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간직하고픈 오늘의 승리

아들, 삶이 힘겨울 때 2021년 11월 18일 오늘을 기억하렴

by 광화문덕
아들과 난
KT 위즈 팬이다

2017년 우연히 수원 KT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게 됐던 것이 인연이 됐다. 그전까지 야구 등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아들에게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속의 소원(?)을 늘 지니고 있었다.


처음 야구 경기를 관람할 때에는

'응원하는 것이 어색하고...'

'경기 관람하는 데 거리가 멀다 보니

잘 보이지도 않아 집중도 안되고...'

'굳이 TV로 보면 되는 걸 이 먼 거리를 이동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서 고생하나...'

뭐 그런 거부감이 있어서 수동적이었는데...


주변의 권유로 몇 번 현장에서 응원을 하다 보니 야구 직관의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그렇다가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아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나를.... 강제로...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MBC 청룡',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너무도 부러웠던 기억을 소환했고... 나로 하여금 나의 어릴 적 결핍을 아들에게는 대물림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기로 번졌다.


그리고 2018년 당시 난 회사 당직을 마치면 오후 3시에 퇴근할 수 있었는데, 그때면 아들과 함께 수원 KT 위즈 파크 야구장으로 달려갔다.


오후 4시쯤 서울에서 출발하면 6시 반쯤!!! 경기 시작할 즈음 해서 빠듯하게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면사 아들과 나는 선수 입장 소개하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1루 응원석으로 들어가곤 했다.


처음엔 고민했다

4살된 아들에게 어떻게 하면 야구와 친해질 수 있을까를. 나는 바랐다. 야구장 가는 길이 아들에게 축제와도 같은 날이 되길!


그러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아들에게 익숙해지길 바랐다. 그 첫단계로 아들이 KT위즈 응원가와 친해지도록 애썼다. 경기장으로 가는 동안에는 KT WIZ 응원가를 크게 틀어놓고 아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운전했다.


도착해서는 아들의 팔을 잡고 함께 응원율동을 따라했다. 솔직히 나 역시도 응원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부끄러움이 있었지만, 아들의 두 팔을 같이 잡고 치어리더님의 율동을 따라하니 나도 어색함이 덜해서 좋았다. 사실 나도 응원율동을 몰랐어서 틀릴까 두려웠는데 아들과 같이 버벅이니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ㅎㅎㅎ 그렇게 2018년 15경기를 소화하고 나니 아들은 수원 KT위즈 파크로 야구 응원하러 가는 길을 기대하고 즐거워했다.


물론... 당시에는 KT위즈에게 승리란..... (음.. 음... 차마..... 언급하기가.. ㅠ_ㅠ ) 그러하여서 아들과 함께 경기장 오는 즐거움을 찾기 위해 아빠로서 아이디어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에 오는 것이 경기의 승패를 떠나서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잘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응원을 하면서 노래도 듣고 율동도 따라하면서 기분전환하는.... 그런 것들을 통해 야구응원의 즐거움을 찾자는....(KT/한화/LG 팬분들 죄송합니다) 그래서 초기 난 야구장 응원 가는 것을 '아빠와 야외로 소풍가느 길'이라는 콘셉트로 만들었다.


경기장에 오면 드넓은 잔디가 펼쳐져 있고, 맛있는 피자와 콜라, 그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과자인 홈런볼, 포카칩 등 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또한 승리란 것이 가끔 있었다 보니 우리는 우리가 경기 관람을 보러 온 날 승리를 하면 유니폼의 그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와펜을 붙였다.

어느덧 와펜이 너무 많이 붙어서 이 검정 원정 유니폼 외에 새로 하얀색 유니폼을 하나 더 사긴 했다. 그리고 새로운 야구응원복 등판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강백호 선수의 이름을 새겼다.


2018년.... 그렇게 아들과 나의 KT 위즈 팬으로서의 삶은 시작됐다.


2018년에 아들과 소풍간다는 느낌으로 15경기를 응원했고, 2019년에는 시즌권을 구매해서 본격적으로 아들과 야구 응원 취미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기는 여름 시즌 7월과 8월에 있는 KT위즈 워터페스티벌이다. 야구장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다는 발상이 아들에게 너무도 매력적인 아이템임에는 분명하다. 어른인 나도 무더운 여름 날 야구응원을 하면서 맞는 물벼락(?)은 너무도 시원하고 흥미진진하다.

아들과 함께
원정 응원을 다녔던 것 역시
내겐 소중한 추억이다

2018년과 2019년 우리가 관람한 경기는 총 35경기. 우리는 수원 경기뿐 아니라, 원정경기까지 가리지 않고 참여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아빠가 당직 서는 날은 취학 전 아들과 함께 야구장으로 소풍 가는 날이었다.


아들과 나의 기억 속에 잠실, 인천 문학구장, 대전 한화구장에 대한 기억을 써보면 이렇다.


당시 잠실 구장 원정 경기는 너무도 서글펐던 기억이다. 당시에도 두산과의 경기였는데 패배는 뭐 당시에는 당연했던 거라서 크게 신경 안 썼지만, 응원하러 오신 분이 얼마 없어 아들의 기억 속에 잠실 구장은 야구장 편의점에서 사발면을 먹을 수 있어 좋은 곳으로 인식돼 있다.


실제로 아들은 종종 말하곤 한다. "아빠 야구장에서 사발면 먹고 싶어..."라고. 이렇게 말하면 잠실구장에 가고 싶다는 얘기다. 나는 실제로 이후에도 종종 사발면을 먹으러 잠실 구장에 아들과 소풍(?) 다녀오기도 했다.

2018년 5월 찾아간 잠실구장 두산과의 경기 날. 두산의 응원 소리는 위력적이었다


당시 SK 와이번스의 홈구장이었고 지금은 SSG의 홈구장인 인천 문학구장(Incheon SSG Landers Field)에 대한 원정 경기의 느낌은 놀라움이다. 마치 미국 야구장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포토뷰가 가능하고, 외야석에서는 가족이 텐트를 치고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보고 신세계라 생각됐다. 그래서 신세계가 SK 와이번스를 인수한 것일까... 그야말로 캠핑과 야구 관람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곳이었다는 느낌이랄까. 아들의 기억 속에 인천 문학구장은 화장실이 무척 위생적이고 깨끗했던 구장으로 기억돼 있다.


대전 한화구장(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은 KT WIZ 원정대에 당첨이 돼 아들과 KT WIZ 야구단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다녀왔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공간이다. 한화 팬들에게 둘러싸여 굉장한 압박을 받으며 위태롭게 응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대전이 처갓집이고 충청도가 본적이어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여 원정경기 응원을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참여했지만, 다시는 대전으로는 원정경기를 보러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여전하다. 사실 좀 무섭다. 처남이 한화 팬인 건 안 비밀...

한화 팬들의 야구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함성을 현장에서 느끼고 온 날이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2020년 어린이회원권을 결제했지만...
코로나로... 취소...

코로나19 발발로 더 이상 경기 관람을 하지 못하게 됐고, 우리는 지난해에는 야구 경기 응원하던 날들을 그리워해야만 했다.


그리고 2021년 야구 응원이 가능하게 됐지만, 아들의 일정과 나의 일정이 엇갈려 올해 우리는 3번의 경기 관람에 만족해야 했고 올해 마지막 관람이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였다.

올해 4월 말 찾은 KT 위즈 수원구장(수원 KT 위즈 파크)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응원석마저도 과거 시끌벅적했던 때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여서 너무도 속상했다.

더 이상 당직이란 업무가 없어진 새로운 부서에 발령을 받아 지난해부터 일을 하다 보니 올해 3번의 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 주말이나 휴가를 써야 했다. 사실 당직을 설 때에는 공식 퇴근 시간이 오후 3시이니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다녔는데, 요새는 신사업 쪽 업무를 하다 보니 업무가 갑자기 몰아칠 때가 있어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옆에 동료가 일이 몰려 처리하고 있는데 휴가를 나만 내는 것이 좀 미안한 마음도 있기도 하여... 뭐 변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하지만 한국시리즈 경기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침 18일 날이 수능날이어서 아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게 됐고 휴가를 써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KT가 정규리그 우승했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는데 18일에 4차전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떻게든 표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과 난 18일 3연승을 거두고 있는 오늘이 마지막 경기날이 될 수 있는 그런 역사적인 순간에 이곳 고척구장에 발을 내디뎠다.

2018년도 2019년도 아들의 모습과 달리 오늘 이렇게 보니 아들의 모습이 참 성숙해 보인다. 불과 2~3년 전에는 야구경기를 보러 왔다기보다 피자와 콜라 등 소풍 온다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응원도 즐기고 야구 경기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했다.


같이 야구경기를 보면서 O(아웃), S(스트라이크), B(볼), 데드볼, 병살타, 도루, 홈런 등 야구 용어와 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경기를 관람했다.

신나게 야구 응원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가에 맞춰 함께 하는 모습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침묵의 응원이었지만 이 또한 재치 있고 재미난 응원이 가능하도록 비트 배트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들어준 KT 응원단분들 덕택에 아들과 침묵 속 즐거운 응원과 추억을 쌓을 수 있어 너무도 즐거웠다.

드디어 맞이하게 된
9회 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
KT 8: 4 두산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고 숨죽이며 바라봤다.


KT 김재윤 투수의 와인드업... 그리고 던진 공...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고 공은 1루수 쪽으로... 강백호 선수가 바운드해서 오는 공을 잡아 1루 베이스를 밟으며 경기 종료!!!


KT 위즈는 2021년 정규리그 1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랐고,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이스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4전 전승으로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KT 위즈는 2013년 수원을 연고지로 창단해 1군 리그 진입 4년 동안 꼴찌만 3번이나 했지만, 창단 8년 만인 2021년 1군 리그 진입 7 시즌만에 우승을 따냈다.


KT 위즈 팬에게 오늘은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일 것이라 생각된다. 나 역시도 이날을 기억하고 삶의 고단함으로 지칠 때면 이 영상을 보며 '마법 같은 기적'이 바람이 아닌 현실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오늘 KT 위즈가 아들과 내게 주는 의미는 그 무엇보다 남다르다. 우리는 오늘 '마법 같은 기적'을 보았다. 그저 KT 위즈 팬으로서 바라기만 할 수도 있던 희망사항이었을 수도 있었으나 KT 위즈 선수들이 우리의 바람을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마법 같은 기적'을 현실로 보여준 잊지 못할 순간이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아들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고, 집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이 됐다. 지하 주차장엔 차가 만석이라 지하 3층에 겨우 주차했다. 깊게 잠이 든 아들을 들에 업고 관람을 위해 싸갔던 물통과 추울까 봐 챙겨갔던 핫팩 등이 담긴 KT 위즈 백팩을 움켜쥐고 지하 3층에서 계단으로 올라오니 온몸이 뻐근해져 온다. 하지만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하고 아들과 소중한 추억을 하나 만든 것 같아 뿌듯했다.


오늘 야구 관람 티켓은 간직하고 싶어 나만의 비밀 상자에 담아두었다. 나이가 들어 추억을 되새기며 시간을 보내야 할 때 브런치 글을 읽으며 티켓을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마음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다.

꼭 KT 위즈 팬은 아니시더라도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할 취미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스포츠 응원 관람을 추천드립니다.
2021년 KT 위즈의 마지막 투구 모습과 우승하는 그 기운을 영상을 보고 받으셔서 2022년에도 현실은 힘드시더라도 긍정적인 마음속 기운은 잃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KT 위즈 우승 직관 후기'를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