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나라의 어린이?

아들을 재우기 위해 했던 말들을 반성한다

by 광화문덕
우리 부부는 맞벌이다

저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아들과 놀아주다 녹다운이 된 상태다. 난 요리를 하거나, 아들과 놀아주려고 애쓴다.


지쳐 쓰러져 있는 아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그게 최선이다.


하지만, 요즘...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난 후... 내 몸과 마음은 여유가 많이 없어졌다. 그저 집에 돌아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아침에 당직이라도 있는 날에는 자정까지 모니터하다가 3시간 가량 눈을 붙인다. 혹시나 깨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토끼잠을 자기 일쑤다.


아들에게 권하는 '아침형 인간'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아들에게 '아침형 인간'이 될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 논리는 이렇다. 아들이 늦잠을 자게 되면 아침에 늦게 일어나게 된다.


특히 자정이 다 돼서 잠들면, 그 다음날 아내의 아침은 지옥이다. 16kg에 달하는 잠에 취해 있는 아들을 들쳐업고 어린이집까지 뛰어야 하는 일이 일어난다.


아내의 아침을 도와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아들이 깨어나기 한참 전에 출근해서다. 결국 아들의 늦잠은 아내의 아침 컨디션과 직결되는 셈이다.


내 경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쁠 것같다.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시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아침부터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했다면 하루의 컨디션이 안봐도 뻔하다.


이런 일을 몇번 지켜본 뒤로 나는 언젠가부터 아들에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새나라의 어린이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차...

곰곰이 생각했다. '새나라의 어린이'에 대해서 말이다.


'과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강요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온종일 머리 속을 복잡하게 했다.


그러다..... 나름의 답을 찾았다. 아차 싶었다.


어릴 적 들었던 말이 나도 모르게 그게 진리인 양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난 이 말을 어릴 적 수없이 들었다.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엄마도 내게 늘 말씀하셨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도대체 왜 이말이 나왔을까?

머리를 굴렸다. 내 기억을 더듬었다. 왜 이 말을 아이들에게 하게 됐을까? 또는 해야할까?에 대해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내가 태어난 건 1980년. 이 말을 듣고 자란 건 1980년대다. 이 시기는 대한민국이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됐던 때다. 국가의 성장을 위해 국민의 희생이 당연시됐던 때이기도 하다. 일부 사람들은 경제가 성장했다고 말하지만, 난 다르게 본다. 조금 천천히 성장했더라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더 성숙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성장만을 강조하다 보니 우리는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이 너무 유린당했다. 성장이란 미명 하에 말이다.


그 시기에 노동자는 착취 대상이었을 것이다.

산업화 시대
성장 논리의 산물?

'이에 대한 연장선 상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새나라의 어린이다'라는 구호가 나온 것은 아닐까?'


더 많은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산업화의 논리로 말이다.


아침 일찍 공장으로, 일터로 나가야 하는 이들에게 이 구호는 어쩌면 면죄부는 아니었을까.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라야 할 권리가 있는데, 이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기합리화 명분 말이다.


사람마다 바이오리듬이 다른데...

어쩌면 아직까지도 우린 세뇌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더 많이 자신을 위해 쓴다는 것은 좋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아침 시간이 졸립고 무기력해 비생산적일 수도 있다. 충분히 자야 더 많은 생산성을 내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성장에 목말라하고 있다보니 그에 대한 당위성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원래 그런 건 없다

나는 요즘 사소한 것에도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곤 한다. 이 질문에 "원래 그래"라는 답이 나오면 난 갈등한다. 이를 받아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따를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원래 그렇다'는 무비판적 수용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악습은 버려야 한다.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고, 그 편의를 대물림하기 위해 '원래 그래'라는 말로 아랫사람을 찍어눌러 왔다면, 이제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됐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들을 재우면서도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늦게까지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외면한 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새나라의 어린이야"라고 말하는 내 모습을 발견해서다.


오늘은 아들을 바라만 봤다. 그리고 더이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좋은 어린이다"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들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자기합리화에 급급했던 나의 지난 날 모습을 반성했다.


'사실 그게 아닌데.... 내가 편하기 위해 너를 재우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마음 한 쪽에서는 여전히 자기합리화에 대한 변명이 남아있음도 느꼈다.


'너도 커서 아빠가 되면 아빠를 이해해주리라 믿는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