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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r 16. 2021

#2. 정의란 무엇일까

[광화문덕시즌2 : 나를 찾아서]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형님! 여기로 오시면 돼요

여전히 젊은 친구들로 붐비는 곳. 건대역. 어쩌다 보니 여기로까지 오게 됐다. 오늘 만난 분들은 어느덧 알게 된 지 10년 여가 된 분들이다. 나의 30대 한창 건방졌던(?) 시기에 알게 돼 이제 나는 마흔 중반으로, 형님들은 50대가 되셨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지금은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진 우리. 우리는 코로나19로 만남을 연기하다가 4개월 만에 더 이상 미루면 올해가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일정을 맞췄다.


본능적으로 건대역 2번 출구로 나온 우리.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은 우리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였다. 이제 우리도 그런 나이가 된 거겠지.


그러다 우리는 경성주막 1929 가게로 들어갔다. 이곳을 특별히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맛집'을 검색하면 젊은 연인들이나 갈법한 곳이 나오고, 아저씨들이 저녁 술자리를 할 곳은 나오지 않아 발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주하게 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일반 호프집은 너무 뻔한 것 같아서 망설여졌으나, '경성주막 1929'란 이름을 내건 가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내가 누군가 광화문덕 아니었던가. 

지문 인식이 안돼요

가게 입구 앞에 젊은 이들이 카운터 앞에 줄 서 있었다. 


'여긴 일찍부터 먹고 가는 친구들이구나'


나는 그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되냐고 물었다.


"잠시만요 민증(주민등록증) 검사하고 앉으셔야 해요"


나는 귀를 의심했지만, 그랬다. 카운터 앞에 줄 수 있었던 이들은 주민등록증 검사를 위해 입장 대기하고 있었던 이들이었다.


맨 앞에 있던 4명 중 한 명이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좀 들어보니, 신분증은 내놓았으나 지문인증에 실패해 이들 일행은 입장이 보류된 것이었다.


카운터에 선 직원분(?)의 태도는 단호했다. 지문인증을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 입장시킬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었다.


결국 그들은 신분증은 통과했으나 지문인증이 실패해 뒤로 밀리고 나서야 우리 일행은 20여 년 만에 주민등록증 꺼내 보인 후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심지어 주민등록증을 보여드렸으나, 마스크를 내리고 신분증 속 사진과 실제 얼굴을 꼼꼼히 확인하신 후에 자리로 안내됐다.

소주 한 병만 시키자

나는 너무 배가 고팠다. 요새 운동해서 식욕이 왕성해진 탓도 있다. 


"형님 배고파요. 안주 많이 시키죠"


여긴 모둠꼬치가 있었고 명란 계란말이도 있었다. 일단 끼니가 될만한 것들이라 생각돼 시켰다. 그리고 분명 오늘 콘셉트는 저녁 먹고 청계천을 따라 걸으며 회포를 풀자고 이야기를 하고 왔지만, 역시나 우리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안주가 나오기 전에 소주 한 병이 먼저 나왔다.


조심스럽게 소주를 첨잔 하며 형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모둠꼬치는 금방 동이 났다. 철판 곱창 야채볶음(?) 같은 것을 추가로 시켰다. 이 역시도 금방 사라졌다. 떡볶이도 시켰다. 또 사라졌다. 어느새 소주는 2병. 그리고 우린 각 1병이라고 약속하고 마지막 1병을 더 주문했다. 그런데도 난 너무 배가 고팠고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주문했다.


저는 요즘
제 자신에 대해 알아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형님과 그동안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우리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우리는 30대 시절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30대의 나가 지금의 나를 봤다면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내 현재의 모습에 대해서 말야"


"형님 저도 그래요. 저도 그때에는 제가 직장인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오죽했으면 전 절대로 기업인은 되지 않을 거야라고 호언장담하고 다녔는걸요"


형님 우리 8시까지 마시고
1시간 걸을까요?

이날 우리는 우리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가슴속에 있던 나를 소환하기도 했고, 지금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술은 우리의 목마름을 적셔주는 존재였다고 할까.


그렇게 각 1병씩 마신 뒤 우리는 쿨하게 8시에 가게를 나왔다. 계산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많은 안주를 먹었음에도 8만 2천 원이라니... 역시 대학가라서 가성비가 정말 좋은 가게란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주문했기에 10만 원 정도는 나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린 건대역에서 군자역까지 쭉 걸었다. 과거 우리의 30대 때 생각했던 '정의'와 지금 40대 50대가 되어 생각하는 '정의', 그리고 2021년 현재 '정의'에 대해서 말이다.


10년 전 정의를 외치던 이들 중 누군가는 나랏님들이 되셨고 누군가는 이제 은퇴해 평범한 삶을 가꾸고 계시기도 한다. 우리는 직장인이 되었고 말이다.

형님
저녁 먹고 이렇게 걸으니
정말 좋은데요

건대역에서 군자역까지 쭉 걸으니 33분이 걸렸다. 8시 33분에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우린 군자역에서 다시 건대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나눴다. 그리고 같이 다짐했다.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을 거라고 말이다. 나를 위해, 가정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바람이 불어 다소 쌀쌀하지만, 내 몸안에 흘러들어 간 알코올이 내 몸을 데워주고 있다. 외롭지 않다. 함께 동행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는 이가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늙어가는 것도, 이렇게 함께 늙어가는 이가 있다는 것이 감사한 밤이다. 


귓가에 아주 어릴 적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가 흐른다. 지금 형님들과 함께 걷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흥얼거려본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저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길은 험하고 비바람 거세도
서로를 위하며
눈보라 속에도 손목을 꼭 잡고
따스한 온기를 나누리
이 세상 모든 것
내 곁에서 멀어져 가도
언제나 언제까지나
너만은 내게 남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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