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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Oct 03. 2021

#9. 완전 새로운 건 없을지 몰라

[광화문덕 시즌2: 나를 찾아서] 나는 관심받는 것을 좋아한다

커피 한 잔 마시러 갔다가
4차를 넘어 기억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늘 데자뷔처럼 반복된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오리엔테이션 대면식을 위한 삼겹살 집에서 인생 처음으로 접한 술..... 덕택에(?) 당시 공대에서 학교 앞 술이란 술을 흡수하듯 마시는 걸 자랑으로 여기시던 주당 선배님들께, 나의 싱싱한 간이 소화해내는 알코올 분해능력은 가히 이뻐할 만한 특별한 능력이시렸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99년도... 나는 술을 잘 마시려 부단히 애썼던 것 같다. 당시 내 몸무게는 57kg으로 뼈만 앙상한 정말 마른 몸의 소유자였다. 내 생간은 알코올을 순식간에 분해시켰지만 문제는 내 몸속 물이 알코올로 대체되면 다리가 풀리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술 취한 이후 다리 풀림은 나를 주당 선배님들 사이에서 더욱 귀요미(?)로 만들어줬고 나의 관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고, 부끄러움이 많아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꺼려했던 나인데... 대학 입학 후 술님을 만난 나는 객기가 넘치는 사람이 됐다. 20대와 30대에는 그런 내 모습들이 괜찮았다 생각이 들었지만 40대가 되니 좀 부담스러워졌다. 기억력은 날이 갈수록 쇠퇴하고 있고, 내 간도 이제 예전 같지 않아서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자기 관리를 한다고 해도 술 앞에서 장사 없다. 정신력이 술을 이길 수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어제는 반나절을 누워있었다. 아주 고통스럽게 말이다. 온몸은 술떡이 되어 내 몸을 가눌 힘조차 없고 내장에서는 알코올이 마비시켜놓은 장기들이 '이렇게는 못 산다'는 냥 파업에 돌입했다.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물을 마시기 위해 조금 걸으려 하면 어지러움으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하지만 어제 열 일 한 위와 간은 쏟아낼 게 없다며 내게 거친 야유를 쏟아붓는다.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내 입을 통해 하나님께 내 조절하지 못했음을 사죄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린다. 변기를 부여잡은 체.....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휴일 중 하루
이대로는 버릴 수 없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소중한 휴일... 분명 휴일에는 내가 중심이 되어 가족의 행복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이렇게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는 나... 일어나려고 애썼다... 편의점에 가서 여명을 사서 내 몸속 밝은 빛을 찾아주길 바랐지만... "택도 없다" 여명은 내게 말하는 듯싶었다.


내 해장 종목인 콜라를 1.5L 사서 들이키려 했지만, 이마저도 실패다. 얼마 먹지도 못하고 버렸다...


자... 이제 남은 건 정신력뿐이다.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화장실로... 이러길..... 수십 차례..... 아들이 짜장면이 먹고 싶다 하여 '그래 짬뽕은 나를 구해줄 거야'란 생각에 식사를 결제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저를 구해주세요'


짬뽕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며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지만.... 벌을 받은 것일까... 아침 수차례 기워냄으로 인해 예민해져 있는 식도와 위가 자극적이고 뜨거운 짬뽕 국물을 받자마자 욕을 내뱉었다. '이게 진짜 제정신이냐'라고 말이다.


짬뽕을 먹으려다 오히려 내장 기관에 상처를 준 것 같아... 다시 방으로 기어들어가 누웠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뜨니 벌써 1시간이 지났다. 정신은 조금 맑아졌고 몸도 좀 전 보다 나았다. 아니 그냥 기어 다니는데... 조금 아주 조금... 더 잘 기어 다닌다는 느낌 정도...

아들 나가자!

그래 이 정도라면 적어도 아들과 전시장 정도는 소화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 서울시립과학관 가고 싶어!"


아들은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고 먹고 싶은 것도 확실해서 좋다. 나와는 참 다르다. 아내님이 아들을 잘 키우고 계신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 가자 가자!"


차에 올라탔다. 늘 타던 차인데... 운전석이 이상하다. 너무 넓다고 느껴진다. 시동을 켜려고 했지만 운전할 자신이 없다. 1차 시도.... 실패...


아들을 잘 설득하고 집으로 축 처진 몸을 겨우겨우 이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누웠다....


"아빠 가야지! 가야지!"


내가 잠시 잠든 것이다. '가야지 가야 한다'. 이제 정말 오후가 됐다. 소중한 휴일을 오전을 멍하니 날려버렸다. 나로 인해 가족의 소중한 오전도 날아갔다.


일어나니 이제 내 소중한 장기들이 파업 철회를 선언하고 조금씩 내장기관 가동을 시작한 듯 보였다. 머리는 좀 더 맑아졌으며 움직임도 이제는 아주 느리게 걸을 수 있다.

안녕 벤츠!
서울시립과학관으로 가줘

"아빠 기다려봐 내게 최신형 내비게이션이 있어!"


순간 애가 뭔 소리하나 싶어 쳐다보니....


"캭 퉤~~~!!!"


침을 지 손에 뱉더니 손바닥 위에 침을 내리친다. TV에서 허재 아저씨가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셨다고....


"으악 더러워!!! 뭐야..."라고 말은 했지만 아들의 귀여운 행동으로 우리 둘은 함박웃음을 지었고 내장기관도 아들의 애교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장기관을 조금 더 빠르게 가동해줬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서울시립과학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프린팅이라 한 컷!

'모든 사물의 역사' 전시
진행 중

나는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만들어진 이유 망가진 이유 등등... 나 역시도 그렇다. 오늘 몸이 이렇게 된 이유, 그럼에도 어제의 자리가 너무도 의미 있었고 함께한 분들과 내 인생의 또 다른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었다는 것에도 감사할 따름이다.


하나님께서는
내 발걸음이 닿는 곳에
내가 가야 하는 이유가 있기에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광화문덕으로 살 길 바라는 이유 역시 그렇다. 실수투성이고 매일매일 깨달으며 조금씩 나아가는 삶이지만... 이 역시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살아가고 있다.

체중계와 시계, 자물쇠, 칼, 화장지, 다리미와 토스트 기계, 드라이기와 에어프라이어 등등 연결고리가 많았다. 아이디어가 더해져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시작이 중요하다. 시작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었던 것이리라...

입장료 성인 2,000원 초등생 1,000원 주차비는 1시간에 대략 1,800원...


이곳은 입장료와 주차비를 받는다. 하지만 매번 올 때마다 감사한 것은 이곳은 매번 진화하고 있다. 재투자가 이뤄진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져서다. 늘 같은 공간이 아닌 매번 올 때마다 새롭다고 느껴져서 입장료와 주차료를 지불하는 것이 아깝지 않은 느낌이다. 기꺼이 매번 지불할 용의가 있다.

만신창이가 된 나를
적외선 카메라가 저래 찍어놨다...
천리안....
대학시절 나를 떠올리게 한 이름...

옛 대학시절 20살 때로 나를 소환한 것이 바로 이 컴퓨터다. 컴퓨터공학도였던 나는 당시 우리가 듣는 전공수업용 컴퓨터가 있었고, 선생님 몰래 채팅하고 벙개를 잡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고 인터넷이란 것이 보편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사람을 만난다는 게 아주 당연시되지만, 당시에는 아주 기발했고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아이템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뤄지고 있는 모든 서비스의 기본은 바로 천리안 채팅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짐작해본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예쁘게 포장된 것이고 여기에 소소한 아이디어가 보태어진 것이니 말이다. 기본은 천리안, 나우누리 등으로부터 시작됐음에 분명하다.

2시간 여 동안 아들을 쫓아다니느라 온몸에 힘이 쏙 빠져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오늘을 알차게 의미 있게 보내야만 한다...


집에선 아내가 낮잠을 주무시고 계신다. 지금쯤 일어났을 텐데... 어디를 가야 한다...


'아 맞다 아내가 나비정원에 가고 싶다고 얼핏 들은 것 같다'

불암산 나비정원

이곳에는 커피숍도 있고 가족끼리 걸을 수 있는 산책로도 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모래사장과 개울도 있다. 아들은 모래 놀이하는 걸 참 좋아한다. 아내는 맑은 산 공기를 맡으며 산책하거나, 모래 놀이하는 아들을 보며 쉬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날을 대비해 캠핑의자도 하나 구해놓은 게 있다.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그 앞에 캠핑 의자를 펼쳐놓았다. 아내는 여유롭게 쉬고 있고 아들과 나는 모래놀이를 시작한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아들이 선을 그으면 나는 물길을 만든다. 아들은 원하는 깊이로 더 파고 난 물을 길어온다. 내가 물을 길어오면 아들은 물길을 다듬고 아들이 물을 가지러 가면 나는 좀 쉰다 ㅋㅋㅋ 그런 나를 보고 아들은 외친다!


"아빠 쉬면 안 돼! 보수공사를 진행해야지!"


놀다가 파다가 하길 2시간 여가 지나 만든 우리의 작품! 아들은 꼼꼼하게 잘 찍어달라고 연신 나를 쪼아댄다. 하지만 그런 아들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이제 어둠이 찾아든다

오후를 잘 보낸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내 마음에 깃들었다. 오늘을 잘 산 것 같다.

나는 관심받는 걸 좋아한다

사람 사이에서도 가족에게서도 그렇다. 나로 인해 우리 가족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 내 주변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부끄럼 많던 10대의 나는 사라지고 지금은 관종인 내가 되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50대와 60대의 나는 어떤 모습이 될지, 어떤 성향의 사람으로 변해있을지...


관종이라 사람에 웃고 사람에 울고 하지만, 지금 내가 실수만 줄일 수 있다면 관종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휴일에 가족의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나는...
비록 내 몸은 만신창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노력할 수 있는 건....
내가 가족의 관심을 먹고사는 관종이어서 가능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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