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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 일찍 들어와

아들 네가 내가 살아야할 이유구나

by 광화문덕
오늘은 저녁 자리가 있는 날이다

요즘은 건강상의 이유로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저녁 자리를 소화하곤 한다. 꼭 반드시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를 제외하고는 저녁자리를 만들지 않고 있다.


어젯밤 아들이 자기 전 내게 물었다.


"아빠 내일 저녁 약속 있어?"


아들은 내게 자기 전에 묻곤 한다. 내가 저녁 일정이 있는지에 대해.


"아빠 그럼 11월엔? 12월엔? 1월엔? 2월엔?"


"아들! 이번 달엔 내일만 저녁 일정 있고 그다음엔 없어. 다음 달 이후는 아직 잡힌 건 없어"


아들이 안도한다. 그리고 내게 답을 하라고 재촉한다.


"아빠 오늘 일찍 들어와야 해"


"응 오늘은 술 많이 마시는 자리는 아니니까 조금만 마시고 최대한 일찍 들어올게"


"약속한 거야! 일찍 들어와야 해"


"응 그래"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팀장님과 요새 업무 협업을 하는 분들과 저녁 자리를 하고 있는데 반가운 전화가 울린다. 아들이다.


"아들 아빠 저녁 자리 중이야"


"아빠! 몇 시에 끝나?"


"응? 9시 반쯤 끝날 것 같아"


"아빠 술 얼마나 마셨어?"


"아빠 오늘은 맥주 3잔 정도밖에 안 마셨어"


"아빠 그럼 집에 몇 시에 들어와?"


"9시 반쯤 끝나서 지하철 타고 가면 11시쯤 도착할 것 같은데"


"아빠 그럼 그때까지 나 안 자고 있을 테니까 빨리 와"


"응 아들 알았어"


아들과 약속한 시간에 다행히 저녁 자리가 파했다. 그리고 아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정신 바짝 차리고 집으로 향했다.


띵동 띵동

"아빠 어디야?"


"응 나 이제 동대문역 지나가"


"그럼 얼마나 걸려?"


"여기서 30분쯤 걸릴 것 같은데"


"그럼 55분까지 와야 해"


"응 어서 갈게"


아들이 어디서 구한 gif 파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굉장히 빨리 움직이는 사람의 얼굴이 있는 gif 파일을 보내고 문자를 덧붙였다.


"아빠 눈이 빨리 움직이는 건 빨리 오라는 뜻이야"


너무도 귀여운 아들의 문자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가득 품어졌다.


"ㅇㅋ? 답 없음?"


'아... 아들의 귀여움에 빠져있는 사이 아들에게 답하는 시간이 늦었구나...'


빨리 답장을 썼다.


"아들 아빠 이제 마을버스 기다리고 있어 곧 타고 가"


쿨한 아들의 답문이 왔다.


"ㅇㅋ"


아들이 보고 싶어
마을버스에 내려 뛰어 집에 들어갔다


"아들! 아빠 왔다"


"....."


아들은 나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어있었다.


"아들~ 아빠 왔어"


아들 옆에서 속삭여봤지만 아들은 이미 꿈나라행 열차를 타고 출발해버렸다.


아들이 곤히 자는 모습을 보며 잠시 서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행복이란 게 이런 기분이겠지. 아들 네가 있어 다행이야.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은 것 같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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