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부터 8월까지 철없이 쌈닭처럼 출입처를 휘젓고 다녔던 시절, 그 당시 데스크셨던 선배님을 13년이 지난 2024년 7월 찾아뵈었다.
인자하셨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었다. 40대 후반의 모습에서 선배님은 이제 50대 후반이 되셨다. 이제 정년도 몇 년 남지 않으셨다.
"오랜만에 얼굴 보니 좋네요"
너무 오랜만에 찾아뵈어서였으리라. 선배님은 내게 말을 쉽사리 놓지 못하셨다. 내게는 당시 하늘 같았던 데스크셨기에 나 역시 극존칭으로 선배님을 대하고 있다.
"그때보다 지금 얼굴이 훨씬 보기 좋아요. 더 편안해 보여요"
선배님은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내 모습이 어땠든지, 선배님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어땠었는지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자네는 무척 날카로웠어요. 고슴도치같았다고 할까요. 가만히 있어도 모든 날카로움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그런 까칠함, 사나움이 있었어요"
"제가 그랬나요? ㅎㅎㅎ"
선배님은 예전을 회상하며 말을 하시다 지금 내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시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사실 선배님을 뵙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너무도 오랜만이라 마주했을 때의 시간이 어색하면 그 시간을 화기애애하게 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스스로 부담이 컸다. 정말 너무도 오랜만에 만나 뵙는 선배님이신데, 선배님의 바쁜 시간을 내주셔서 자리를 한 만큼 선배님과 나와의 시간이 그만큼 의미 있었으면 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심적 압박감을 줬었다.
오늘 뵌 선배님덕택에 지금의 내가 있었던 것 맞다. 내 글쓰기 인생에 있어 중요한 획을 그어주신 분이시다. 엉망진창이었던 내 글을 선배님은 데스크로서 늘 꼼꼼하게 고쳐주셨고, 내게 글의 구성상 추가되어야 할 부분을 찾아내어 취재지시를 내려주셨다. 내겐 든든한 글쓰기 스승이셨다. 보도자료도 제대로 못 처리하던, 그럼에도 기자였기에 써야만 했던 박스 기사, 기획 기사, 단독 기사가 선배의 손을 거치면 5성급 호텔의 디너코스요리가 되어 돌아왔다. 글에 구성은 탄탄해졌고 가독성이 더해지니 읽는 즐거움이 듬뿍 추가됐다.
그러면서 선배님은 내게 늘 말씀하셨다.
"자네는 취재력이 좋으니 단독 기사만 열심히 물어보면 돼! 멋진 단독에 발로 뛰어 얻어낸 귀한 취재록을 풀어 기사를 작성해 주면, 글은 내가 다 고쳐줄 테니 말야. 신 기자는 파이팅이 넘치니 단독 기사만 발굴해 와!!!"
당시 글은 자신 없었지만 여기저기 파고들며 취재하나는 자신 있었다. 두려움 없이 들이댔고 그 결과 당시 나는 출입처에서도 골칫덩어리(?)인 기자였다. 홍보실에서는 당시 여러 곳에서 동시에 간담회가 진행될 경우 내가 어느 간담회에 참석하는지 확인했을 정도다. 자신들의 간담회에 와서 질문을 던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난 요즘도 우리 매체 기자들에게 자네 얘기 많이 해요. 간절함과 배짱이 만들었던 단독 기사들을 뽑아내던 이야기들 말야. 영웅담처럼 한다니까요"
선배님 덕택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기에 선배님을 늘 뵙고 싶었지만 내가 용기가 부족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나는 그 당시 선배님의 나이가 됐고, 선배님은 이제 환갑을 바라보고 계신다.
선배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13년 후에 선배님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내 앞에는 어떤 후배들이 앉아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난 어떻게 늙어 있을까에 대한 궁금함도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