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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Sep 13. 2021

#7. 행복 찾기란 어리석음

[광화문덕 시즌2 : 나를 찾아서] 행복은 만들어가는 거야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술에 만취해 블랙아웃이 되면 내 안의 거칠고 결핍 가득한 가 나온다.


만취한 날, 나와 함께 한 상대가 내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면 내 안의 이성으로 꽉 잡고 있던 나는 와르르 무너져 버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내 안의 그를 불러내어 그 녀석을 위로해준다면서 저녁 자리를 즐겼던 것 같다.


그렇게 관심과 동정을 구걸하며 주변 사람들에 기대어 행복함을 누리고 싶다고 미친 사람처럼 굴던 때가 불과 얼마 전까지 그랬음을 고백하고 회개한다.


시련을 통해 얻은 또 한 번의 깨달음

그러다 혹독한 또 한 번의 시련을 겪고.. 내 모든 걸 잃어버릴 벼랑 끝에 내몰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살고 나니... 내가 서 있는 곳은 변함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 한 번 바뀌었다.


하나님은 늘 내게 혹독한 시련을 주시고 그것을 계기로 나를 성장시키신다. 지옥 같은 날들 속에서 믿음을 회복하고 난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숨 막히는 1분 1초였지만 결국 하나님과 그를 믿고 의지하는 이를 통해 구원받았고 하나님과 그에게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올렸다. 끊임없이 올릴 것이다

행복은 찾을 수 없어

폭풍우 속에서, 돌풍이 부는 한가운데에 위태롭게 서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탓하기보다 내 허물을 되돌아보려고 애썼다.


내 관념 자체가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 내 삶의 정의가 틀렸던 것이다.


지난날 게 '행복하다'의 정의는 타인에 의해 규정됐다. 타인과 함께 하면서 타인이 행복함을 느끼면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쁨으로 난 정의 내렸고, 행복을 느끼며 내게 그 행복이란 감정을 공유해줄 이를 찾아다녔다. 구걸하듯 말이다.


또 하나, 난 가정 안에서 나의 행동들을 기쁨으로 여기지 못하고 노동으로 인식했던 점을 반성한다.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그런 가사에는 동참했으나 그걸 난 기쁜 마음으로 하지 못했고 그런 가사와 육아를 하면서 노동이라 생각해 늘 가족에게 피곤함을 호소하려 했다.


나는 늘 외톨이야란 피해의식

아내와 아들이 일상을 공유하며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 시기와 질투만 할 줄 알았지, 그들과의 일상 공유에 동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늘 가정에서 정해진 단순 가사 및 육아만 하는 데 그쳤고 늘 수동적이었으면서 나만 소외당하고 있어 외롭다는 바보 같은 피해의식 속에 갇혀 살았다.


난 그걸 핑계 삼아 스스로 내가 바깥으로 돌 수밖에 없는 구실로 활용하며 스스로 합리화하려고 했다.


집에 있으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게임 속에 빠져있는 시간도 많았음도 회개한다.


난 그야말로 행동과는 다른 말로 동정을 구걸하고 다녔다. 행복하고 싶다고... 내가 마치 내 삶을 모두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말하고 다녔만... 행복을 찾겠다는 말만 했지 나의 행동은 행복과는 먼 것들이었다.

바보야 행복은 없어

행복은 없다.

실체가 있어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찾는 게 아니다.


게 내가 깨달은 바다.


행복하다는 감정은 내가 만드는 거다.

내가 희생과 헌신을 통해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가족을 위해 여행 계획을 세우고 가족이 바라는 것들을 이야기할 때 귀담아듣고 그것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노력하고... 이런 일련의 행동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면 내가 동정을 구걸하지 않아도 내게 가장 가까운 이들인 아내와 아들이 내게 관심을 주고 나를 바라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극히 단순한 삶의 이치인데 난 그동안 왜 그토록 간과했던 것일까.


행복은 내게 달렸다.

이 마음을 먹으니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시작은 소리였고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발전시켰다.

난 늘 누군가가 필요했고
내가 특별하다고 하는 이들의 말과 눈빛에
행복하다고 느꼈다.

난 늘 특별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룰을 벗어나도 된다고 생각했다.

술에 숨어서
욕심을 채웠음을 고백한다.

2주간 혼자서 보내는 시간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다시 살아가니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부패한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은 난 부패했었다.
다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을 시작하니
마음이 가볍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우악한 영에게
나를 뺏기지 않도록 기도하며 나아갈 것이다.


*또다시 내가 주변에 기대어 관심과 사랑을 구걸하는 괴물로 변하는 때가 올까 두려워 지금의 깨달음을 두고두고 새겨놓고 보고자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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