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말다툼도 대화잖아"

이렇게 서로를 알아나갈 수 있다면 말다툼도 좋아

by 광화문덕
지이이잉 지이이잉

오후 6시 10분. 퇴근길 만원 지하철 속 끼여있는 내게 온 전화. 아내님의 번호가 떴다.


반가운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교차하며 전화를 받았다.


"분리수거할 때 옆에 있던 신발 같이 버린 거야?"


"응..."

"깨끗하게 씻어서 말리려고 올려놓았던 건데 버리면 어떡해!"


"아니... 난 평소 거기에 있는 건 버리라고 놓는 건 줄 알고...."


"아니 그러니까 그건 신발을 씻어서 말리려고 올려놓은 거였다니까..."


"이미 버린 걸 다시 찾아올 수도 없는데... 이미 버려버린 걸 어떡해...."


"앞으로는 주의해달라고"


"응 알았어..."


이렇게 짧은 대화는 끊어졌다...


대화가 필요한 우리

나는 억울했다. 분리수거를 한 내 행동으로 신발이 버려졌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들의 신발을 버려진 것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내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집에 들어와 억울함을 표했다. 사실 좀 거칠었을 수 있다. 항의의 표시이니. 큰소리를 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톤 앤 매너가 친절하지 않았다.


안부 전화 몰라?

매번 전화할 때마다 "언제 들어와? 어디야?" 이런 이야기가 아닌 늘 지적사항을 받들어 모시니 나도 이제는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다 내가 이 가정 안에서 사는 것이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가 것 같았다.


나의 항변에 아내는 나를 안방으로 소환했다. 그리고 우린 마주 앉아 서로의 입장을 거칠게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억울한 부분을 말했고,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우린 서로 평행선을 긋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대화가 아닌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뱉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아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미안해 조심할게"였음을 알게 됐다.


난 아내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면 대화의 흐름이


"(아내) 버리면 어떡해?=>(나) 버리라고 둔 줄 알았어=>(아내) 씻어서 말려둔 거였어 앞으로 조심해줘=>(나)어 알았어 미안해"


이렇게 됐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당신은 왜 미안해란 말을 절대 안 하면서 나한테는 늘 미안하다고 강요하는데'라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면 아마 감정은 더욱 악화됐을 것이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서로 쌓인 것을 이야기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대화를 통해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기 위함이니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현재 대화 속에서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아내는 자신이 내 말에 대답을 했던 것이고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설명을 한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 감정이 서로 어느 정도 상한 상태라 서로 쉽게 화해할 수 있는 건이었지만 우린 서로 고집을 숙이지 않고 서로의 입장을 상대에게 주지시키려 했다.


난 당신의 전화가
반가운 존재가 되길 바라

내가 이야기의 주제를 확장시켰다. 너무 미시적인 이야기만으로는 대화의 평행선을 좁히지 못할 것 같았다.


최근 전화 온 횟수가 적기도 하지만 전화 한 그때마다 아내가 내게 한 이야기에 대해서 말했다.


아침에 잘못한 행동에 대한 지적, 기분 나쁨에 대한 항의 등이었다고.


물론 이 순간에도 아내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차리려고 했다.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가정 안에서 웃으며 살고 싶다는 이야기도 보탰다.

실제로 아내가 나랑 결혼해서 나를 많이 닮아가서 속상한 부분이 있다. 원래는 여리고 여린 아내였고 화 한 번도 내지 못하고 늘 닭똥 같던 눈물만 흘리던 여인이었는데 나랑 살면서 내가 상처를 많이 줬고 내가 아내의 신뢰를 갉아먹는 행동을 한 탓에 약 10년이 지난 지금 아내의 마음은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건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난 지금 억울하고 속상하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이고 악한 존재이니 말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사실 이 글도 내 중심의 사고를 바탕으로 적고 있는 글이니 나 역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나만의 행복 즐거움을 추구하는 한 인간일 뿐임을 고백한다
아내의 말투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다

거친 항의가 아닌 단어에 조금 더 신경 쓰고 상대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닌 대화에서 우리가 사이가 더 좋아지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려 애쓰며 말을 건넸다.


내 노력을 아내의 마음이 알아줬을 것일까.


아내의 말투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자신도 깨달은 게 있는지 아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하고 있었다.


"요새 직장에서 업무가 많았어. 야근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들 하교 시간이니 일도 다 못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고, 집에 들어와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아들 밥 먹일 준비하고, 그렇게 요새 지내고 있었어. 그렇다 보니 나도 과부하가 걸렸나 봐.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오랜만에 대화네

시작은 다툼으로 평생선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참 기쁘다. 오랜만에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한 것 같아서다.


그동안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찬바람이 쌩 불거나, 짧은 인사만 오고 간 것이 끝이었는데 참 오랜만에 서로 일상을 공유했다.


"나는 요새 블라블라 블라...."


대화하고 싶은 내 입이 터지려는 찰나...


"나는 꼭 필요한 말만 해도 너무 힘들어. 하루 종일 말을 해야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


여전히 찬바람이 불긴하지만... 내 마음 속엔 어느덧 차가움은 사라지고 온기가 싹트고 있었다.


"그래도 난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오늘이 참 좋네"


이렇게 우리의 말다툼은... 시작은 싸늘했으나 마지막은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엄마 아빠
약속 어겼어!!!

아내와 난 아들에게 소환당하는 신세가 됐다. 아들에게 다투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혼쭐이 났다.


아들이 이제 점점 커가고 있다. 자기 생각도 또렷해지고 있고 가정 안에서 아들의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는 중이다.


엄마와 아빠의 분쟁 속 중재 역할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중립국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아내가 아들을 그동안 참 반듯하게 잘 키워준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다"


말다툼도 대화였다
훈훈한 마무리가 된다면
이또한 감사한 일이다

연인들처럼 달달한 대화는 아니더라도 서로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를 한 지 참 오랜만이다.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그런 대화가 반복되다 보니 서로 이야기하는 재미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내 경우에는... 마음의 감기 시절 직장 생활에 대한 즐거운 에피소드가 아닌 푸념, 한탄, 빡침에 대한 이야기를 토로하려고 했으니 아내가 참 많이 힘들고 지쳤을 것이다. 나쁜 이야기를 굳이 집에까지 가져와 나쁜 기운을 가족에게 까지 전달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대화가 그동안 줄어들었던 것은 내 탓이 크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긴 하니 아내를 탓할 수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니 다시 대화의 물꼬를 틔우는 노력도 내 몫인 것이다.


사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참 오랜만에 대화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밤이다. 오늘도 가족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선 기분이랄까.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나은 내가, 우리가, 가족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우리 가족의 훌륭한 버팀목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들이 있어 앞으로 우리 가족의 삶이 더 기대가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