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고 이제 가을이 찾아온다...
가을이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폭염 속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던 날들 속에 여름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겨울이 되면 지금 이 무더위가 그리울지도 몰라. 그러니 지금을 즐겨'
사계절이 있는 곳에 태어나 40여 년을 사계절 속에서 살아왔는데, 계절을 계절 그대로 온전히 바라보고 인정해주려고 했던 마음을 가진 것은 마흔이 넘어서다.
혹독한 마음의 감기를 겪고 나서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마음 깊이 새기고 나서야 사계절도 달리 보였다.
봄은 선선하지만 초록빛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름은 투명하게 일렁이는 물결이 떠오르고 청량함이 떠오르는 청록색이다.
가을은 울긋불긋 갈색과 여기에 붉은색과 겨자색에 가까운 노란색이 물들어 온산과 들을 수놓은 모습이다.
겨울은 새하얀 구름이 땅 위로 내려앉은 모습에 그 위로 순수한 영혼의 아이와 동물들이 뛰어노는 풍경이다.
내 계절별 심상이다. 마음속에 새겨진 계절별 모습이랄까.
어쩌면 이 또한 미디어가 내게 심어준 환상일 수 있지만, 난 계절별 심상을 따라 그 계절을 온전히 느껴보려 애쓴다. 그리고 내 마음속 계절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기도 한다.
10대엔 내게 시간이 한정됐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20대엔 시간에 대한 관념보다 앞으로 내게 주어질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30대엔 시간과 사투를 벌이며 살았다.
40대엔 시간과 이별하는 것이 아쉬워 매일매일 시간을 그리워한다.
50대엔.......
60대엔........
새벽에 일어나니 가을 냄새가 콧속을 깊게 파고든다.
'이제 곧 겨울이 오겠구나'
선선한 공기의 냄새가 있다. 차가운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공기의 냄새도 있다.
가을은 여름처럼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잠시 스쳐가듯 사라지는 가을을 올해는 어떻게 맞이하고 헤어질지 생각해 본다.
계절이 바뀌면 내 감성도 변화한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의 사람들을 보며 묻곤 한다.
"계절 타니?"
어릴 적 사람들은 보통 "봄 타니?"라고 하지만, 난 사계절을 다 타곤 했다. 감정이 요동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잔잔하게 마음속 울림들의 파동이 달라지는 정도랄까.
이제 가을이 온 것 같다. 무더웠던 여름도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그립다.
'뜨거운 햇살을 좀 더 만끽할 걸'
마흔이 넘어 나를 찾아온 계절이, 나를 떠나갈 때마다 스스로 되묻곤 한다.
나는 올해 여름을 여름대로 온전히 잘 보냈던가?
내년엔 아무리 폭염에 열대야가 오더라도 여름을 여름 그대로 만끽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가을은 잠시 얼굴을 내밀고 사라지는 깍쟁이 같아서 자주자주 생각해줘야 한다.
가을과 친해지려면 고개를 들어 저 높이 높이 올라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빛나는 얼굴을 바라봐야 한다.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가을이 수놓은 풍경화들을 보기 위해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
내겐 사도사도 만족하지 못하는 옷이 있다. 바로 봄버 재킷이다. 봄가을용 봄버 재킷은 내게 늘 로망 같은 옷이어서 매년 1~2벌씩 사지만 정작 입은 횟수는 봄과 가을에 총 합쳐서 한번 정도에 불과하다.
가을이 오니 멋진 봄버재킷을 입고 출근할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물론 실제로는 정장을 입고 출근하니 봄버 재킷을 입을 일은 이번 가을에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난 또 한살이 더 들어 이젠 마흔 중반으로 접어들겠지'
매일매일이 이별이고, 매일 아침이 만남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동정을 갈구하며 술에 취해 길가를 서성이던 날들
마음의 감기로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지옥 같았던 날들
사람 속에서 웃고 사람 속에서 상처받아 도망치고 싶었던 날들
그날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런 마음을 가진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리라...
어느덧, 광화문덕 브런치스토리가 시작된 지도 10년이 지났다. 지난 10년 동안 내 삶의 즐거웠던 일, 행복했던 감정, 슬픔과 우울했던 내 마음, 뜨거운 마음으로 도전했던 날들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광화문덕의 글을 좋아해 주고 애정을 가지고 읽어봐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은 2024년 가을을 맞는 마음들을 써내고 싶었다.
우리들의 복장도 곧 겨울일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오늘 하루가 후회 없는 여름날의 끝자락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2024년 여름을 돌아보며 자신만의 감성이 담긴 추억 한 편을 써보셨으면 하고 제안드린다.
올여름 무더위 속에서 저와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이번 여름 저와 함께 했던 날들이 그분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광화문덕'이 있어 즐거웠던 2024년 여름으로 기억되셨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2024년 8월 28일 새벽에 찾아온 가을냄새를 기억하며
광화문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