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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r 17. 2021

#3. 대꾸할 가치도 없어

[광화문덕 시즌2: 나를 찾아서]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

어디니?

"재택이에요. 선배 있는 곳에 도착하면 12시가 넘을 것 같은데 괜찮아요?"


"너무 늦어. 안돼. 그냥 내가 너 가까운 곳으로 갈게. 어디가 편해?"


"공덕역이면 10분 정도면 갈 수 있어요"


"그래 공덕에서 보자"

어디냐?
나 공덕역 도착했다

"저 이제 씻고 나왔어요"


"아니 10분이면 도착한다던 아이는 어디 간 거냐?"


"왜 이렇게 빨리 도착했어요?"


'엥?????'

어디여?

"지금 가고 있어요"


"야 추워!!!!!!!!!!! 빨리 와!!!!"


그렇게 30분가량 기다린 뒤 캐러와 상봉했다. 그리고 우린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엔 쌀국수부터 일식, 한식까지 다양한 메뉴의 식당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뭐 먹을까?

"글쎄요"


"참치회 먹을래? 아니면 부대찌개? 낙지? 그래 낙지 어때?"


"그럼 여기 가보고 사람 많으면 다른데 가요"


이런 소쿠리 같은 놈.... So Cooooooooool;;;;;;


그렇게 우리가 들어간 곳은 김명자 낙지마당이었다. QR체크인을 하고 우리는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낙지볶음 2인분 주세요"

아 매워 아 매워

보통 맛으로 주문했음에도 내 혀에는 불이 나고 있었다. 입안에 불이 나니 나의 말은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요즘 뭐 재미난 일 없어?"


"없어요"


"회사는?"


"글쎄요"


"좋은 일은 없고?"


"없어요"


아놔 이런... 질문을 했는데 단답으로 끝나니. 말이 뚝뚝 끊긴다. 마른국수 가락이 톡톡 끊어지듯이.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이거 왜 이렇게 맵냐? 너는 맵지 않니? 나만 매운 거니?" 등등 연신 질문을 쏟아부었고, 결국 캐러다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매콤한 맛에 입안 구석구석에 점령당하자 난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하... 매워... 하... 매워

캐러는 휴대폰 속 라오킹을 유유히 즐기고 있었다. 나는 맵다고 말하면서도 낙지볶음에 비빈 빨간 밥을 입안으로 집어넣고 있다. 맵지만 그 매움이 식욕을 자극하니 또 넣게 되고 그럼 또 맵고... 그럼에도 또 식욕이 자극되어 또 먹고... 더 맵고... 하............ '나는 광화문덕이다'.....


낙지볶음과 함께 나온 계란찜을 낙지볶음과 밥을 비빈 그릇에 듬뿍 넣었다. 입안의 열기가 좀 잡혔고 난 다시 말을 걸었다.


"다음 달에 나가이써님과 류둥이들 보기로 한 날에 그냥 맛있는 거 먹고 남산 산책하는 거 어때?"


"매번 술만 마시면 별로잖아. 맛있는 저녁 먹고 걸으면서 대화도 나누고. 건강해지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아. 어때?"


대답이 없다. 연다라 말을 걸었는데 말이 없다. 다시 물었다.


"어때? 네 생각은?"


또 대답이 없다. 그래서 물었다. 아주 나긋나긋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왜 대답이 없뉘?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답한다.


"아니 그거에 대해서 별로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질문이 너무 많아요. 말이 너무 많아서 뭘 물어보는지 모르겠어요"


"엥??? 아니 어때라고 말하면서 말끝을 올렸잖어. 그럼 물어본 거고. 어때라고 하면서 말끝을 내리면 안 물어본 거지"


"선배는 말이 너무 많아요"

유레카!!!
아하! 그렇구나!

그렇다.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둘이서 마주하고 있을 때 대화가 없는 침묵의 시간은 내게 너무 힘든 순간이다. 어색함보다는 헛소리라도 해서라도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나의 아재력은 바로 이러한 나의 말하길 좋아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고마워! 덕분에 오늘 나를 알게 됐네. 맞아 난 말하는 것을 좋아해"


"대꾸할 가치도 없어"


역시 캐러는 내게 좋은 후배다. 늘 내게 직언을 하고 내 비위 따위는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소신껏 내게 말하고 나는 그의 소신발언을 존중한다. 그리고 우리는 티격태격 퉁퉁거리듯 말들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고 늙어가고 있다.


"선배 제가 30분 늦었으니 점심은 제가 살게요"


그리고 속도 깊다. 굳이 자신이 늦었다는 것을 리마인드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매콤함이 매력적이지만,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내게는 보통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곳에서 나에 대해 알게 돼 기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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