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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pr 15. 2021

#4. "먼저 연락하면 안 됐니?"

[광화문덕 시즌2 : 나를 찾아서] 나는 응원하는 걸 좋아한다

내일 벙개 가능하신지?

반가운 메시지가 왔다. 어둠 속을 헤매며 삶과 죽음 사이에 외줄타기를 하던 그때 기적적으로 날 살려준 분의 벙개 메시지다.


"그럼요! 약속이 있더라도 무조건 달려가야죠!!!"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새로운 회사로 옮기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리가 잡히면 연락 주시겠다고 하셨던 터라, 참 오랜만에 뵙는 자리다.


오랜만에 뵙는 터라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소주병이 늘어날수록 형님의 마음속 무거움이 느껴졌다.


"형님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끝까지 버티셔야 해요"


형님께 주절주절 말씀드리는 것보다 이 말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형님을 걱정해드린다고 말씀드리다가 자칫 형님의 자존심에 상처를 드릴까 걱정이 돼서다.


"응 그래야지. 그래야지"


"형님 오늘 점심에는 최근에 알게 된 저보다 25살이나 많으신 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분은 마주 앉아있으면 전혀 60대 후반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세요. 그리고 그동안의 살아오시면서 보고 듣고 깨달은 수많은 삶의 경험들이 있으셔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유연하신 것 같고요


무엇보다 저는 그분을 만날 때마다 나도 저렇게 열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생기기도 해요


형님 이제 50대시고, 건강만 잘 챙기신다면 60 이후에도 저희는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형님 전 요새 운동을 해요. 마음이 지치면 몸이 게을러지게 되고, 그럼 마음은 더 퍼지고 악순환의 연속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친 마음을 응원하는 방법으로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하면 마음이 어느 순간 힘이 나더라구요. 선순환이 된다고 할까요. 형님 마음이 잠시 지쳤다고 떼를 쓰나요? 그럼 맨손체조로 마음을 다독여보세요. 무릎관절은 상하면 회복이 안되니 꼭 조심하시구요"


"그래그래 그래볼게. 오늘 만나니 참 좋네"


"제 생명의 은인이시잖아요. 언제든 연락 주세요. 오늘 연락 너무 오랜만에 주셨어요"


형님께 왜 이렇게 늦게 연락주셨냐고 더 자주 연락 주시라고 투정을 부렸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받고 난 이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꼭 내가 먼저 연락해야지 보는 거야? 네가 먼저 연락 주면 안 됐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변한 걸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좀 살만해서였을까. 술을 좀 덜 마시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어서였을까. 나는 사실 술 마시다가 형님께 늦은 시간에도 자주 연락드리곤 했고, 실제로 늦은 시간 술 마시다가 2차나 3차에서 만나기도 자주 했다. 형님은 늘 내가 밤에 전화드리면 자리를 파하고 늘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셨던 분이었다.


형님이 그동안 외로우셨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더 자주 연락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술이 취해 연락드린 것이 늘 실수했던 것이라고 자책하던 나였지만, 형님은 그런 내 모습까지도 좋게 보아주셨던 것이었다.


"형님 건강하셔야 해요. 저는 형님과 오래오래 이렇게 저녁자리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녁에 술 한잔 하다가 생각나면 주저하지 않고 이제 마구마구 연락드리겠습니다"


"ㅎㅎㅎ 그래그래. 언제든 연락 줘"


형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9시가 넘었고 우리 옆에 소주병은 10병이 넘어섰다......


(페이드아웃......)


우에에에에엑

눈을 떠보니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온몸이 술에 절인 듯하다. 어째 들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출근해야 하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형님은 어제 그렇게 마시고도 아침 일찍 출근을 마치신듯했다. 그리고 아침 인사도 잊지 않으셨다.


"덕분에 많이 웃었네

오늘도 힘찬 하루 보내시기를"


비록 난 시체놀이 중이지만, 형님이 기분 좋아 보이셔서 너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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