빠진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스파르타가 있던 지역인데 지도를 통해 확인하면 아래 빨간색 원이 있는 곳이다. 즉, 살라미스 해전(노란 동그라미)이 있는 곳에서 좌측에 있는 큰 반도다.

출처: 구글 지도

이미 페르시아 군은 아테네에 진입해 도시를 장악한 상황.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네에 머물며 살라미스 공격 방식에 대한 전략 회의를 거듭하게 됐는데, 이때 두 가지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스 정치가들의 내분을 기다리면서 그동안 점령한 곳을 다스리며 재정비하자'와 '즉시 그리스 연합군을 공격하여 괴멸시키자'.

괴멸 (壞滅) : 조직이나 체계 따위가 모조리 파괴되어 멸망함


이에 크세르크세스는 즉각 공격하는 것으로 결심하고 진격하려는데, 크세르크세스에게 "그리스 해군이 살라미스를 빠져나가 달아날 계획"이라는 첩보가 들어온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가 시킨누스(Sicinnus)다. 그리스 연합군 지휘관인 테미스토클레스의 가정교사로 일하던 페르시아 출신 포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를 크세르크세스에게 보내 "자신은 페르시아 편 설 것이며 펠로폰네소스 반도 출신 그리스 해군들은 철수할 예정"이라고 전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에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연합군의 내분이 시작됐다고 판단하게 됐고, 그날 밤 즉시 함대를 전진시켜 해협 봉쇄에 나선다. 너무도 뻔한 승리를 자신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승리를 관람하기 위해 아이갈레오스 산의 벼랑 높은 곳에 황금 옥좌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실제로 그리스 연합군 내 펠로폰네소스 출신의 그리스인들은 살라미스 해협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투표 결과 다수결 원칙에 따라 철수가 거의 확실히 됐지만, 그리스 정치가들 사이에서 정직함으로 명망이 높은 아테네 정치가 아리스티데스가 군사회의에서 "페르시아 해군이 해협 봉쇄를 위해 포진했다"고 말했고, 이를 들은 펠로폰네소스 장군들은 마음을 바꿔 모두 전투에 임하게 됐다는 것.


결전의 날은 다음 날, B.C. 480년 9월 23일 새벽. 크세르크세스는 동이 트자마자 그리스 해군의 퇴로를 봉쇄하기 위해 진격한다.

이날 11시간 동안 바다 위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그 결과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 군을 상대로 승전고(싸움에 이기고 나서 치는 북)를 울린다.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 해전' 패배로 200척이 넘는 전함과 수천 명의 자신의 우수한 선원, 용맹한 병사들을 잃었다. 그 속에는 자신의 형제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크세르크세스는 군대 대부분을 페르시아로 철수시킨다. 바다를 장악하게 된 그리스 해군이 페르시아 본토와의 보급로를 차단해 페르시아 군이 그리스에서 발이 묶일 것을 두려워해서다.

해전에서의 패배는 육지로 진군하는 대규모 병력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게 된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화물선을 통해 대규모 군대에 보급한 물품을 공급하고 있었다. 대규모 군대를 일으켜 이동하면서 식량과 비품까지 육로로 가게 된다면 군의 피로도뿐 아니라 진군 속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돼서다.


그리스 연합군은 이듬해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페르시아인을 무찌르며 페르시아의 침략은 종식된다.

결과를 가지고 해석을 한 것일 수 있고, 영웅신화를 만들기 위해 포장했을 수도 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크세르크세스를 속이는(?) 데 성공했고, 이에 자만했던(?)·교만했던(?)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 함대를 살라미스 해협을 진입시켜 결국 비좁은 해협에서 거대한 페르시아 군함은 서로 충돌해 가라앉으며 자멸했다고 말이다.


소설이나 영화가 사실을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면... 그 소설과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나름 애정이 생겼다면... 배경이 되는 사건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거리다. 실제 이야기는 어땠는지 알아보는 것도 그 나름의 유익함이 있다. 소설과 영화는 극적일수록 더욱 짜릿하고 흥미진진해지는 법이라 허구가 개입되게 마련이다.

내 마음속 주연
시킨누스

내 기준에서 2편 '300:제국의 부활' 속 주인공은 시킨누스(Sicinnus)다. 적장에 들어가 크세르크세스에게 정보를 흘린 시킨누스(Sicinnus)가 있었기에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의 여신이 그리스 연합군에 손을 들어준 것 아닐까.


물론 테르모필레 협곡과 아르테미시온 해협에서 100만 명이 넘는 대군을 물리치자고 제안한 아테네의 전략가 테미스토클레스 장군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뭐 그는 이미 역사적으로 영화 속에서도 이미 스포트라이트를 확실히 받았으니...

영화 속 시킨누스

물론 이 마저도 결과론적인 해석일 수 있다. 거짓 정보인지, 진실을 전한 것인지 단정 지을 수 없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자신의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위해, 그게 거짓이든 진실이든, 전투 중에 적장 앞에서 자신의 말을 믿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를 가지고 뒤틀어 보면 크세르크세스도 괜찮은 인물 아니었을까.


시킨누스가 궁금해 추가적인 정보를 찾아봤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BC 484~BC 430)의 기록에 따르면, 시키누스는 아테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집안의 노예로 페르시아 출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학식이 깊어 테미스토클레스의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일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공을 세운 뒤에는 테미스토클레스로부터 시민권과 함께 많은 재산을 받았고, 훗날에는 사업가로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사는 승자의 시각으로 기록된다

선과 악은 오로지 승자의 시각에서 새겨짐을 깨닫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스와 페르시안의 전쟁의 시작은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 영토였던 리디아(Lydia)의 수도 사르디스(Sardis)를 기습한 뒤 불바다로 만든 것이 발단이 됐다.


이는 페르시아 내 변방 지역인 '밀레투스(Miletus)' 정치가이자 사트라프(군주 또는 영주 정도)인 '아리스타고라스(Aristagoras)'가 일으킨(?) 이오니아 투쟁 중 그리스인들이 참가하게 되고, 이들은 사르디스를 기습한 뒤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전까지 페르시아 제국 황제는 그리스가 지리적으로 너무도 멀기도 하거니와 가난한 도시에 불과해 정복에 나서는 것이 득 보다 실이 더 크다고 판단해 쳐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르디스가 불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얕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리스 정복에 나섰다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안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승리한 이들이 적어놓은 것들을 토대로 학습하고 세뇌당한다. 그리스와 페르시안 전쟁에서 그리스가 이겼기에 영화 속 페르시안 제국은 기괴한 모습으로 연출된 것 아닐까. 심지어 시킨누스마저도 말이다.

그리스 와인 정보 Tip

그리스는 와인의 발상지로 5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세계 17위 와인 생산국이다. 2015년 기준, 와인 생산량은 270만 헥토리터 규모다.


300종의 그리스 토착 품종이 존재하며, 이 중 50개 토착품종이 전체 와인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리스 토착 품종은 300종이지만, 잠재적으로는 400종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일부 품종은 그리스에서도 특정 지역에서만 자랄 정도로 희귀하다고 한다. 2012년 기준, 화이트 품종인 사바티아노(Savatiano) 17%, 로디티스(Roditis) 13.73%, 레드 품종인 아기오르기티코(Agiorgitiko) 5.45%, 시노마브로(Xinomavro) 3.37% 순으로 재배된다.


그리스 와인의 97%는 자국 내에서 소비된다. 단 3%만이 수출용이다. 2014년 기준 총 와인 수출액은 6270만 유로(원화로 약 87억 원)에 이른다. 최대 수출국은 독일, 미국, 프랑스, 캐나다 순이다.


프랑스 아펠라시옹(Appellation)급인 원산지 명칭 통제 PDO(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는 33개, 뱅드페이(Vin de Pay)급인 PGI(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는 120개다. 최상위 등급 피디오(PDO)의 포도들은 1kg당 0.43유로 선이다.


그리스에는 18만 명의 포도 재배자, 718개 와이너리가 존재하며, 이는 경제 위기 이후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생산량의 2/3는 화이트 와인, 1/3은 레드 와인으로 나뉜다.


그리스 와인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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