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에도 아들의 한글 연습은 계속됐다. 아들은 요즘 한글 공부 중이다. 7살이니 이제 조금씩 글자를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어려운 말을 쓰기보다는 평소 자신이 쓰는 말 정도는 글자로 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아들은 자기의 이름은 또박또박 잘 쓴다. 내가 옆에서 함께 있으면 글자를 제법 개성 있으면서도 알아볼 수 있게 쓴다. 하지만 오늘은 귀찮아서일까. 아니면 빨리 놀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까. 오늘은 글씨가 많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아들, 글씨를 알아볼 수 있게 써야 해
나의 지적에 아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너무도 순수해 보이는 눈망울에 난 부연설명이 필요함을 느꼈다. 평소 난 아들에게 대화를 많이 시도하려고 애쓴다.
특히 아들과 대화를 할 때 내가 스스로 지키는 원칙이 있다. 내가 질문을 했을 때 아들의 표정이 좀 애매하면 되묻는다. 혹시 내가 말한 문장 중에 내가 생각해도 어른들이 쓰는 어려운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를 알고 있는지 물어보곤 한다. 그럼 거의 100% 알지 못하는 단어이고 그래서 아들은 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들의 지적 호기심, "왜요?"에 대해서 난 되도록이면 아무리 귀찮아도, 지치고 힘들어도,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한다.
이번 질문도 그에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글을 배우는 것이 글자를 배운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예쁘게 보기 좋게 잘 써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설명해야 했다
아들 같이 생각해보자
"아들, 글자를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아들의 생각을 알려주고 싶어서겠지? 아니면 아들의 마음속에 떠오른 것들을 글자로 적어내는 거든지. 그렇다면 아들이 쓴 글자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는 거겠네. 그치?"
"응"
"그렇다면 아들이 쓴 글자를 아빠가 읽었을 때 알아볼 수 있어야겠네? 그래야 아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아빠가 이해할 수 있을 거잖아. 만약 아들이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마음이나 생각을 글자로 쓰는 거라면 남들이 알아볼 수 없게 써도 돼. 마치 수수께끼처럼 말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왕이면 보기 좋게, 남들이 이해하기 쉽게 써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들 생각은 어때?"
"응"
"그렇다면 다시 한번 써볼까? 아빠가 아들에게 편지를 써줄 때 또박또박 예쁘게 써주는 게 좋아? 아니면 삐뚤빼뚤 알아보기 힘들게 써주는 게 좋아?"
"예쁘게"
"응 맞아 다만 너무 또박또박 쓰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알아볼 수 있도록 쓰면 돼. 사람마다 개성이란 게 있거든, 개성이라는 것은 아들만이 가진 글자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 다시 한번 써볼까?"
"응!"
"아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글자란 것은 남기기 위한 거야. 옛날 사람들이 글자를 적어놨기에 지금 우리가 수백 년 전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거거든. 그게 다 글자로 기록을 해놔서 그래. 아들도 기억하고 싶은 일들이 있으면 글자로 남기면 돼. 알았지?"
"네~!"
사실 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 스스로 배우는 게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아들의 순수한 눈망울을 보면 내 부정적인 기운이 걷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늘 아들을 보며 배우는 게 많다고 얘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