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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진 Apr 26. 2020

나와 미래를 잇는 다리, 브런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이번 주엔 '인터스텔라'

이번 주말에는 우주에 대한 영화 '인터스텔라'를 봤다. '퍼스트 맨' -> '마션' -> '인터스텔라'로 이어지는 스토리에서 어느덧 학창 시절 지긋지긋하게만 느꼈던 '물리학'이란 학문이  새롭게 다가왔다. '인터스텔라'에서 다뤄지는 내용인 중력과 시간의 관계는 굉장히 흥미로울 뿐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블랙홀과 웜홀에 대한 내용도 신기하면서도 유익했다.


'인터스텔라' 영화 속 세계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난 내 방식대로 느낀 점을 풀어보려고 한다.

시간 속 여행자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곳에서 시간은 모두 동일하게 흘러간다. 아직 우주여행은 보편화되지 않았을뿐더러 영화 속처럼 우리의 땅은 우리를 버리지 않아서다.


그렇기에 모두가 같은 시간 속 흐름에서 여행을 하고 있다. 내게 1초가 이곳 지구에 사는 모두에게 동일한 1초인 셈이다. 나의 시간도 아들의 시간도 모두 동일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렇기에 나의 40대와 아들의 40대는 서로 만날 수 없다.


지구에서 모든 삶은 생애 주기로 인해 탄생하면 소멸에 이른다. 無에서 시작한 삶은 無로 돌아간다.

시간이란 차원을 넘어서는 것
사랑 그리고 기록

우리는 기억한다. 어제, 그제 그리고 이전의 일들을. 그중에서 사랑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속에 고이고이 남는다. 그리고 즐거웠던, 행복했던, 아팠던 그 무엇이었던 '사랑'이란 존재는 우리를 과거의 기쁨, 고통, 슬픔 속으로 끌고 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내 상태와는 전혀 상관없이. 심지어 어떤 이는 과거의 사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현재를 망치기도 하고, 어긋난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생을 마감하면서 시공간을 바꾸려고 한다. 사랑의 상처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영화에서도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시공간 개념을 뛰어넘어 인류를 구할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되고, 인류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은 브랜드(앤 해서웨이)의 자신의 직감(사랑)이 맞았다.

그리고 기록... 아버지 쿠퍼는 딸 머피에게 모스 부호를 통해 블랙홀의 정보를 전달하고 머피는 인류를 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이 가능했던 것도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아버지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집과 땅, 아버지가 물려준 트럭을 지키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스 부호를 난 '기록'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과거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이제 없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기록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토대로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어서다. 결국 시공간을 뛰어넘는 또 다른 존재는 '기록'인 셈이다.

아버지인 나와 아들을 이어 줄 존재
브런치의 기록

이번 '인터스텔라'를 보며 느낀 것은 '더 열심히 기록해야겠다'다. 나의 삶에 대해 말이다. 나는 언젠가 소멸하게 될 것이지만, 나의 글은 영원히 남아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떠돌아다닐 것이다. 어쩌면 나란 육체는 사라졌지만 내 정신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살아 숨 쉬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부모가 되어 늘 고민하는 것은 아들이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나은 꿈을 꿨으면 한다. 그렇기에 미리 10대, 20대, 30대, 40대를 겪으면서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언젠간 내 아들도 아빠인 내가 고민한 것들을 동일하게 고민할 시기가 올 것이라 생각해서다. 내가 고민했던 것들에 대해 고민할 때 아빠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이유를 찬찬히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결과에 대한 것들은 이미 어릴 적 지켜봤을 테니 말이다.


내 바람은 마치 아들이 나중에 커서 나와 대화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여기에 쓴 글들이 대신해서 아들의 삶에 길잡이가 되어주길 하는 마음이다. 아들을 위로해줬으면 하고 격려해줬으면 한다.


그렇기에 어린 아들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는 내용, 그와 함께 하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이 공간에 적어 내려 가는 것이다.

마흔이 넘어서야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영화 속 머피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자신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그리고 아버지가 그들에게 무언가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제 일흔이 넘은 아버지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미워했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해서다. 지금은 아버지의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 무엇보다 건강이 점점 쇠약해지시는 걸 보면 더 건강하지 못하신 게 속상할 뿐이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외로웠을 아버지... 그 외로움이 내게 투영됐을 때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외로웠던 뒷모습이 떠올랐다.


언젠가 아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때 아들의 나이가 마흔이라면 어쩌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느낌을 시공간을 뛰어넘어 같이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글을 남긴다.

- 2020.04.25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이 어려워졌고 우리는 요즘 공상과학영화를 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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