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의 말 한마디가 나를 일깨웠다
겨울바람이 창을 두드린다.
잔잔한 낯빛이 테이블 위를 스치고, 나는 찻잔을 손에 감싼 채 오래된 벗과 마주 앉아 있다.
대화는 흐르다가 멈추고, 다시 이어진다. 문득, 그가 나지막이 내뱉은 말이 내 마음 깊이 스며든다.
"Journey is the reward."
순간, 바람이 내 안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다.
문득 지나온 길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나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삶의 전부라 믿었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했고, 원하는 대학에 가야 했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들어가야 했다.
목표를 이루면 행복이 기다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목표를 하나씩 이루고 나면 마음은 공허했다. 성취의 기쁨은 짧았고, 이내 다시 또 다른 목표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왔다. 언제나 미래를 바라보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목표를 향해 가는 그 과정이야말로 진짜 삶이었다는 것을.
어느 봄날, 혼자 떠난 여행에서였다. 한적한 마을을 걷다가 낯선 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허름한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며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마음속에 잔잔한 파도가 이는 듯했다.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행복이란 도착지가 아니라 여정 속에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삶은 쉽게 깨닫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다시 목표를 세우고, 달리고, 이루고, 허탈함을 반복했다. 마치 오르락내리락하는 파도처럼. 가끔은 그 파도에 휩쓸려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목표를 이루는 순간보다 그 길 위에 있을 때의 떨림과 기대감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마흔여섯이 된 나는 다시 이 자리에 앉아 오래된 벗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말한다.
"Journey is the reward."
그 한마디가 나를 가만히 일깨운다. 살아온 날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기쁨과 슬픔, 성공과 좌절, 환희와 눈물이 뒤섞인 날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창밖으로 흩날리는 겨울 낙엽이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떠난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지만, 그 길 자체가 우리의 모든 것임을 이제는 안다.
길 위에서 스친 사람들, 느꼈던 바람의 향기, 따뜻한 차 한 잔이 만들어낸 순간들. 그것들이 쌓여 인생이 된다.
나는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는다. 창밖에는 겨울이 깊어가지만, 마음 한편에는 따스한 온기가 감돈다.
오늘도 나는 길 위에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