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 그리고 반려견

출처가 불분명한 괴담에 속지 마세요

by 광화문덕
아내의 임신

결혼 후 아이가 들어섰다. 아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배는 불러왔고 남편의 따뜻한 돌봄이 필요한 시기였다. 변해가는 몸에 대한 두려움과 출산에 대한 불안함을 함께 이겨나갈 남편이 있어야 할 시기가 바로 임신 기간이다.


그런데... 난 기자. 게다가 당시 사회부에 속해있었다. 별을 보고 출근해 별을 보고 퇴근했다.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수습이 돌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집에서 잔 시간은 다 합쳐도 20시간이 채 안됐다.


나쁜 남편이었다. 남편으로서 아내의 외로움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죄책감은 날로 더해갔다. 아내의 감정의 기복 역시 점점 심해졌다. 난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러다 연애할 때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난 꼭 한 번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아내에게 강아지를 분양받자고 제안했다. 모처럼 아내가 웃었다.


웃음도 잠시... 아내는 망설였다. 임신한 자신이 강아지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처음 키우는 것이라 강아지에게 오히려 불행을 주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걱정했다.


난 약속했다. 강아지 똥과 오줌은 내가 치우겠다고... 목욕도 내가 시켜주겠다고... 뭐라도 해야만 했다.


주말마다 강아지를 보러 다녔다. 아내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랜만에 보는 미소였다. 그러다 애견 미용샵에서 '우니'를 만나게 됐다.


우니는 우리를 보자마자 플라스틱 벽에 다리를 걸치고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마치 자기를 봐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검은 색 털이 매력적인 아기 우니는 매력적이었다.


아내는 우니를 보자마자 눈을 떼지 못했다. 나 역시 그랬다.

입양

2012년 11월 3일 우니는 우리의 가족이 됐다. 우니는 너무도 어린 상태였다. 우니가 아플까봐 걱정됐다.


입양돼 집으로 온 우니는 며칠 간 잠만 잤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져 차디찬 플라스틱 통 속에서 지낸 기간이 너무도 고단했던 모양이었다. 낯선 공간에서 엄마 없이 혼자 있었을 우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아내와 나는 정성껏 우니를 돌봤다. 우리 아기를 대하듯 사랑을 쏟았다.


애교쟁이 우니

우니는 아내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줬다. 애교를 부리며 내가 없는 동안 아내의 심적 안정에 큰 공을 세웠다. 임신 후 표정이 굳어가던 아내는 우니 입양 후 하루가 다르게 밝아져 갔다. 웃음도 많아졌다. 별을 보고 출근해서 별을 보며 퇴근하는 내게도 우니는 든든한 가족이었다.


우니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늘 함께 다녔다. 아내의 태교 여행을 제주도로 갔을 때도 우니는 동행했다. 강원도를 가도, 집 주위 마트를 가도 늘 우니는 함께했다. 점점 출산일은 다가왔다.

갓난 아이에게 강아지가 해롭다던데?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던 도중 끔찍한 이야기를 읽었다고 했다.


"애완견이 사람에게 옴을 옮겼다. 개회충으로 인해 사람이 실명했다. 개털 때문에 불임이 됐다" 등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이야기들이었다.


우니는 이미 우리의 가족이었다. 난 확인해야 했다. 과연 이 소문들이 사실인지에 대해서...


이런 괴담의 이야기의 출처는 모두 지인이었다. '누구에게 들었는데, 어디서 들었는데'였다. 권위자를 찾아야 했다. 전문의를 찾아야 했다.


동물협회에 확인해 보니 매년 40만 마리의 반려동물들이 버려진다고 했다....


불임이 강아지 때문?

가장 흔한 낭설 가운데 하나가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 임신이 안 된다"는 말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모성호르몬이 증가해 여성호르몬을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성호르몬이 여성호르몬 분비를 막아 불임이 된다'는 논리는 그럴 듯 해보였다. '모성호르몬'이란 의학 전문 용어가 사용된 것 자체가 뭔가 전문가의 소견처럼 보였다.


그런데...... 내가 만난 전문의들은 의학적으로 '모성호르몬'이란 존재 자체가 없다고 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가정의학과 권지형 전문의. 권 전문의는 이미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의료인이었다. 반려동물이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외국 눈물을 샅샅이 뒤져 책을 낸 의사다. 권 전문의의 설명은 명쾌했다.


"얼핏 듣기에 그럴 듯해 보이지만 모성호르몬이라는 건 아예 없어요. 그 논리대로라면 첫째 아이를 낳은 세상 모든 엄마는 '모성호르몬'이 생겨 둘째를 낳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요".

개털이 여성의 나팔관을 막는다?

'불임인 여자를 검사해보니 나팔관이 개털로 꽉 막혀 있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어이없다고 했다.


"자궁경부라 불리는 자궁 입구는 매우 두꺼운 근육으로 평상시에는 바늘구멍보다 작게 꼭 닫혀 있어요. 개털이 자궁경부를 지나 나팔관에 도달할 수 없어요. 아주 드물지만, 나팔관이나 난소에서 털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일종의 양성 종양이에요".

권 전문의는 난소가 있던 난자가 웃자라면서 털이나 이빨, 뼛조각 등의 조직으로 제멋대로 분화한 것일 수는 있어도, 개털이 들어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했다.


'개털이 임신 중 태아에게 침입해 나쁜 균을 옮긴다'는 괴담에 대해서도 황당하다고 했다. 임신하면 태아는 자궁경부의 방어장치와 양막에 둘러싸여 보호받게 돼 세균을 비롯한 어떤 외부 물질도 자궁경부를 지나 양막을 뚫고 태아에게 닿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부검했더니 아이의 기도에서 개털이?

'개 키우는 집 아이가 죽어 부검을 해봤더니 개털이 기도를 막았다더라'는 괴담도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 몸이 정말 이렇게 허술할까란 의심이 든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위험한 것 아닐까...


권 전문의의 설명은 이번에도 깔끔·명료했다.


"동물 털이 코로 들어간다면 가장 먼저 거쳐야 할 장벽이 콧속의 코털인데, 대부분의 동물털은 이 장벽을 통과하지 못해요. 운 좋게 콧속 뒤쪽에 있는 비강까지 들어갔다 해도 끈적한 점액이 깔려 있어 다 걸러질 수밖에 없죠. 만약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다 털이 넘어갔다고 해도, 후두에도 비강과 같은 구조가 있어 기관지에 다다르기 전에 다 처리됩니다".

무익한 반려견?

전문가들은 반려견을 영유아와 함께 키울 경우 좋은 점이 더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반려견은 아이에게 면역학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했다. 위험도가 낮은 반려견의 항원에 지속적으로 노출됨으로써, 질병에 대한 대처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문은 외국에 많았다.


미국의 소아정신과 의사인 보리스 레빈슨은 1962년 실험을 통해 '반려동물이 아동의 놀이 상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입증했다.

또 미국 퍼듀대학 수의학 교수 벡과 정신과 의사인 캐처는 1984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아이들은 반려동물과의 놀이를 통해 운동량이 늘어나고 감각도 발달한다"고 밝혔다.

영국 워릭대학 심리학 교수인 맥 니콜라스와 콜리스도 "반려동물은 유아에게 외로움을 줄여주고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며, 비밀을 보장해 주는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신남식 교수도 내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동물과 함께한 사람은 커서도 천식 발생률이 낮고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논문이 많습니다"라고...


다만...

갓 태어난 신생아는 이제 막 세상에 나와 적응을 시작한 만큼, 가장 연약한 상태임은 분명하다고 했다. 면역반응 능력이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가벼운 감염으로도 패혈증 등의 심각한 질환이 생길 수 있다고도 했다.


특히 생후 1개월 때에는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아이와 반려견의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는 게 좋다고도 조언했다.


하지만 같이 사는 가족들이 손을 자주 씻듯, 반려견도 목욕과 미용을 통해 청결 상태에 신경을 써준다면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건국대 수의과대학 엄기동 동물병원장은 내게 말했다.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면 모체로부터 모유를 통해 면역력을 획득해간다. 이 과정에서 병원체나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항원에 노출되면 면역항체가 형성된다. 다만 생후 1개월 때에는 이러한 면역체계가 불안정하므로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는 게 좋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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