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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r 20. 2020

추억, 기억 그리고 그리움

몸은 한해 두해 나이를 먹지만 마음은 늙지 않는구나

새벽 3시 2분...

깊은 수면과 얕은 수면 사이를 오가다 내가 잠을 자고 있음을 인지한 순간, 정신이 맑아졌다.


의식하며 잠을 다시 청해 본다. 하지만 마음속 미세한 아픔이 내 정신을 들어 깨운다. 내 마음속 깊은 아픔과 마주하기 위해 집중한다. 내게 말을 거는 이가 있다. 어릴 적 나다. 내 몸은 이제 나이가 들어 41살이 됐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과거의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내 마음속 어린아이를 잠재우듯

눈을 감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오래된 필름을 되감....


햇살이 화사하게 비추는 어느 봄날... 3살쯤 된 아이가 시멘트 마당 위에서 자전거 바퀴를 신나게 구르고 있다. 초록색 페인트가 덧입혀진 세발자전거. 엄마는 식사 준비를 하는 듯하고, 아빠는 전일 밤샘 근무로 인해 잠을 주무시는 듯하다. 아이의 집은 사람들이 돌산이라고 부르는 산언저리에 위치해 있다. 낡아 녹슨 대문, 그리고 대문을 고 있는 담벼락에는 사이다, 콜라병을 깨서 박아놓은 도둑 방지용 유리가 솟아있다.


아이가 어디론가 가고 있다. 누나의 손을 잡고. 무척 행복해 보인다. 아이와 누나가 가는 곳은 돌멩이 가득한 산이다. 절벽처럼 보이는 위태로운 곳에 커다란 돌들이 놓여있고 남매는 커다란 돌 위에 앉아 저 아래로 내다보이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6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유치원으로 들어간다. 선교 유치원이라고 적혀있다. 생일 모자를 쓰고 있다.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엄마가 있는 양장점으로 들어간다. 작은 가게에는 미싱과 다리미판 그리고 난로가 있다. 엄마는 옷을 수선해주시거나, 옷 공장에서 일감을 받아와 생계를 꾸려나가신다. 한창 식욕이 왕성한 아이가 찾아오면 엄마는 난로에 구워 놓았던 가래떡과 고구마를 나눠주시곤 하셨다. 어른이 된 아이에게 가래떡과 군고구마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아이는 할머니 집이 있는 시골에 내려와 있다. 밖에서 펑펑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너무 어려 그 슬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른이 된 아이는 그 슬픔이 다가올까 봐 두렵기만 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이 가족은 시골에 내려가지 않았다. 아이 아빠는 술에 취하실 때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이따금씩 우실 뿐이었다.


이모가 찾아오셨다. 이모의 손에 파란색 '죠다쉬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가 들려져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나 보다. 아이는 광고에서나 보던 가방을 갖게 되어 너무도 기뻤다. 어른이 된 지금도 이모님께 감사해하고 있다.


아이가 늦잠을 잤다. 지금 뛰어가면 늦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는 학교 가기 싫다며 떼를 쓰다 엄마한테 호되게 혼쭐이 났다. 엄마는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함이라며 아이를 엄하게 다그치셨다.

 

아빠는 아이에게 슈퍼 히어로시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서 방학 숙제로 아빠와 만들기 과제가 있었는데, 아빠는 아이가 잠든 사이에  나무젓가락으로 거대한 전함을 만들었다. 아빠는 손재주가 참 좋으시다. 무엇이든 못하는 게 없는 아빠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아빠는 모범택시 운전자다. 아이에게 모범택시 운전사 옷을 입은 아빠 모습은 늘 멋있다. 아빠는 쉬는 날이면 모범운전자로서 교통정리 지원을 나가신다. 아이는 아빠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멋진 옷을 입고 수신호 하는 모습을 보면 아빠가 최고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아빠와 똥골이라는 곳에 가서 차 정비와 세차를 한다. 아빠는 아이에게 맛있는 간식을 사주신다. 아빠와 함께 하는 것은 늘 달콤한 즐거움이 있어서 좋다.


오늘도 아이는 아빠를 따라 나섰다. 평소 아빠와 가는 길과 다르다. 태릉 쪽을 넘어 가신오신다. 아침에 시작된 일과가 오후에 마쳤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아이는 따뜻한 햇살을 이불삼아 단잠에 빠졌다. "도착했다"는 아빠의 목소리에 아이는 잠을 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왔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드림랜드'다. 난생처음 온 놀이동산은 천국 같았다. 아이는 너무도 신이 났다. 아빠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아빠는 무서운 게 싫으시다 하셔서 아이는 혼자 다람쥐를 탔다. 다람쥐 바퀴가 돌 때마다 여기저기서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어지럽고 매쓰껍고 했지만 밖에서 웃어주는 아빠가 있어 든든하다는 표정이다. 아빠와 함께 한 그날은 아이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억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 엄마가 갑자기 아이를 깨워 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아이는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사색이 된 엄마의 표정이 너무도 심각해보여 묵묵히 엄마를 쫓아갈 뿐이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이마가 찢어져서 꿰맨 흔적이 보였다. 강도를 당하셨다고 한다. 아이의 아빠는 지금 아이의 나이 정도쯤 됐다.


아빠는 더 이상 택시운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와 함께 집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하기로 했다. 공장에서 하청의 하청을 받은 곳에서 물건을 떼와 일하다보니 월급을 떼이는 일이 잦으셨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엄마 아빠는 집에 미싱을 들여놓으시고 일하셨다. 아빠는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힘드신가 보다. 자연스레 엄마와 아빠의 다툼이 잦아지셨다. 그리고 아빠의 술 드시는 횟수도 늘어났다. 아이는 그게.... 너무... 싫었다....


컴퓨터란 것이 생겨났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니 다들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아이는 아빠에게 컴퓨터를 사달라고 졸랐다. 아빠는 난감해하셨다. 그 당시 비싸기도 했거니와 사실 우리 집 형편으로는 새 컴퓨터를 사는 게 부담스러우셨나 보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철없이 아빠 엄마에게 서운한 내색을 여과없이 표출한다. 그리고 며칠 후 아빠가 컴퓨터를 사오셨다. 비록 새것은 아니었지만 아이 방에 286 AT컴퓨터가 놓여졌다.


아이는 컴퓨터를 알아나가는 재미에 푹빠졌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아이 컴퓨터가 먹통이 됐다. DOS 디스크를 넣었는데 컴퓨터가 부팅이 되지 않는다. 시스템 에러가 나서 아이는 며칠 동안 자신의 잘못으로 컴퓨터가 고장났다며 슬픔에 빠졌다. 아이는 기도했다. "하나님 컴퓨터가 다시 살아나게 해주세요"라고. 아이는 꿈속에서 컴퓨터가 다시 살아나는 꿈 꿀 정도였다. 하지만 컴퓨터는 시간이 지나도 되살아나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아빠에게 그 사실을 말했고 아빠와 용산으로 컴퓨터를 고치러 갔다. 용산 수리 기사분이 하드가 고장 났다며 하드 교체를 해야 한다고 했다. 꽤 많은 비용이 들었다. 수리 기사님이 부른 하드 교체 및 수리비는 아빠가 사오신 중고 컴퓨터 가격만큼 비쌌다. 그럼에도 아빠는 고민하지 않고 고쳐달라 하셨다. 아빠의 며칠 분의 일당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이는 철이 없게도 고쳐진 컴퓨터를 보며 기뻐할 뿐이었다.


프린터기란 것이 생겨났다. 아이는 꽤 성장했다. 아빠는 이번에는 중고 도트 프린터기를 구해주셨다. 구형 기종이긴 하지만 점을 찍어서 만들어내는 프린터가 너무도 신기했다. 아빠는 아이에게 영웅 그 자체였다.


아이는 커가면서 그런 아빠와 부딪히기 시작했다. 이날도 아이는 아빠와 의견 대립이 있었고 밖을 서성였다. 엄마가 집 앞에서 서성이는 아이를 데리고 중국집을 향했다. 당시 유행했던 노랫말처럼 아이는 혼자서 짜장면을 먹었다.


..............



슬픔이 밀려온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니, 마음속 잠시 잊고 있던 아이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렇게 밤새 기억 속 나와 마주했다. 어느덧 알람 시계가 울렸고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내가 베고 있던 옅은 회식 빛깔 베개에는 추억이 스며들며 짙은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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